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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풍요 속의 빈곤 사회 끝은 어디일까?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즈( John Maynard Keynes)가 주장했다는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을 조금씩 알게 모르게 실감하게 되는 것 같다. 세계 경제의 흐름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 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사회적으로 겪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빈곤을 은연중에 체험하고 있는 것 같다. 문명이 발달하기로야 지금이 최전성기이고 전체적인 경제 규모 또한 엄청나게 커졌으니 누구나 풍요를 체험하고 살아야 할 것 같은데 현실하고는 동떨어진 얘기인 것 같아 적지 아니 혼란스럽다. 그렇다면 빈곤과 풍요의 기준은 무엇이며, 왜 이런 풍요 속에서도 빈곤을 경험하며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그 끝은 어디일까 하는 등의 이런 의문들에 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에 그 초점을 맞추어 놓으셨나 하는 점이다. 곧잘 우리는 풍요와 빈곤의 문제를 말할 때 인간 행복의 문제를 소환한다. 물질을 많이 가졌으면 행복하고, 반대로 적게 가진 자는 불행할 것이라고 단정한다. 단순히 물질적 기준으로는 그럴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기준, 즉 하나님이 제시하신 기준은 좀 다르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2:16)좀 더 확대해서 해석하자면 세상으로부터 온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이 기준이 되면 어떠한 풍요도 빈곤을 채우지 못한다는 얘기이다. 우리가 딛고 사는 이 세상이 어디 한 군데도 빠짐없이 이런 세상의 기준으로 풍요와 빈곤을 재단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세상을 지으신 이가 하나님이시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 현실은 참 서글프기만 하다. 이런 기준 앞에서 하나님의 의가 세상을 이끌기란 어려울 것이다. 새해 2023년은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풍요를 느낄 수 있도록 믿는 이들이 나서서 성경적 풍요의 정신을 나누었으면 한다.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세상의 가치관과 기준을 따라 기울다 보면 하나님의 의가 빛을 볼 날은 과연 언제냐 하는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풍요의 시대에 풍요 속의 빈곤만을 주장한다면 과연 그러면 그 끝은 어디인지 고민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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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06
  • [장향희 칼럼] 기적이 일어납니다(출 17:8~16)
    장향희 목사 (든든한교회) (계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라고 사도 요한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묵은 한 해는 지나가 버렸습니다. (요한삼서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혼이 잘 되면, 영적 문제가 해결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새해 첫 주일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속에 다시 한번 새로운 세계의 찬란한 꿈을 새롭게 간직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인생은 과자나 열정이나 향락, 야심, 탐욕 같은 세상에 움직이는 자가 아니고, 정직, 성실, 근면 그리고 사랑을 그 인격 깊은 곳에 풍성히 간직하고 살아가는 자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새해 첫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이제 새롭게 진심으로 변하지 않는 굳은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기적이 일어납니다. 오늘날 현실에는 기적이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2023년도 한해는 기적의 한 해가 되어서 세상은 어지럽고 망해도 결코 택한 자들, 즉 우리는 망하거나 실패하지 않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잘 살펴보면 ‘아말렉’ 오랑케들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왔을 때 모세는 기도하고 여호수아는 전쟁터에서 전쟁을 하는데, 모세가 두 손을 높이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피곤하여 두 손이 내려오면 아말렉이 이기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아론과 훌이 양옆에서 높이 받들어 주어서 이스라엘이 대승리한 내용이 기록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기적이 일어납니다”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Ⅰ. 아말렉은 어떤 존재들인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아말렉은 “전쟁을 좋아하는 골짜기 주민”이라는 뜻입니다. 2. 아말렉은 에서의 손자로써(창36:12) 그의 후손들은 첩의 자손이었으므로 에서의 열두 방백에게서 갈라져 나와 팔레스타인 남부와 시나이반도 북부 등에 거주하며 유목하는 호전적인 부족이 되었습니다. 3. 일찍부터 강대한 부족이 되었고 물과 풀을 따라 르비딤부근까지 내려온 것으로 보입니다. 4.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 르비딤에 이르게 되자 자신들의 영토에 대한 소유권을 침해받을까 두려워하여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공격한 최초의 부족이었습니다. 이 때부터 아말렉은 이스라엘의 오랜 적이 되었습니다. 5. 아말렉은 이스라엘과 전쟁을 했습니다. Ⅱ. 이스라엘이 아말렉 전쟁에서 이기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공격하자 주의 종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군대의 사령관직을 주었습니다. 여호수아를 전쟁에 앞서 나가게 했지만 모세는 전쟁에서 이길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여호수아가 잘 싸워 이기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준 것입니다. 결 론 하나님은 반드시 택한 백성들에게 기적을 일으킵니다. 우리의 삶 속에 어떤 일을 만나든지 무엇을 하든지 기적이 일어나길 축원드립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 기적을 체험하고 너무 감사해서 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닛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편에 서서 대대로 오랑케 아말렉과 싸워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해를 걱정하지 맙시다. 하나님이 대대로 싸워주시고 기적을 일으켜 주셔서 축복 속에 살게 해 주실 것입니다. 영적, 정신적, 물질적 축복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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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06
  • [김원수 목사] 28. 농부이신 어머니! 보고 싶고 그리운 어머니!!
