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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이캄 복음의 사수, 함정호 목사의 37년 목양일기
    하나님의 사람 만드는 일이 복음의 목적 “37년을 하루같이 매주 두 편의 설교를 수기로 작성해서 나누다보니 국내외 정기구독자가 있어 여전히 성경의 감동으로 메시지를 다듬어 불특정 다수에게 복음을 공유하고자 책으로 낸 것이 3천여편이 넘었습니다” 함정호 목사. 그는 서울 쌍문동 영화교회 담임으로 섬긴 지 성역 40여년을 바라본다. 현재 카이캄 고문이자 목사후보생들을 심사하는 면접팀장이다. 그토록 복음에 매진하는 그의 점철된 삶은 온통 예수 그리스도에 맞춰져있다. 복음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자 ‘하나님의 사람’을 양육하는 데 있다는 함 목사는 영화교회에서 배출한 목회자만도 28명이 된다. 정통진리를 사수하고 복음의 빛만을 추구하려는 보수신앙을 견지하는 철통같은 신앙의 정수를 두는 그에게 사모는 “너무 강직”하다며 지적하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좇아가는 바울의 심정을 헤아리며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는데는 여지가 없다.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심의 진보된 증거가 ‘복음’이기에 디모데후서 3장 16~17절 말씀대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는 진리의 말씀은 우리가 듣고 싶어하거나 듣기 좋아하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기 위한 기능적 측면을 붙잡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나님, 나, 세상이란 도식(圖式) 우리를 중생하신 것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닮은 꼴을 만드시려는 계획이 성립된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것이 바로 증거된 말씀이라며, 바로 아버지의 목적과 대상이 확실하다는 점을 들어 세상이 활동무대인 인생들이 영적 전투를 통해 주님의 생명을 회복함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성화의 과정은 그리스도인의 필수라고 설명한다. 성화란,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과 재림을 알고 믿어가는 일련의 과정으로 구원의 은혜에 이르는 것. “에덴동산이 현세와 다르지 않은 것은 인간이 육신의 장막으로 거하는 곳이 세상이라는 동일한 맥락에서 육체를 다스리지 않고서는 증인의 삶을 살 수 없고, 중생을 통한 새 생명을 유지할 수 없기에 오직 주님의 은혜에 힘 입은 우리들은 생명의 포도나무 가지에 붙어 있어야 살 수 있다” 은혜가 다름아닌 하나님의 선물인 것은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하심이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 지으심을 받은 우리로 행하게 하신다는 것은 바로 중생이라며 생명의 흐름을 설명했다. 함 목사는 성화에 이르기 위해 우선 마음, 몸, 입, 충성, 물질에 깨끗하고 사리사욕에 발목을 잡히지 않으며 진리의 복음외에 결코 타협해서는 안 되는 구별된 세상속에서 하나님의 사람을 이루시는 그 분의 계획 앞에 아멘신앙으로 전진하며 기쁨의 도구로 소망을 품어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지향했다. 구원의 방주역할을 감당하는 교회는 말씀의 역청으로 안팎을 바르며 오직 하늘을 향한 창문을 열어둔 채 새 역사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경륜과 언약을 싸구려 자신의 의(義)로 왜곡하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인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고귀한 신앙 충남 부여가 고향인 함 목사는 어린 시절 신앙을 접하게 된 연유를 들려주었다. 선친(先親)이 처음부터 예수를 영접한 신실한 기독교인은 아니었다. 마름(지주(地主) 대신에 소작지(小作地)를 관리하는 사람)을 하던 아버지는 노름과 술을 즐긴 평범한 가장이었다. 어느 날 갑작스런 사고로 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가 낙심하는 가운데 동네가 떠들썩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서양 선교사의 출현이었고 그 선교사는 마침 아버지에게 예수를 증거하며 영생을 전했다고 한다. 야릇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잠이 들었는데 생시같은 꿈에서 머리를 풀어 헤친 삼발 할머니가 아버지의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급히 가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아들 여섯, 딸 둘을 두었는데 원래 무언가 결정하면 잘 변하지 않는 뚝심을 가지고 있던차라 예수를 영접하는 놀라운 일이 생긴 것. 술 마시며 노름에 찌들었던 아버지의 모습을 더는 볼 수 없었고 매일 가정 새벽예배로 온 가족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함 목사의 기억으론 조금만 늦장을 부렸다간 불호령이 떨어져 비몽사몽으로 묵상에 빠졌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알 듯 모르는 듯 이슬비 신앙은 함 목사의 온 몸과 영혼에 젖어들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병약해서 동네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었던 함 목사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성경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어른이 되고 결혼생활에도 여전히 병에서 놓이지 못해 폐결핵, 위장병, 간경화까지 아내에게 짐만 되는 처지에 놓였다. 살기 위해서, 아니 병고침을 받기 위해서 당시 은행원이던 아내는 모든 희생을 각오하며 전국백방으로 수소문에 나섰다. “전국 웬만한 기도원과 신령하다는 부흥사들을 만나 안수기도를 받았지요. 그러나 병은 차도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낙심과 좌절로 하루하루를 고통속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1970년 10월3일. 함 목사는 그날을 뚜렷하게 기억했다. 다 죽다시피한 함 목사를 처남이 업고 어느 개척교회에서 철야기도를 함께 하던 날이었다. 한동안 울부짖던 함 목사의 눈에 이상한 환상이 나타난 것이다. 손수 원수를 무찌르자 온 몸에서 뭔가 빠져 나가는 듯 흡입되어 병고침과 함께 성령의 불세례를 받게 된다. 기적의 체험으로 도봉산 너머 효자산기도원에서 금식기도를 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일만 하겠다”는 서원기도를 올린다. 비로소 주의 종으로서 좁은 길을 가는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자기 십자가 지고 좇으라 1976년 9월5일 전도사였던 함 목사는 영화교회를 설립하고 단독목회를 시작했다. 증거자의 삶을 다짐하며 목숨 건 전도의 열정은 불타 올랐다. 부흥의 역사로 교세가 늘어나 한창 신바람날 때 해일(海溢)이 닥쳤다. 고교 2학년 독자 아들이 학교에서 집단 폭력으로 생명이 위급하다는 병원측의 소식이 들렸다. 제 정신이 아니었고 설마 그럴 리가 하며 응급실에서 긴급수술을 받기 위해 피투성이가 된 아들은 아무 기척이 없었다. “등교하려고 ‘다녀오겠습니다’하던 목소리를 더는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의료기술을 총망라해 겨우 목숨을 구했지만 예전 아들의 모습은 아니었어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들은 상당기간 학교 집단폭력에 시달렸으나 전혀 내색조차 없었고 묵묵히 법대진학을 위해 학업에 전념하는 줄만 알았는데 계속 비협조적이라는 이유로 집단 뭇매를 맞은 것이다. 2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단 하루도 집에 머물지 못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함 목사의 뇌리를 스쳐갔다. 