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 입력 2018.12.20 10:39
  • 기자명 컵뉴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교회, 그 어느 때보다도 ‘회개’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해였으면서도 ‘회개(悔改)’는 실종된 한 해였다고 말해야 옳을 것 같다. 주(主)의 오심을 대망하던 대림절(대강절)도 지나고 성탄의 기쁜 소식조차 곳곳에서 들려오는 자기변호의 목청에 묻혀 쓸쓸함을 더하는 가운데 새해맞이 준비로 마음들만 부산스러워 보인다. 2018년 한 해는 그렇게 저물어 가는데 우리는 지난 해 적지 않은 부끄러움을 남겼으면서도 끝내 그것들을 회개하지 않은 허물은 보지 못하는 것 같다. 그 많은 허물에 대한 회개를 찾아볼 수 없는 아쉬움이 너무나 크다. 교회는 2018년 대림절을 지나는 어간에도 다툼은 그치지 않았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한 이유가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이다. 2천 년 전 유대 땅 베들레헴에 아기 예수가 태어나던 날 천군과 천사들이 찬양하기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2:14)” 하였은즉 주의 나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자세는 당연히 ‘평화’여야 옳지 않을까 한다.

그러함에도 교회는 ‘평화’라는 이름을 차용해 오기조차 참으로 민망한 구석이 너무나 많다. 세상에서나 볼 수 있는 패거리문화가 길들여진 탓일까, 담임목사의 자격(?)을 놓고 세상 법정에 판결을 맡긴 채로 오랜 시간 다툼을 벌여온 교회를 다시 오실 주님은 어떻게 보고 계실까 궁금하다. 믿었던 목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억울함과 바르지 못한 목자의 행실이 고쳐지기를 바라며 이를 고발해야 했던 자매들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것은 또 무슨 말로 추슬러야 할까! 이 다툼 또한 주님을 기다리는 대망의 계절에도 현재진행형이다. 세습(世襲)이라는 이름으로 교회 밖 세상에까지 관심을 불러일으킨 일은, 이를 무효화해야 한다는 측과 이에 맞서 ‘교회를 지키자’는 쪽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 다툼은 점점 확전(擴戰)될 기미마저 보인다는 소문이다. 어느 쪽이 옳다 하고 손을 들어준들 상대방이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리 없는 한국 교회는 이 또한 끝날 줄 모르는 다툼일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다투는 자들이 모두가 자기의 주장이 하나님의 법이요, 하나님의 뜻이라 하니 오시는 예수님의 발걸음은 천근만근이 아닐까 심히 염려되는 것이다. 다툼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무엇이 되기 위하여 이렇게 본질이 아닌 것을 두고 열심히 싸우고 있는가? 그것이 주님의 영광을 위한 순교의 길이라 생각해서인가? 아니면 주님이 승천하기 전 제자들에게 이르신 분부의 말씀 중 하나인 것으로 알고 하는 일인가? 결론은 그 어느 것도 아닌, 교회(계)에서의 자신의 출세를 바라봄이 아닌가 싶다. 교회는 이런저런 일로 많은 사람이 모이면 으레 출세의 징검다리가 되거나 장사를 하더라도 손쉽게 대박을 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하기 참 좋은 곳이다. 적어도 믿음이 적은 자들, 아니 예수를 팔아 자기의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말이다. 주님은 세상에 계실 때 몸소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까지 섬김의 본을 보이셨을 뿐 아니라 “너희들도 성령을 받아 이와 같이 섬김의 종이 되라”고 가르치셨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주님의 교회’를 맡기셨다. 교회의 주인이 되라고 맡기신 것이 아니라 관리자로 맡기셨다. 그러함에도 2018년 지금의 한국 교회는 서로 ‘주인 노릇’을 하려는 사람들 뿐, 관리자로서의 충성을 다하려는 이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제 한 해를 매듭지으면서 자신에게 물어보자. ‘나는 무엇을 했는가?’ 지금은 회개해야 할 시간이다. 그것도 처절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