    김원수 목사 (일산주님의교회) 우리 어머니는 나의 눈부신 생명이시다. 우리 어머니는 아직도 내 곁에 인격으로 계신다. 우리 어머니는 이 땅을 떠난 지 25년이 되었지만 살아계신다. 우리 어머니는 나의 기쁨이요, 눈물이요, 나의 삶의 성실이요, 열정이다. 우리 어머니는 농부의 아내이자 자식들을 향한 사랑을 가슴에 품은 눈물이시다. 우리 어머니는 나에게 진실과 성실과 삶의 재기를 가르쳐 주셨다. 우리 어머니는 나의 삶에 풍성한 기름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나를 이렇게 공부시켜 주셨다. 우리 어머니는 온갖 잡초들을 제거해 주고, 물길을 터주시고, 막아주시고, 삶의 고통의 자리를 덮어 주시었다. 우리 어머니 생각이 난다. 어머니 기도회, 첫 주의 시작이 아름다웠다. 어머니의 가치와 어머니 기도의 힘과 기적의 능력을 알고 느끼고 깨닫는 소중한 시작이다. 위대한 자녀의 뒤에는 위대한 어머니가 계시다. 어머니!! 어머니가 계시므로 내가 있고, 어머니가 계셨기에 오늘 내가 있습니다.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그립습니다. 10월이 오니... 가을엔 더욱 더 보고 싶고 가슴 깊이 사무칩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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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06
  • [하성민 칼럼] 기도하는 사람(2)
    하성민 목사 (소망전원교회) 자신의 기도를 듣고 아빠가 화를 내자 막내는 울면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부터 아빠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일을 마치고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러 가서 잔을 들었는데 술잔에 어린 딸의 얼굴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서 술잔을 떨어트리고는 착각이겠거니 하고 다음 잔에 술을 따라서 다시 마시려고 하자 역시 그 잔에도 어린 딸의 기도하는 얼굴이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눈을 딱 감고 마시려고 잔을 들자 감은 눈으로도 술잔에 비친 딸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결국, 그날 아빠는 술 마시기를 포기하고 사람들과 헤어져 일찍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날 이후 아빠는 계속 술에 취하지 않은 채 집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술잔을 잡을 때마다 어린 딸의 얼굴이 떠올라서 술잔을 잡는 손이 떨려왔고,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아빠에게 더 이상 술을 권하지 않게 되었고, 아빠도 술을 먹는 것이 두려운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빠가 주말에도 술을 마시지 않게 되자 주일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 날 모든 가족이 교회로 가는 시간에 혼자 집에 있는 것을 심심해하던 아빠가 함께 교회나 가야겠다고 하며 막내딸의 손을 잡고 따라 나섰습니다. 그렇게 해서 6살 어린 딸의 기도로 온 가족이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린 딸은 이제 울면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간절히 바라던 것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제는 아빠가 막내딸과 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정은 모든 가족이 한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가정입니다.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 때문에 가족 중에 고집을 피우는 사람도 말썽을 피우는 사람도 없게 됩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부모가 자녀를 어떻게 사랑하고 양육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자녀가 부모님을 어떻게 공경해야 하는지, 형제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심으로 가장 온전한 가정이 되게 하십니다. 예배는 불행한 가정을 행복한 가정으로 바꾸고, 흩어진 가정을 하나로 모으며, 다투는 가족들을 화목하게 하고, 슬픔에 빠진 가정을 기쁨이 가득한 가정으로 변화시킵니다. 작은 사람의 기도가 큰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작은 사람의 기도가 큰 사람의 억지를 이깁니다. 힘없는 사람의 기도가 힘 있는 사람의 힘보다 셉니다. 못난 사람의 기도가 잘난 사람의 능력보다 낫습니다. 1등의 실력보다 2등의 기도가 더 많은 일을 합니다. 청년의 기운보다 노인의 기도가 세상을 구합니다. 성도는 특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기 때문에 특별합니다. 기도는 성도의 특권입니다. 사람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는 기도 할 때입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만나면 기도해야 합니다. 영혼을 구하는 일, 마음을 바꾸는 일, 병을 고치는 일, 잘 되고 못 되는 일 앞에서, 내일을 알 수 없을 때가 기도할 때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이 보입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기도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은 다른 걸 깨닫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야고보서 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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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성민 목사