과격한 폭력으로 인해 강한 쇼크에 빠진 아들은 광인(狂人)이 돼버렸다. 부부가 저지할 수 없는 엄청난 힘과 울분을 토하며 손에 잡히는대로 던지며 자해(自害)로 밤을 지내고 실어증에다 정신분열 증세를 보였다. 25년 동안 아내는 아들을 데리고 전국 방방곳곳 기도원을 옮겨 다녔고 함 목사는 그런 아내와 아들을 위해 단상 밑 침구를 놓고 철야기도에 매진했다. 단란한 가족생활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버린 가슴 저미는 아픔이 몰려올수록 함 목사는 목양에 더욱 집중하며 사력을 다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주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당부하신 것처럼 ‘내 양을 치라’는 사명이었습니다. 지금도 단상밑에 잠자리를 두는 건 이미 몸에 벤 습관이 편해서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성도들을 가르치고 양육하고 일꾼 세우는 일에 열심하다보니 계속 구원받은 수가 늘어나 현재 약 100가정 정도가 섬기고 있다. 매일 강력한 무릎의 기도에 힘입어 묵상을 통해 주시는 영감있는 메시지는 꼬박꼬박 자연스럽게 종이에 옮겨 적는다. 4년전 아들은 호전되어 교회 청년부 활동과 아버지의 잔일도 곧잘 돕고 있다며 아직 완치되지 않았지만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하는 함 목사의 눈가에 물기가 스며들었다. 아들의 고질 때문에 성도들을 향한 마음이 자비와 긍휼로 변한 것은 주님의 은혜라며 고백한다. 함 목사는 “주님앞에 설 때까지 진리의 말씀을 전하고 구원에 이르도록 추수꾼의 사명으로 살고 싶다”며 병약했던 몸이 나이 먹을수록 건강한 것은 주님의 일을 더 하라는 증거라며 아이처럼 함박웃음을 보였다.
    • KAICAM
    • KAICAM 교회
    2014-12-11
  • 장자권의 회복과 누림 오픈 컨퍼런스 개최
    ‘장자권 회복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한밭제일교회(이영환 목사)가 지난 4일 대전시 유성구에 위치한 교회 본당에서 ‘장자권의 회복과 누림 오픈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이날 컨퍼런스는 보다 효과적인 훈련을 통해 목회에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기획됐으며, 컨퍼런스에 참석한 전국 800여명의 목회자들은 성경에 나타난 ‘장자’의 비밀을 캐고 장자권을 회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훈련과정을 체득했다. 성경에 나타난 ‘장자권’ 장자권이란 뭘까. 적지 않은 이들이 ‘장자권’이라는 말에 조금은 의아해 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다. 이 목사는 ‘장자권’이란 ‘장자의 권세’를 말한다고 간단히 답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자 장자들이었다. 또한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 둘째나 셋째가 아니라 맏아들, 곧 장자를 사모하라는 의미다. 이 목사는 ‘장자권’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된 근거로 창세기 25장31~34절을 제시했다. 개역개정과 공동번역, 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쉬운성경, NIV, KJV, NASB 등의 본문에서 ‘장자의 명분’, ‘상속권’, ‘맏아들의 권리’, ‘장자권’, ‘birthright’로 나타난 단어를 들었다. 이 목사는 에서와 야곱의 예를 들며 “혈통적으로 야곱은 이삭의 장자가 아니었지만 장자권을 사모했으며, 장자권을 가볍게 여긴 에서를 통해 영적인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에서가 장자권을 팔지 않았더라면 분명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에서의 하나님’이 됐을 것”이라면서 “야곱처럼 장자권의 가치를 바로 알아 결코 세상 물질과 바꾸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장자는 예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 가능 그렇다면 장자는 어떤 권리가 있을까. 이 목사는 “요한복음 1장12절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신다. 오늘날 우리 교회들은 ‘자녀’쪽은 강조하는데 반해 ‘권세’ 쪽은 그냥 넘어갔다”면서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어지는 ‘권세’에 주목했다. 이 목사는 “장자권은 세상의 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복도 보너스로 주어질 수 있지만 근원적인 복은 하늘나라 상속권”이라고 말했다. 장자의 권세는 ‘예수 이름의 사용권’이라며 예수의 이름으로 이적을 행하는 표적이 나타나며, 마귀 사탄의 세계와 함께 모든 것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정복 통치권’이 주어진다고 했다. 또 피조물 가운데 천사를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든 무엇에게든 가능한 ‘명령, 선포권’이 주어지고, 하나님과 대화하고 교제하며 청구할 수 있는 권세도 갖게 된다고 제시했다. 이 목사는 “하나님의 장자로서 마땅히 정복하고 다스리며 살아야 할 우리가 정복당한 채 다스림 받고 살아왔다면 얼마나 억울한가. 알면서도 훈련이 없어서 사악하고 추하고 더러운 영들에게 지배받으면서 살아왔다면 얼마나 비참한가”라며 “이제 훈련을 통해 일어나라. 거룩한 영적 주먹을 불끈 쥐고 선포하고 명령하라. 우리의 명령과 선포 앞에 악한 영들이 떠나가고, 온갖 저주와 어둠이 물러가고, 각종 질병들이 떠나가고, 모든 두려움과 불안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사람은 자기 입에서 나오는 대로 살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내 인생을 기름지고 풍요롭게 살기 위해서는 내 혀를 말씀으로 길들여야 한다”면서 “그러기 위해 말씀에 근거한 믿음의 언어, 밝고 맑으며 강하고 담대한 언어를 훈련시켜야 한다. 단순, 반복, 지속, 강행의 믿음의 언어로 크고 크고 큰 소리들로 내 혀를 길들여야 하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갖고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목사는 우리 스스로 “내가 진짜 하나님의 자녀인가?”라는 심각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도전했다. 하나님이 분명히 내 아버지이시고, 내가 영접한 분이 예수님이라면 ‘자녀의 권세’를 누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목사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리지 못한다면 하나님과 예수님이 가짜이든지,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는 내가 가짜라는 것”이라며 “정말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데도 속고 왔다면 이제라도 회개하고 바로 믿어야 하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확실하다면 장자의 권세를 회복하여 누려야 한다”고 강권했다. ‘장자권’에 대한 조직신학적 시각 이 목사는 한밭제일교회 목회에서 오래 전부터 장자권의 회복과 누림을 강조해왔다. 그러던 것이 2년 전 말씀훈련교재를 집필하면서부터 구체화된 것이다. 