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좋은데 교회는 싫어’

  • 입력 2018.09.13 11:32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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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듣는 소리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분명히 알아야 될 것이 있다. ‘예수가 좋으면 그냥 좋은 것이지 뭔 말이 많으냐?’ 불호령을 내리거나 핀잔을 주는 것이 믿음 좋은 어른의 태도라고 말하겠지만, 그러나 이 말의 속뜻을 분명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의 기독교가 학문(신학)적으로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오고 있으나 그것의 실천은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뜻의 또 다른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9월에 접어들면서 또 다시 맞은 ‘총회의 계절’을 실감케 하듯 여기저기서 총회와 관련한 이런저런 소식들이 줄을 잇는다. 한국 교회 모두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 싶은 중요한 사안들도 다소 상정이 되어 진지한토의가 이루어지는 것 같아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것 같다. 그런가 하면 과연 이런 절차까지도 진짜로 하나님이 요구하실까 싶은 지극히 인간적인 냄새가 짙은 것들도 없지 않은 것 같다.

교회 내의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살짝 구색 맞추기 식이 아니냐 하는 것 들이더러 있어 보인다는 말이다. 한동안 교회 안팎에서 적지 않은 논쟁이 되었던 ‘담임목사 세습’에 관한 것 만 해도 그렇다. 총회가 어떤 결정을 내려도 후유증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옳다고 결정을 내리면 집 안팎은 뒤숭숭해질 수밖에 없으나 교회가 교단을 떠나지는 않는다는 좋은(?) 점이 있다. 반대로 옳지 않다는 결정을 내리면 잘했다고 박수는 받을는지 모르나 교회는 탈퇴 성명을 내고 교단을 떠날 것이 자명하다. 안건으로 상정을 하는 것만으로도 용기 있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결론은 어느 쪽이 더 교단에 유익이겠느냐 하는 데 기준을 두고 결정을 내린다면 이는 하나님의 뜻을 먼저 헤아려 보거나 사회정의에 비추어 한국 교회의 미래를 염두에 두지 않는, 그야말로 큰 의미는 없어 보이는 결과일 것이다.

또 하나, 교인의 수는 상당한 수가 줄었다고 하면서 이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 보다는 총회 회관이나 새로 짓자는 안건을 내놓고 다른 교단보다 회관의 규모가 커야 되지 않겠느냐는 등의 목소리가 관심을 끈다면 이 또한 바람직한 총회의 모습은 결코 아닐 것이다. 하나님이 총회 회관의 규모가 작으면 책망이라도 하실까봐 그러는지는 모르겠으나 으레 개 교회의 예배당도 사이즈가 다른 교회보다 커야 하고, 총회 회관 역시 커야 한다는 생각들이나 갖고 있다면 과연 이것이 예수님의 뜻을 잘 나타내는 일일까 좀 생각해 볼 일이다. 성경은 이르기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라 하였는데 우리는 그것을 잘 행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그 이유는 그 예수의 마음을 잘 행하는 것이 곧 ‘예수도 좋고 교회도 좋다.’는 말로 바뀌도록 세상을 이끌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에 예수의 마음이 없음으로 인하여 예수님의 마음이 있어야 할 자리에 욕심이 들어와 주인 노릇하고 있는 까닭이다. 성경은 말씀하신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에 이르느니라(약1:15).” 세습도 욕심에서 비롯되었으며, 성도의 수는 줄어도 집(회관)은 크게 짓고 보자는 것 또한 욕심 때문이다. 누구를 위한 욕심인가? 지금 한국 교회는 자신을 바로 보아야 한다. 대형 교회 하나를 놓치지 않고 붙잡기 위해 교회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지탄을 감수해가면서까지 옳지 않은 것을 옳다고 판단 내리는 한심스런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교인의 수가 많고 예배당 건물 크게 지은 교회담임목사가 한국 교회 전체를 뒤흔드는 모순의 반복이 하나님 나라에는 큰손실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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