    2023-01-06
  • [김연희 이종호 칼럼] 레위기 -피로씻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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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연희 목사
    2023-01-06
  • [조예환 칼럼] 눈물로 씨 뿌리기(1)
    ▣ 총회부흥사회 대표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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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06
  • [한홍 칼럼] 남은 자들로 충분하다
    한홍 목사 (새로운교회) 코로나로 인해 3년 만에 다시 열린 겨울성령부흥집회의 열기는 용광로처럼 뜨거웠습니다. 더케이호텔을 가득 메운 성도들의 불같은 기도의 열기는 성령께서 우리 교회에 새로운 부흥의 시즌을 열어 주실 것이라는 약속의 무지개와 같았습니다. 이번 부흥회의 주제는 “남은 자들로 충분하다”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 바벨론 제국은 유다를 멸망시키면서 젊고 강건한 용사들은 다 죽이고, 왕족과 귀족과 부자와 학자들, 젊고 아름다운 여인들은 다 포로로 끌고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유대 땅에는 인구의 1/10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사야는 초토화되어버린 이스라엘의 상황을 아름드리 큰 나무들이 베임을 당한 뒤에 밑동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그루터기(Stump)”에 비유했습니다. 이스라엘에 남아 있던 그루터기 같은 사람들을 성경은 “남은 자들 (Remnants)”라고 부릅니다. 이사야서를 비롯하여 구약성경 곳곳에는 “남은 자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들 남은 자들은 대부분 병들었거나, 늙었거나, 못 배우고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라는 말이 있듯이 이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남아 있는 유일한 소망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을 떠나지 못하고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병든 몸을 추스르며 끝까지 그 땅을 지켰습니다. 70년 포로생활 후에 돌아온 포로 귀환자들과 함께 이들 남은 자들은 새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게 됩니다. 인간적인 기준으로만 보면, “아휴 이 사람들 가지고 뭘 해?”하는 한숨이 절로 나오는 그런 사람들인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 소망의 새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이사야의 때로부터 5백 년 뒤, 신약성경의 초대교회 초창기 구성원들도 바로 이런 이사야가 말한 그루터기 “남은 자들”처럼 볼품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핍박과 고난이 워낙 심했기 때문에 세상에서 잘나가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믿지 않거나 신앙이 좀 있던 사람들도 대부분 배교해버렸습니다. 남은 성도들의 반 이상은 노예였고, 나머지도 사회 최하류층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들이 자신들의 주인들을 전도하고, 남편들을 전도하고, 자신들을 감시하고 핍박하던 군인들을 전도했습니다. 이로 인해, 로마는 군대가 서서히 복음화되고, 상류층 귀부인들도 서서히 복음화되더니, 300년 만에 기독교 국가가 되었습니다. 남은 자들은 세상적 스펙이 형편없기 때문에 그들을 통해서 역사가 이뤄지면 하나님이 모든 영광을 받으시게 됩니다. 남은 자들은 세상적 시각에서는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오히려 영적인 저력이 있습니다. 남은 자의 특징은 역경을 견뎌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잠깐 데이트하고 헤어지는 연인이 아닌 영원히 헌신할 신부를 찾으십니다. 영원히 헌신할 신부는 어떤 역경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신랑의 손을 놓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가 바로 남은 자입니다. 예수님 곁에도 한 때 구름떼같이 많은 사람들이 따라다녔으나, 주님이 십자가 복음을 말씀하시자 다 떠나고 열두 제자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훗날 성령 받고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기에 “남은 자들”로 충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축복하실 때 그들이 잃어버린 것이 아닌 그들에게 남아 있는 것들, 남아 있는 자들로 축복하십니다. 언제든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개입하실 때는, 우리에게 남은 것들로 시작하십니다. 우리 옆에 남아 있는 친구들, 남아 있는 얼마 안 되는 돈… 우리 눈에 보기엔 “이걸로 뭘 하나” 싶지만 하나님께서는 남은 것들로 충분하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믿음만 잃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남은 것으로 기적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분은 남은 자들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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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홍 목사