이날 오픈 컨퍼런스에는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김재성 교수(조직신학)가 단상에 올라 생소한 ‘장자권’에 대해 조직신학적 측면에서 고찰하고, 성경에서 ‘장자됨’을 발견해 강조한 이영환 목사를 높이 평가했다. 김 교수는 “조직신학에서 우리는 죄의 종이었던 자들로서 하나님의 진짜 아들과 딸이 아니었으나 양자로 입양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로 두게 됐다. 양자로 삼아주셨다는 것은 장자권의 특권과 회복을 누리게 됐다는 것으로 연결된다”며 “‘장자권’이 생소하다고 해서 전혀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됨의 특권과 은총을 설명하는 이영환 목사의 설명을 잘 들으라”고 권했다. 사람이 변화되고 행복 누림이 기적 ‘장자권의 회복과 누림’ 세미나를 수료한 목회자들의 간증도 이어졌다. 부산은항교회 이현의 목사, 홍천중앙교회 이만수 목사, 오병이어교회 윤민용 목사, 다오라교회 이종원 목사, 창성교회 김성우 목사, 순복음춘천교회 이수형 목사 등은 ‘장자권의 회복’ 세미나를 수료한 이후 교회에서 적용했던 과정과 그 결과 어떤 놀라운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생생하게 전달했다. 이들은 성도 10여 명의 미자립교회에서부터 수천 명의 대형교회까지 다양했지만 ‘장자권의 회복’으로 인한 열매는 하나같이 기적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바자회를 앞두고 선포해 일기를 바꾼 이야기,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하여 관절염이 하루 만에 치유된 이야기, 고질병이었던 목디스크가 3일 만에 완치된 이야기 등이 놀라움을 전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변화되고 행복을 누리게 됐다는 간증이었다. 한밭제일교회 성도들과 교역자들도 장자권의 회복으로 인해 누릴 수 있는 권세에 대해 입이 마르도록 증거했다. 장자권 회복으로 인해 30년 넘은 고질적인 치질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오랫동안 괴롭혔던 폐기종이 사라지는 등 ‘권세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숙 전도사는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말씀을 문자적으로만 알지 삶에 적용하려는 생각은 안한다”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됐음을 확신하고 자신이 가진 권세를 깨닫게 되면 두려움과 질병 등에 대해서도 치유를 선포하고 명령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구별 속에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인지, 기도하고 선포하여 치유할 것인지 삶의 지혜를 얻게 됐다는 것이다. 이 전도사는 “우리 목사님은 자신의 몸에 질병이 생기면 목사나 전도사를 찾아가 기도받을 것이 아니라 자녀된 권세를 가진 스스로가 기도하고 해답을 찾으라고 하신다”며 “무작정 기도원을 찾아갈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고 나에게 자녀된 권세가 있으니 선포하고 명령하는 훈련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영환 목사는 자신이 약속한 대로 65세가 되는 2년 후 은퇴를 준비하며 후임목사 선임 과정을 밟고 있다. 이 목사는 은퇴 후 ‘장자권의 회복과 누림’을 널리 알리고 한국교회를 회복시키기 위해 사역에 집중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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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2-05
  • 전국 중고등학생 찬양경연축제 성료
    지난 11월13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고, 곳곳에서 시험을 치룬 수험생들을 위한 공연과 이벤트, 각종 문화행사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수험표만 가지고 있다면, 어딜 가도 환대받는 이른바 수험생 시즌이 한창인 11월29일,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동원대학교 효암관에서 전국 중고등학생 찬양경연축제가 열렸다. 동원대학교(총장 모영기)가 주최하고 동원대학교 교목실(교목실장 장도곤 목사)이 주관한 이번 찬양경연축제는 합창, 중창, 솔로, CCM 밴드 등의 4개 부문으로 나뉘어 중고등학생들이 그동안 갈고 닦았던 찬양 실력과 끼를 마음껏 뽐내는 장으로 꾸며졌다. 축제는 예선을 거쳐 올라온 참가팀들의 경연대회 형식으로 치러졌고, 김행기 심사위원장(한국교회음악원 원장), 임재홍 교수(서울장신대), DMT 박종현 단장 등이 화음, 가사전달, 태도 등의 기준으로 심사했다. 개회사를 통해 인사말을 전한 모영기 총장은 “하나님은 ‘나를 찬송하게 하려고 이 백성을 창조하였다’고 말씀하셨고, 시편 기자는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라고 말했다”며 “동원대학교 정개산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젊은이들의 아름다운 소리가 울려 퍼져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우리 모두에게는 기쁨의 축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축제는 한영고등학교 1학년5반 합창단과 한영베리타스 어머니합창단의 축하 찬조 공연으로 화려하게 막을 올렸다. 합창 부문에서는 △경화여자고등학교(지도 최성후 교사, 곡명 ‘주의 동산으로’) △성신여자고등학교(지도 김경희 교사, 곡명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드니’) △송곡여자고등학교(지도 이규천 교사, 곡명 ‘Gloria’) △재현고등학교(지도 나찬기 교사, 곡명 ‘가시관을 쓰신 주’) 등이 참가해 아름다운 하모니와 하나 된 동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합창 참가팀 중 재현고등학교와 경화여자고등학교 등은 중창에도 참여해 합창에서 다 표현해내지 못했던 화음과 기교로 관객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솔로 참가자 배지원 양은 ‘십자가의 전달자’ 곡명으로 무반주 기타연주와 함께 허스키 보이스로 찬양을 선보였고, 김지수 양은 ‘십자가 그 사랑이’ 곡명으로 고등학교 1학년생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폭발적인 가창력을 뽐냈다. CCM 밴드 부문에서는 △영락고등학교(지도 최명수 교사, 곡명 ‘Nothing is impossible’) △영안장로교회(지도 이준환 교사, 곡명 ‘주님의 십자가를 아나요’) △서울영상고등학교(지도 이시권 교사, 곡명 ‘Nothing is impossible’) △곤지암교회(지도 정찬영 전도사, 곡명 ‘Because of you’) △한강중앙교회(지도 조경환 전도사, 곡명 ‘Higher’) 등이 참가해 기타(일렉, 베이스), 드럼, 건반의 합주와 열정적인 보컬이 어우러져 경연장을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모든 참가팀의 경연이 끝난 뒤 CCD 전문 선교단 DMT의 축하공연과 경품추첨이 있었고, 심사결과 발표와 시상이 이어졌다. 시상에는 상장과 함께 총 550만원 상당의 상금이 합창과 중창/CCM 부문으로 나뉘어 수상팀에게 돌아갔다. 이번 찬양축제가 첫 대회임이 무색하게도 원활하게 잘 치러지기까지는 동원대학교와 교목실 뿐만아니라 동원대학교 내 동원비전교회(장도곤 목사)의 준비와 헌신이 있었다. 장도곤 목사는 “기독 청소년, 중고등학생들이 찬양을 많이 부를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격려·지원하기 위해 첫 번째 대회를 시작했는데, 첫 대회에 학생들도 호응이 좋고 진행이 잘 돼서 너무 기쁘고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소감을 말했다. 지난 10월 창립 8주년을 맞이한 동원비전교회는 동원대학 채플을 통해 예수님을 믿기로 결단했지만 지역교회로 연결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서 세워졌다. 동원비전교회는 동원대학교 캠퍼스 내에 위치해있지만 학생 뿐만아니라 지역사회에도 그 문을 활짝 열어놓은 열린 교회다. 장 목사는 앞으로도 동원대학교 내에서 청년에게 선교하는 교회로서 청년에게 꿈과 희망을 주며, 장래에 이 나라를 이끌어 갈 청소년을 신앙으로 길러내겠다는 비전과 포부를 전했다. 한편 동원대학교는 기독교정신과 인류문명의 보편적 가치를 바탕으로 개교한 이래 21세기를 짊어지고 나갈 중견 전문 기술 직업인 양성에 힘쓰고 있다. 2015학년도에는 IT융합학부, 건축소방학부, 사회경영학부, 복지학부, 호텔관광학부, 뷰티보건·예체능학부 등의 6개 학부 29개 학과에 지원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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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AICAM 교회
