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 목양칼럼] 님의 무덤 앞에 꽃다발을 드리며

  • 입력 2018.10.07 08:35
  • 기자명 임경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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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께서 잠들어 계신 무덤 초입에 노란 들국화가 피어 있네요. 저 옆엔 패랭이꽃도 피어 있고요. 님께서 이 곳에 묻히신지 30년이죠. 저는 11년 전부터 님의 무덤을 다섯 번째 찾아옵니다. 11년 전 어느 날 밤, “믿음의 사람, 효암 백남조” 라는 책을 읽으며 밤을 지새웠지요. 가슴이 뛰고 눈시울이 젖어 새벽기도 시간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1913년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죽전리라는 두메산골에 태어나 어린 나이에 대구로 가셔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일본으로 청운의 꿈을 키우다가 다시 서울로, 그리고 부산으로 내려가셔서 그 꿈의 나래를 펼치시던 당신... 마침내 당신께서는 복음을 들으시고 하나님께 미친 삶을 사셨지요. 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빚진 자가 되셔서 주의 이름으로 자선을 베풀며 눈물로 씨를 뿌리는 삶을 사셨습니다. 사업이 조금씩 일어나면서 고향에 성산교회를 세워주시고 성산초등학교까지 지어서 헌납하셨습니다. 또한 구절양장같은 길을 시원한 신작로 길로 내 주면서 고향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셨죠. 섬기시던 부전교회 대지 일부를 헌납하셨고 누구보다도 부전교회 건축에 헌신을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 수많은 교회에 땅을 헌납하시고 교회당을 건축해주셨습니다.

그런 때 우리 총회는 WCC 문제로 허허벌판 오지로 갈라져 나와 가슴 시린 새벽 순례자의 삶을 출발해야 했습니다. 신발 끈을 동여매고 새벽 광야를 걸어야 했지만,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신학과 신앙, 그리고 교단의 정통성은 우리 것이었지만, 그러나 외형적으로는 맨발, 맨손, 맨땅 뿐이었습니다. 신학교마저 남산에서 쫓겨나 이리저리 배회해야 했던 서럽고 눈물진 광야 생활, 그때 님께서는 총신대학교 건립을 위해 사당동에 학교 부지 1만 8천 평을 사서 아낌없이 헌납하셨습니다. 그것도 공장 아래에 있는 양철집에 늙으신 노모님을 모시면서 말이죠. 자기 집 하나 변변히 짓지도 못한 사람, 노모 한 분도 편안히 모시지 못한 불효자식 주제에 어떻게 그런 위대한 결단을 하실 수 있었단 말입니까? 그 산으로 첩첩이 둘러싸인 두메산골 중에 산골에 태어난 촌뜨기 출신이 어떻게 그런 큰 믿음의 배포를 가지셨단 말입니까?

장로님께서 그런 헌신을 하지 않으셨다면 회사의 부도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사업의 부도를 막지 못하여 당신은 감옥 생활을 하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하나님께 원망하지 않으시고 총신대 부지를 헌납한 것을 후회하지 않으셨다지요. 님의 눈물 젖은 헌신으로 오늘 우리 교단은 우리나라 최대의 교단이 되었고 총신대학교 역시 우리나라 최대의 신학대학으로 발전을 하였습니다. 저는 장로님을 만나본 적도 없고 소싯적에는 알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장로님이 가신 후 장로님에 대한 전기를 읽고 나서 한국교회 목사 중의 한 사람으로서, 아니 우리 교단의 목사로서 너무도 감사하고 빚진 자의 마음으로 11년 전 님께서 누워계신 무덤 앞에 꽃다발을 드리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후로도 우리 교회 장로님들과 함께 세 번을 왔습니다. 오늘 님이 태어나시고 자라셨던 성주지역 복음화대성회에 와서 다섯 번째로 꽃다발을 들고 왔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송구하고 부끄럽고 무거운 마음으로 왔습니다. 요 근래에 와서 우리 교단과 총신에 장로님과 같은 분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총신대학교는 교권을 쟁탈하기 위한 전투장이 되어 버렸고 그 결과 관선이사들이 학교를 관리하며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천국에서 이 모습을 보신다면 장로님의 마음이 얼마나 비통하시겠습니까? 그러나 천국에는 눈물과 애통과 비통함이 없으시겠지요. 저는 총신대 문제를 대화로 풀기를 원했고 관선이사가 들어오는 것을 심히 우려한 목사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우려가 틀리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부디 관선이사가 들어오는 쪽을 선택한 분들의 생각이 맞기를 눈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장로님의 묘 앞에 송구한 마음으로 꽃다발 하나를 헌화합니다. 정말 송구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이곳에 왔지만 다음엔 기필코 장로님의 뜻과 헌신의 목적이 회복되는 기쁨을 가지고 달려오겠습니다.

벌써 찬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되었네요. 이제 조금 있으면 님의 무덤을 에워싸고 있는 사방의 산에는 붉은 단풍이 들겠죠. 그러나 제가 다시 찾아올 때는 총신의 봄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그때는 님의 무덤 주변에 연분홍 진달래가 피어 있고 진분홍 할미꽃도 피어 있겠지요. 그날이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부활절이면 참 좋겠습니다. “오, 하나님, 한국교회에 백남조 장로님 같은 분은 더 이상 없는가요? 아니, 우리 교단에 제2, 제3의 백남조는 다시 태어나지 않는 건가요.” “우리 교회가 제2의 백남조 역할을 하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 장로님 가운데도 제2, 제3의 백남조가 나오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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