    2023-01-06
  • [김상복 칼럼] 창조와 관련된 사역(5)
    김상복 목사 [프로필]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총장 2. 성경과 관련된 사역 (1) 성령님은 성경의 원저자입니다 성경과 관련된 성령의 사역이 또 있습니다. 사무엘하 23장 2절에 다윗의 시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다윗은 성경에서도 가장 뛰어난 시인 아닙니까? 거기에 보면 다윗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시편 전체는 150편입니다. 150편 중에 절반 이상이 다윗이 쓴 시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시를 쓴 것을 두고 스스로 말하기를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했다고 했습니다. ‘통했다’는 것은 ‘여호와의 영, 성령이 나를 사용해서 말씀하셨다’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성령의 입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말씀이(즉 여호와의 영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라고 노래했습니다. 나를 움직여서 내 머리를 주관하시고, 내 생각을 다스리시고 내 입술을 주관해서, 여호와의 영이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에스겔, 예레미야, 이사야 등 여러 선지서들을 읽어보면 반복되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말씀을 내 입에 넣어주셨다”는 표현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선지자의 입에 말씀을 넣어서는, 코카콜라 캔에다 넣고 막 흔들어 놓고 뚜껑을 열면 말씀이 터져 나오는 모습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 선지자의 입에 말씀을 넣어서 흔들어 놓으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터져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코카콜라 캔이 탁 터져 쏟아져 나가는 것 같은 모양을 보고 히브리어로는 ‘나바’라고 합니다. 이 말은 한글로 ‘예언’이라고 번역했는데, 정확한 표현은 ‘예언’이 아니고 ‘쏟아져 나온다’는 뜻입니다. ‘마구 쏟아져 나온다, 선포한다’는 의미의 ‘나바’라는 말은 우리말로 나팔과 발음이 비슷합니다. ‘나바’는 나팔부는 것처럼 선포하는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예언만이 아닙니다. 그래서 ‘나바’는 예언보다는 선포가 더 정확한 본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시키는 말, 그것이 과거에 관한 얘기든, 현재나 미래에 관한 것이든 간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면 다 ‘나바’에 해당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성령님이 이렇게 성경과 관련해서 일하셨습니다. 베드로후서 1장 20~21절에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여기서도 영어로는 ‘prophecy’, 우리말로는 ‘예언’이라고 했습니다만, 이때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이란 뜻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선포된 말씀’이란 의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언이라고 하니까 미래에 대한 얘기 같은데 그것이 아닙니다. “모든 예언”은 ‘모든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란 뜻입니다. 말씀은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쏟아져 나가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어서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inspired, borne along)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것은 lifted up and carried along 즉 ‘바짝 들어서 운반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표현을 한국어로 ‘감동’이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성경을 쓴 사람들이 있고, 성경을 말한 사람들이 있는데, 성령님이 그 사람들을 움직여서 하나님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을 기록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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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상복 목사
    2023-01-06
  • [소강석 칼럼] 2023년 신년시 ‘황무지에서 라일락꽃을 피우는 새에덴의 소네트여’