    2014-12-02
  • 카이캄 교회탐방 ③일산축복교회
    ▲ 노방전도 중인 윤태열 목사 고양시 일산동구 강송로에 위치한 일산축복교회. 그곳에는 오늘도 동네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친절히 인사하고 하나님 사랑 가득한 교제를 나누는 윤태열 목사가 있다. 올해로 개척한지 3년이 되어가는 일산축복교회는 “사랑하며 섬기며 복음을 전하는 교회”라는 표어 아래 지역 주민들을 섬기는 교회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다가구 주택이 즐비한 지역 특성상 직장 때문에 이사 온 타지인과 이방인들이 많고, 근방에 대형교회도 자리하고 있는지라 일산축복교회 같은 개척교회가 자립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개척 당시에는 6개월 동안 성도 한 명 없이 윤 목사와 사모의 눈물의 기도만이 교회를 가득 채웠으니 말이다. 청년 시절 신학공부를 하다 군대에 가면서 신앙의 방황으로 신학공부를 중도 포기한 윤 목사. 이후 그는 지금의 사모와 결혼하면서 30여 년간 이른바 초대형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 우여곡절 끝에 다시 신학을 공부하고, 전도사 사역을 하기 까지 그는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보다는 교회의 중추적인 부서와 기관들을 관리하는 전형적인 대형 교회 사역자였다. 윤태열 목사는 “큰 교회에서 조직의 수장이 되어 조직을 맡아 이어가고, 행정적으로 능력을 발휘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나름대로 인정받으며 사역했지만 진짜 영혼 한 사람 한 사람을 터치하는 경험은 없었다”는 진솔한 고백을 털어놓았다. 그는 “그렇게 부서를 맡고 큰일을 해보면서도 사람 때문에 아쉬워해본 일 없고, 항상 사람들을 격려하고 힘내라고 북돋아주기만 해봤지 영혼 때문에 눈물 흘려본 일은 여기서 처음인 것 같다”고 고백했다. 그러던 그가 이 곳 일산동구 강송로 작은 동네에서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작은 가게 사장님, 지나다니는 동네 꼬마, 생업을 위해 생면부지 타지로 접어들어 온 이방인, 갈 곳 없는 노숙자들의 친구가 되었고, 사랑으로 섬긴 노숙자 한 분은 일산축복교회 1호 성도가 되었다. 대형교회 전도사 시절부터 자연스레 대형교회 목회자를 꿈꿨던 윤 목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일산축복교회를 개척해 어려움도 많았지만, 40여 년의 신앙생활 중에도 교회를 개척하고 난 3년의 시간들이 가장 행복하다고 단언한다. 전혀 연고도 없었던 일산에서의 목회가 커다란 꿈과 비전을 갖고 시작한 것만은 아니라는 윤 목사. 그는 “지금의 제 사역은 믿음 없는 사람 전도해서 그들과 함께 씨름하고 가는 것 같다”며 “몇 년을 전도해도 교회에 오지 않지만 저하고 친분이 쌓여져 생활 속에서 대화하는 그런 분들이 여럿 있고, 저는 그분들도 제 성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펫과 트롬본 등의 관악기와 기타 등 악기 다루는 것에도 능숙한 윤 목사는 토요일이면 교회에 동네 아이들을 위한 작은 음악교실을 연다. 벌써 1기 수료생들을 배출한 음악교실은 현재 휴강 중이지만 언제든지 악기를 배우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그 문을 열어두었다. 일산축복교회가 가입된 한국독립교회선교단체연합회에서 바른미래목회 추진위원회 전문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한 윤태열 목사는 한국교회와 바른미래목회를 꿈꾸는 자들을 위한 제언도 아끼지 않았다. “100개의 교회가 개척하면 2곳만 살아남는 교회 마이너스 성장의 시대이지만, 그래도 교회가 이 땅의 희망이고, 동네 곳곳의 작은 교회가 잘 돼야 한다”고 말하는 윤 목사. 그는 “교회가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늘 열린 마음으로 한 영혼 한 영혼을 터치할 때 성령의 역사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역에 있어서 내가 기대했던 대로 결과가 도출되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하고 낙망할 일은 전혀 없다”며 “노방전도 열심히 했는데 단 한 명의 성도가 교회에 정착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가 전도하는 모습을 통해 아주 작은 영향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 모습을 하나님이 사용하셔서 열매 맺어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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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1-26
  • 런던성복교회 홍성옥 목사 카이캄 초청 예배 드려
    ▲ 런던성복교회가 카이캄 목회국장 윤세중 목사를 초청해 예배를 드렸다. 좌측이 홍성옥 목사. 런던성복교회(홍성옥 목사)가 한국독립교회선교단체연합회(연합회장 신상우 목사, 이하 카이캄) 초청 예배를 드리고 런던 현지의 카이캄 목회자들의 소통과 교류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런던 현지를 방문해 카이캄 목회자들을 순방한 윤세중 목사(카이캄 목회국장)는 23일 런던성복교회를 방문해 타향살이에 지친 한인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전했다. 이날 시편23편을 본문으로 ‘내 평생에 주의 선하심으로’ 제하의 말씀을 전한 윤 목사는 “런던에서 소수민족으로 당하는 어려움과 핍박이 있을지라도 다윗의 노래와 간증이 여러분에게 위로와 평안이 될 것”이라고 소망을 전했다. 윤 목사는 “다윗은 시편23편을 통해 푸른 풀밭에 누이기도 하시고, 절망에서 영혼을 소생시키시기도 하시며, 죽을 것 같은 절망의 골짜기에서도 건져내시는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다”며 “다윗이 발견했던 하나님은 자신을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다윗은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주시고, 내 잔보다 항상 넘치게 부어주시는 하나님, 고통과 사망의 위협 앞에서 함께하셨다는 것을 간증하고 있다”면서 “다윗이 하나님과 일대 일로 섰던 것처럼 여러분도 하나님과 대면하는 삶을 살라”고 강권했다. 윤 목사는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앞에서 인도하시고, 내 옆에서 동행하시고,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나의 등 뒤에서 나의 가는 길을 돌봐주시는 하나님”이라며 “나를 감싸며 돌보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가 인도하시는 의의 길로 나아가자”고 전했다. 런던에 위치한 한인교회는 미국 등지와는 달리 작은 교회들이 중심이 되고 있다. 이슬람이 급격히 유입돼 거리에는 히잡과 차도르를 쓴 사람들이 절반에 다다를 정도로 기독교의 교세가 약화되고 있어 전도와 신앙생활이 쉽지 않은 나라다. 홍 목사는 런던 현지에서 13년째 살고 있으며, 2년 전 카이캄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런던성복교회에 부임해 담임목회를 하고 있다. 평균 성도 30여명으로 구성된 작은 규모의 한인교회들은 서로 의지할 수밖에 없고, 카이캄 소속 목회자들끼리도 교류하고 서로 격려하며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런던성복교회는 2004년 1월18일 런던 모던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해 1대 권용중 목사에 이어 2대 홍성옥 목사가 시무하며, ‘하나님과 친밀함으로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뜻을 구하고 행하는 교회’, ‘성숙한 신앙인으로 삶 속에서도 풍성한 열매를 맺는 성도와 교회가 되도록 힘쓰는 교회’로 정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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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1-26
  • 할렐루야교회 창립 34주년 기념 임직예배 드려
    한국독립교회선교단체연합회 할렐루야교회(담임 김승욱, 원로 김상복)가 창립 34주년을 맞은 지난 16일 본당에서 2014년 장로 안수집사 권사 임직예배를 드리고 교회의 일꾼들을 안수해 세웠다. 이로써 할렐루야교회는 교회 창립 이후 16대 장로 7명과 12대 안수집사 30명, 12대 권사 98명을 세움으로써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데 앞장서는 교회가 될 것을 다시 한 번 천명했다. 인사말을 전한 김승욱 목사는 “하나님이 34년 전에 우리 교회를 주님의 핏값으로 세워주시고, 이날 135명의 일꾼이 세워지는 자리에 오신 여러분을 축복한다. 교회의 신랑이시며 머리가 되시는 우리 주 예수님께 온 맘 다해 찬양을 올려드린다”며 “우리가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는데, 전적인 은혜로 일꾼으로 세움받는다는 것에 모든 영광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임직을 받는 분들이 할렐루야교회에 섬기는 종이 되어 성도와 사역들을 잘 섬길 수 있도록 계속적인 기도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할렐루야 오케스트라의 ‘주의 길을 가리라’ 축하 서곡으로 시작을 알린 임직예배는 김승욱 목사의 인도로 정영원 장로가 기도했고, 요한복음 13장 31~36절을 본문으로 김상복 원로목사가 ‘임직자의 본분’ 제하의 말씀을 전했다. 이날 임직받은 135명 모두 김 원로목사의 말씀과 영향력 아래 자라난 이들로서, 영적인 아버지에게 말씀을 받는 자리여서 더 의미를 더했다. 김 원로목사는 “오래 전부터 여러분의 모습 하나하나를 지켜봤고, 이 교회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러분들이 어떻게 섬겼는지를 내가 알기에, 여러분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눈물이 자꾸 나오려 한다”면서 “오늘 이 자리에 와서 이름을 보고 얼굴을 보며 가만히 생각해보니 참 충성하고 수고한 훌륭한 분들”이라고 사랑하는 마음을 전했다. 김 원로목사는 “임직자의 본분이 많이 있다. 21가지 많은 봉사와 섬기는 일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한 가지만 꼽자면 사랑하는 것이다. 결국 사랑 안에 이 모든 것이 들어있다”며 서로 사랑하라고 강조했다. 이어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것이 내 제자가 된 증거’라고 말씀하셨다”며 “아무리 봉사하고 섬긴다고 해서 예수님의 제자라는 표시가 나는 것이 아니라 딱 한 가지 사랑함으로 인해 제자라는 표시가 나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또 “사랑을 받았다면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일방적인 사랑은 지속되기 어렵지만 서로 사랑한다면 끊임없는 사랑의 교제가 이어질 수 있다”며 “우리가 서로 사랑을 주고받을 때 그리스도의 향기가 널리 전해지게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임직자들로부터 서약을 받은 김승욱 목사는 장로와 안수집사들을 안수했고, 모든 임직자들에게 임직장을 수여하며 할렐루야교회와 한국교회, 세상을 위한 한 알의 밀알이 되어줄 것을 당부했다. 특히 이날 안수위원으로는 김상복 원로목사와 김승욱 목사, 최순영 원로장로, 구제식 원로장로, 박희완 원로장로, 정영원 장로(당회서기), 최진호 장로(인사위원장), 김용기 장로(예배공동체 담당)가 맡았고, 외부에서는 신상우 목사(한국독립교회선교단체연합회 연합회장)와 김범일 장로(가나안농군학교 교장)가 함께했다. 이날 임식예배에서는 김범일 장로가 축사를 전했고, 임직자 대표로 안금석 장로가 답사했다. 할렐루야교회는 1980년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이종윤 교수와 최순영 집사 가족 8명이 교회를 세우기로 뜻을 모으고 11월16일 추수감사주일을 맞아 대치동 예배당에 입당하면서 창립예배를 드렸다. 이후 1982년 6명의 장로를 첫 임직한데 이어 1990년에는 2대 담임목사로 김상복 목사가 취임했고, 2010년 3대 담임목사로 김승욱 목사가 취임하는 등 국내외 선교와 사회선교에 주력하면서 국내 최대의 독립교회로 성장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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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1-17
  • 카이캄 교회탐방 ②뉴코리아교회
    통일한국 준비하는 뉴코리아교회 남쪽 끝 전라남도 여수 출신 형제와 북쪽 끝 함경북도 온성에서 태어난 자매가 대한민국 서울에서 만나 가정을 이루었다. 남남북녀의 만남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해 교회가 세워졌고, ‘뉴코리아교회’로 이름한 이 교회에서 북한선교의 꿈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 강서구 양천로에 위치한 뉴코리아교회(정형신 목사)는 일명 ‘탈북자교회’다. 2011년 8월 정형신 목사의 가정에서 탈북자 3가정과 함께 시작된 교회는 금새 6가정으로 늘어나 2012년 9월 예배 처소를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올해 6월 성도들과 후원자들의 피땀 어린 수고와 헌신으로 예배당을 확장시킨 뉴코리아교회는 8월 감격스러운 3주년 감사예배도 드렸으며, 현재는 탈북자 10가정과 남한의 2가정이 모여 함께 예배드리고 삶을 나누고 있다. 탈북자사역의 핵심은 ‘신뢰 관계 형성’ 한국교회가 개 교회에서 해외선교부, 다문화선교부 등으로 탈북자사역을 시작한지는 15~20년 가량 되지만 ‘문화차이’라는 높은 벽에 부딪혀 실패의 쓴 잔을 마시게 된 경우가 허다하다. 탈북자 담당 교역자도 탈북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탈북자들도 교회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이에 탈북자사역을 했던 많은 이들이 논의한 끝에 “탈북자들의 정서를 잘 알고 있는 같은 탈북자가 목회를 하면 그들도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겠는가”의 결론이 도출됐고, 현재는 전국에 ‘탈북자교회’로 통칭하는 교회가 30개가량 세워졌다. ▲ 정형신 목사 이외에도 문화적, 재정적 다양한 어려움을 안고 있는 탈북자사역에 그야말로 올인하고 있는 목회자가 바로 정형신 목사다. 비록 본인은 탈북 목회자가 아닌 평범한 한국의 신학대학원생 이었지만 1학년 재학 시절 첫 사역지부터 지금까지 그에게는 오로지 탈북자사역 뿐이었다. “탈북자사역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은 관계 형성이다. 이 분들에게 얼마나 좋은 프로그램과 교회 시스템, 성경공부 교재를 가지고 학습을 하는지는 중요치 않다. 어떤 사람이 예수에 대해 이야기 하는가.