    「황무지에서 라일락꽃을 피우는 새에덴의 소네트여」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시인) 코로나 팬데믹의 후유증이 여전히 드리운 중에도 동해의 붉은 태양은 장엄한 몸짓으로 솟구치고 황홀한 태양의 눈동자로 다시 시작하는 새해의 일출은 생명나무 꽃향기로 번지며 뉴 블레싱의 빛을 비추고 있거니 이제 우리 모두 2023년의 찬란한 일출과 함께 절망과 비난, 혼란과 분열의 비가(悲歌)를 그치고 다시 하늘순례자의 발걸음으로 신발끈을 동여매며 새벽 하얀 서리 내려앉은 강물 소리를 따라 가슴 벅찬 희망과 부흥의 행진을 시작해야 하리라 어두울수록 별은 빛이 나고 절벽 끝에 피어난 꽃은 잔인할 정도로 향기를 발하나니 지난해 거친 광야의 절망과 어둠의 시간을 이겨내고 맞은 우리의 새해는 더욱 더 눈부신 꿈으로 빛나야 하리니 주여, 2023년은 생명나무 신앙으로 팬데믹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온전한 예배 회복을 넘어 거룩한 초연결 생명공동체를 이루게 하소서 민족의 들녘에 분열을 조장하는 파괴적 외침은 사라지고 서로가 서로를 연모하고 그리워하는 세레나데가 울려 퍼지게 하소서 한국교회가 먼저 가슴을 치며 주의 제단에 눈물을 쏟고 신 사도행전의 아리아를 부르게 하소서 아, 2023년 엔데믹의 한계를 넘어 비상하는 눈부신 아침이여 거친 황무지에서 라일락꽃을 피우는 잔인한 생명과 사랑의 소네트여 그 한 중심에서 다시 한번 한국과 세계로 생명신앙의 빛을 확장해 갈 새에덴의 무지갯빛 약속과 푸른 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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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01
  • [사설] 진정한 「행복」을 찾는 해를 만들자
    사람이면 누구나 다 좋아하는 단어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행복’이라는 말이 아닐까 한다. 그러면서 정작 그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말하는 것은 좀 서툴러 보인다.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이 행복에 관해 말하였고, 그 행복을 찾기 위해 몸부림을 쳤으나 이렇다 할 답은 아직 없는 것 같다. 철학자는 철학에서, 문학가는 문학에서, 예술가는 예술에서, 정치가는 정치를 통해 행복을 구현해보고자 하였으나 누구 하나 ‘이것이다’ 하고 답을 제시한 것은 없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모범답안은 없다. 있다면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고 보면 좋을 듯하다. 쓰라린 고통과 환난 가운데에서도 악착같이 인생을 이어가는 것은 아주 작고 소소한 위로가 있기에 그렇게 인생의 끈을 놓지 않고 이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년 전, 서울 어느 대형 서점의 벽면에 걸렸던 장석주(1955~) 시인의 시 한 편은 그나마 작은 위로가 되기에 매우 적절해 보인다.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린 몇 밤, 저 안에 땡볕 한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하략)」 그렇게 익어간 대추의 속을 세상의 인생들이 알기나 할까! 대추는 그것조차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렇게 볼이 붉어진 대추의 일생은 그저 행복했을 뿐이다. 시인의 말처럼 수없이 많은 비바람과 천둥과 번개를 견디고, 한여름 땡볕의 고난 속에서도 하룻밤 볼을 비추는 보름달의 속삭임에 고마워했을 것이다. 인간의 삶도 어쩌면 그렇게 익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생각이 극히 작은 유익을 찾기에만 골몰해 있다면 우리의 인생이 가을날의 대추 한 알처럼 예쁘게 익어가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자신의 지경을 좀 더 넓혀 보겠다고 이웃 나라를 무력으로 침공한 정치 지도자가 어느 정도나 행복을 누렸으며, 자기의 영향력을 확장해보겠다고 거짓과 협박으로 일부 국민의 지지를 도둑질해간 정치인이 얼마나 마음 편히 살았을는지 이 모두를 스스로는 알고 있으리라 본다. 우리가 진정으로 찾아야 할 행복은 하나님 안에서의 진실함에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세상의 많은 사람이 찾아 헤매는 허황된 행복의 꿈을 따라가는 믿는 자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하는 뉴스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남들이 다 하는 것 나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지, 남들이 ‘내 자식 죽었으니 보상해라’ 소리 지르는 등 뒤에서 함께 목청 돋우는 사람도 과연 <성도>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남들이 집값 올려서 떼돈 벌 때 나도 따라 가난한 세입자들 눈에 눈물 흘리게 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무리가 성도가 맞을까? 진정한 행복의 의미는 무엇일까 고민해보는 새해 아침이었으면 한다. 자주 듣는 얘기지만 우리 민족이 유난히 삶의 만족도나 행복지수가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낮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를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욕망 때문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욕망의 수치가 높을수록 행복지수는 낮아지게 되어있다. 안타깝지만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결론이다. 새해 2023년에는 먼저 우리 믿는다고 하는 자들부터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던 날에 만드신 에덴동산의 과원 지기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욕망을 조금만 내려놓고 진실을 회복하면 조금 더 행복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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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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