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7년의 탈북자 사역으로 정 목사가 얻은 값진 노하우다. 하나님은 정 목사가 탈북자사역을 할 수 있도록 강권적으로 역사하셨지만, 첫 시작부터 그에게 주어진 사역 환경은 녹록치 않았다. 첫 사역지였던 새평양순복음교회에서의 반년 사역 후 담임목회자의 부재로 생출내기 전도사가 후임 목회자가 된 것이다. 가뜩이나 신뢰 관계가 웬만큼 두텁지 않으면 마음을 쉬이 내어주지 않는 탈북자들의 눈에 한국의 28살짜리 생출내기 전도사는 낯설기만 한 존재였다. 바깥에서 교회를 바라볼 때도 ‘탈북자 교회에 저런 걸(?) 갖다놨냐’는 둥 ‘이제 저 교회는 망했네’등 냉랭한 시선만이 가득했다. 이런 어려운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이 시기에 탈북자 성도의 소개로 만나게 된 아내였다. 아내 역시 탈북자였지만 정 목사에게는 어떠한 거리낌도 없었고, 아내와의 만남은 오히려 마음 적으로 어려웠던 부분들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남남북녀의 아름다운 만남은 얼음장 같았던 탈북자 성도들의 마음 또한 녹였다. ‘저 한국 전도사가 와서 얼마나 있다 가나’ 싶은 마음으로 지켜보던 성도들은 북한의 여자를 만나 데이트하고 결혼까지 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의 벽을 허물어 활짝 열었다. 당시 함께 신앙 생활했던 탈북자 성도의 가정들이 현재 뉴코리아교회의 개척멤버가 되어 교회를 자립시켜나가고 정 목사와 함께 북한선교의 비전을 키워나가고 있다. ▲ 뉴코리아교회 예배광경 ‘탈북자’가 주축이 된 사역으로 통일한국 준비하는 뉴코리아교회 뉴코리아교회는 대한민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의 신앙과 삶을 세우는 ‘탈북자 전도’, ‘북한선교 확산’, 북한사람과 남한사람이 함께 예배하는 ‘통일준비’ 등 3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설립됐다. 이 모든 사역의 주축이 되는 핵심역량은 바로 ‘탈북자’에 있다. 탈북자가 주축이 되어 교회가 운영되고 북한선교 비전이 전해지는 것이다. 정 목사는 “탈북자들은 북한의 문이 열리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특별히 신앙을 가진 탈북자들의 첫 번째 목적은 북한에 교회를 세우는 것”이라며 “한국교회는 이런 준비된 자원들, 준비된 사람들을 지원하고 세워서 북한선교의 일꾼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뉴코리아교회는 비영리민간단체 ‘이음세움나눔터’를 만들고, ‘찾아가는 북한선교학교’를 통해 북한이탈주민 정착도우미 교육과정을 강의하고 있다. 또한 통일이 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북한선교단체 ‘북한복음화불씨선교회’를 만들어 탈북자들이 할 수 있는 실제적인 통일준비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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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1-12
  • 카이캄 교회탐방 ①하나님형상교회
    경기도 여주에 위치한 단 하나의 독립교회. 하나님형상교회(최봉수 목사)의 개척 이야기는 신기하리만큼 순탄했다. 겁 많은 목사의 소심함에도 불구하고 가정집에서 드리기 시작한 예배는 옥탑방으로 이어졌고, 단 1년 만에 예기치 않은 건축헌금으로 상가교회를 얻는 등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매 순간 감사와 감탄이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최봉수 목사와 이종남 사모에게 교회 운영에 필요한 거의 모든 집기들이 갖춰진 곳에 교회를 세우게 하셨고,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오직 하나님만 의뢰하는 목회로 자리잡게 하셨다. ▲ 처음 예배를 시작한 최 목사 자택의 옥탑방에 개척 멤버들이 모였다. 버티고 버텼던 목회자의 길 최 목사는 원래 운전학원 강사이자 자동차 세일즈맨이자 자동차보험 영업사원이었다. 자신이 가르친 학생에게 차를 팔았고, 자동차 보험도 가입시키는 등 나름 큰 돈을 만져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최 목사는 돈 많은 장로가 되어 교회를 많이 세우겠다는 생각은 했을지언정 목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안했다. 아니, 목사만은 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날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 계기가 되어 ‘내가 앞으로 뭘 하며 살아가야 좋을까’에 대해 새삼 다시 고민하게 됐다. 금식도 하고 기도원도 다녔지만 딱히 와닿는 것이 없었다. 길을 인도해 준 이는 이종남 사모였다. 이 사모는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강권했고, 최 목사는 회사에 출근하듯 도서관을 오가며 성경을 열심히 읽었다. 하지만 말씀들이 다 거짓말로 느껴져 성경책을 벽에 던지기도 했다. 사모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새 성경책을 구입해 왔고, 최 목사는 이번엔 ‘나같은 사람이 얼마나 있나’를 찾으며 성경을 다시 읽어내려갔다. 그러자 성경에는 제대로 된 사람이 하나도 없으며 하나님을 만난 후 변화됐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자신도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최 목사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소명을 깨달을 수 있게 ‘무언가’를 달라고 기도했다. 그렇게 받은 말씀이 잠언 25장 13절이다.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 이 말씀으로 인해 최 목사의 삶은 일대 변혁기를 맞는다. 아침마다 “하나님, 뭐가 가장 시원하시겠어요?”라는 질문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됐고, 한 평생 시원한 얼음 냉수처럼 살아가고 싶다는 방향도 설정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 목사는 목회의 길을 걷기가 두려웠다. 하지만 사모의 끊임없는 지원과 주변 목사들의 격려로 용기를 내게 됐다. ▲ 옥탑방에서 책상을 놓고 성경공부를 하던 모습 옥탑방에서 상가교회로, 예상치 못한 역사들 우여곡절 끝에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대학교에 편입해 신학공부를 마친 그는 자연스럽게 한국독립교회선교단체연합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카이캄의 목사가 됐다. 첫 예배는 경기도 여주의 최 목사 가정에서 드려졌다. 아이들 5명과 아내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 최 목사는 모든 것이 두려웠다. 맨땅에 헤딩한다는 생각에 앞이 막막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 목사는 “내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개척 당시 인원은 10명에 불과했다. 자택 옥탑방에서 예배를 드렸지만 성도들은 차츰 늘어갔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오직 말씀이 주는 힘으로 교회 공동체는 성장해갔다. 너무 노후된 차량을 근심하던 성도들이 차를 사라며 마련해 준 2000만원이 건축헌금으로 변경됐다. 뜻하지 않게 대전의 모 장로가 자신이 몰던 차량을 기증함으로, 여주대학교 정문 앞 상가 2층을 얻어 지금의 하나님형상교회가 자리잡게 됐다. ▲ 현재의 하나님형상교회. 노후된 차량을 바꾸라는 성도들의 헌금으로 지금의 2층 상가를 얻어 예배를 드리고 있다. 말씀 위에 제자 만들기 집중 너무 많은 간증 속에 살아온 영향 때문일까. 최 목사에게는 하나님 나라에 취직했다는 담대함, 이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심지어 최 목사와 이 사모에게는 ‘내일’이라는 것도 없었다.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모아진 헌금은 5%는 선교, 5%는 지역사회, 10%는 사역자들을 위해 적립한다. 지역사회에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웃이 있다면 그동안 적립된 구제헌금 전부를 기부한다. 선교사들이 하나님형상교회를 찾아오면 모아진 선교헌금 전체를 후원하는 형태다. 최 목사는 “우리에게는 내일이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면서 “가능하면 아끼지 말고, 나누지 않고 모두 베푸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님형상교회의 모토는 ‘We are making disciple’이다. 말씀 공부를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최 목사는 성도들을 말씀의 반석 위에 세워 제자를 만들기 위해 집중하고 있다. 최 목사는 작은교회를 지향하며 130명이 되면 분리독립을 준비할 것이라 밝혔다. 잘 훈련된 30~40명을 추려서 여주에 우리와 동일한 교회 8개를 만드는 것이 비전이라고 전했다. ▲ 최봉수 목사와 이종남 사모 가족. 딸만 셋이던 때,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주신다 약속하셨고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후 약속대로 두 아들을 주셨다. 서두르지 말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 카이캄 25회 안수식에서 목사안수를 받은 최 목사는 후배 목사들에게 성과가 나지 않아도 불안해하며 서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의 목회는 단 한 번도 하나님을 앞서지 않았고, 오히려 버티며 하나님께 끌려가다시피 왔기 때문일 거다. “개척을 준비하는 많은 목사들이 너무 빨리 성과를 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며 “빚을 과도하게 내서 개척하고 성도들을 모으려 무리하지 말라.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은 결코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그 시간을 기다릴 줄 아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을 몰라서 답답할 뿐, 하나님은 분명히 일하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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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1-05
  • 풀러신학교 마크 총장 갈보리교회서 제자도 강조
    교회와 목사가 뭘 하는지보다 예수님이 어떻게 사셨는지에 초점 맞추면 건강한 교회 세계 최고의 복음주의신학교인 풀러신학교 마크 래버튼 총장이 11월2일 분당 갈보리교회(이웅조 목사) 주일 2부 예배에서 강단에 올라 ‘처음, 중간 그리고 마지막’이란 주제로 말씀을 전했다. 이웅조 목사의 통역으로 선포된 이날 설교에서 마크 총장은 처음 예수를 믿었던 신앙과 예수를 믿고 있는 과정, 그리고 마지막까지 부름받은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면서 이것은 계속적인 개혁과 변화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마태복음 4장18~25절을 본문으로 제시한 마크 총장은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시며 어부들을 제자로 처음 부르신 장면을 설명하고 ‘나를 따르라’라는 두 단어에 포함된 중요한 의미들을 풀어나갔다. 마크 총장은 “예수님은 ‘나에게 와서 배우라’거나 ‘함께 일하자’는 것이 아니라 ‘같이 가자’고 청하셨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모든 성도를 부르시는 핵심”이라며 “아주 단순하고 쉬워서 가끔 잘 잊어버릴 수 있는 내용이지만, 교회 전체에 핵심적인 중요한 내용”이라고 조명했다. 그는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고 보고 듣고 함께 다니면서 경험하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이는 예수님과의 인간관계를 단적으로 말하고 있다”며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는 말씀은 예수님이 부르신 까닭과 앞으로 이어질 사역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제시했다. 마크 총장은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라고 하셨지만 여기에는 단순하면서도 상당히 깊은 의미가 있다”며 “여기에는 당시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함께하기 싫어했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예수님이 관심을 가진 이들과 함께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방인은 물론 각종 질병에 고통받는 자들을 만나고 치유하셨다. 예수님은 단지 내가 하는대로 따라하면 된다고 말씀하셨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이어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것과 예수님이 관심을 가진 모든 일을 함께 한다는 것은 매우 단순하게 표현되는 말이지만 이게 바로 예수를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제자도”라며 “교회에서 행해지는 많은 일과 사역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는 핵심을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기쁨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사실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것만도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마크 총장은 그 과정에 있어서 더 큰 차원의 요청이 있음을 일깨웠다. 바로 “내가 곧 십자가를 질 것인데, 나를 따라 너희도 내가 진 십자가를 지라”는 놀라운 가르침이다. 마크 총장은 “제자들은 처음에는 단순히 예수님을 따라가는 줄로만 알았다. 그 과정에서 도전과 상황들이 아주 흥분됐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하지만 중간쯤 와서 다시 ‘나를 따르라’라고 요청하시는데, 그 요청은 굉장히 쉽지 않은 요청이었다. ‘너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는 말씀은 예수를 섬기는 우리 그리스도의 제자도에도 동일하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강도가 높아짐에 따라 거룩함에 가까이 가기 위해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도 무거워진다는 설명이다. 마크 총장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셔서 베드로를 찾아가 관계를 회복하는 장면은 베드로에게 예수님과 경험했던 모든 일 중에서 최고의 순간일 것이라고 제시했다. 그는 “베드로는 이때 ‘요한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고, 예수님은 ‘너는 너만 신경쓰라, 요한은 신경쓰지 말라’고 대답하셨다”면서 “이보다 더 중요한 부르심은 이 땅에 없다. 이보다 중요하고 긴밀하고 놀라운 진리는 없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이것은 성별이나 나이나 부로 평가해서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된 것”이라며 “우리 가정과 일터 어디서나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신다. 그래서 우리가 매일 이 땅에 살아가는 순간순간 예수님의 부르심을 기억하고 살아가야 한다. 이럴 때 하나님의 교회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우리 삶의 모든 변화의 시작은 우리 안에서 이뤄지고 밖으로 표출된다”고 강조했다. “처음에도 중간에도 마지막까지 예수님을 따라가겠나”라고 질문을 던진 마크 총장은 “여러분이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뜰 때부터 다시 잘 때까지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기억하며 노력하는 삶을 살 것”을 도전했다. 아울러 “한국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문화와 교회가 성장한 것과 같이 우리는 아주 쉽게 다른 곳에 신경을 쓰게 된다. 미국의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의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이 결코 쉽지는 않다”면서 “그때 교회는 항상 좀 더 새로운 전략과 인간적인 방법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가르쳐주시지 않았다. 간단하게 나를 따르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과 교회의 모든 문제는 나를 따르라는 명령 속에서 해결되는 줄 믿으라”고 메시지를 던졌다. 덧붙여 “우리의 신앙생활은 교회가 어떻게 하는지, 목사가 뭘 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어떻게 사셨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건강한 교회가 된다”면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교회, 예수님을 위해 무엇이든 희생하는 제자들, 처음과 중간과 끝까지 예수님만 따라가는 제자들이 되길 바란다”고 축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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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1-03
  • 우리들교회 성장 비결, 결국 말씀 묵상이다
    ‘날마다 큐티하는 여자’로 잘 알려진 우리들교회 김양재 목사가 자신만의 독특한 목회 노하우를 한국교회에 공개했다. 여성 목회자로는 아주 드물게 성도 1만여 명이 넘는 대형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김 목사는 우리들교회의 성장 비결은 서로의 때를 밀어주는 ‘목욕탕 목회’라고 밝혔다. 우리들교회는 지난 20~23일 분당 판교채플에서 목욕탕 목회 세미나 ‘THINK’를 개최하고 사역 소개와 교회 탐방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번 세미나의 제목인 ‘THINK’는 김 목사가 목욕탕 목회를 실천하며 핵심 키워드로 삼은 5가지 덕목의 이니셜을 따온 것이다. △죄 고백과 간증(Telling) △거룩한 삶(Holifying) △큐티(Interpreting) △공동체 돌봄(Nursing) △가정 중수(Keeping)가 그것이다. 3박4일 동안 진행된 이번 세미나는 이 다섯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성장한 우리들교회의 스토리가 소개됐다. 지난 2003년 서울 강남 휘문고등학교 체육관을 빌려 출발한 우리들교회는 교회 설립 10년 만인 2013년 경기도 분당 판교에 지상 6층 규모의 새 성전을 건축해 휘문채플과 판교채플로 나뉘어 예배를 드리고 있다. 11년 전 13가정과 함께 개척한 교회가 1만여 명의 성도로 가득한 대형교회로 성장한 것이다. 김 목사가 말하는 목욕탕 목회는 성도들이 목욕탕에서 옷을 벗듯이 자신의 가려진 치부를 숨김없이 드러내놓고 하나님을 만나도록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는 ‘나의 수치를 드러낼 수 있는 곳이 건강한 공동체’라고 정의한다. 이날 세미나에서 김 목사는 “목욕탕교회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면서 서로의 때를 밀어온 우리 교회의 별칭”이라며 “이제는 목욕탕 교회의 모든 것을 나누고 한국교회를 섬기려 한다”고 말했다. 우리들교회의 성장 비결은 특별한 프로그램이나 엄청난 기획력이 아니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가까이에서 돌보는 목회의 기본에 가장 충실했던 것이 비결이었다. 김 목사는 “우리들교회는 자체 건물이 없었기 때문에 개척 후 10년 동안은 부흥회나 집회 등 행사같은 것을 할 수 없었다”면서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직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돌보는 목회 본질에만 초점을 맞춰왔다”고 소개했다. 단순히 치부를 드러내고 상처를 나눈다고 해서 공동체성이 강화되고 신앙이 성장되지는 않는다. 그 이면에는 우리들교회의 견고한 말씀 묵상이 있었다. 4대째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난 김 목사는 결혼 후 남편이 병환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고, 13년 동안 바깥출입도 자유롭지 못한 호된 시집살이를 겪었다. 그러한 고난 가운데 김 목사가 의지할 곳은 오직 말씀뿐이었다. 김 목사는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 말씀을 묵상했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나는 성도들과 내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나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치부를 드러낸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로 인해 교회에 분란이 생긴 적은 없다”면서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견고한 말씀 묵상 덕분이다. 모든 성도가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적용한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가정이 살아나는 것을 체험했다”고 말했다. 단순히 죄를 고백하고 기도로 중보해주는 단계를 넘어 말씀을 묵상하고 서로의 때를 밀어주는 과정에서 상처와 갈등이 치유되는 경험들이 쌓여 지금의 ‘목욕탕 목회’가 정립된 것이다. 김 목사는 “우리들교회가 부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말씀 묵상이다. 말씀을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할 때 성도가 성숙해진다”며 “성숙은 더 나은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생각과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성숙한 성도들이 모여 자원하는 리더십과 공동체가 형성됐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또 “우리 교회 청년부가 많이 부흥해 2000명 정도 된다. 요즘에도 매 주일 청년들의 결혼식 주례를 서지만 지금까지 10년 동안 이혼한 커플이 한 쌍도 없다”면서 “하나님께서 말씀 묵상과 가정 중수를 통해 보여주시고자 하는 뜻이 있어 우리 교회에 많은 열매를 허락하신 줄 믿는다”고 말했다. 우리들교회 설립 후 처음 개최된 이번 세미나에서는 부부 목장 오리엔테이션 및 탐방, 교육부서 사역 소개, 간증 페스티벌, 여자목장 탐방 등 다양한 순서도 진행돼 참석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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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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