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과 한국 교회

  • 입력 2019.02.21 15:22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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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항일(抗日)운동의 중심에는 기독교가 있었다. 다른 종교나 여타의 단체들에서 무슨 항의를 하든 상관없이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것은3·1운동 당시 주동자로 간주되어 일제의 검찰에 피검(被檢)된 인사들의 종교별 분류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그 분명한 근거로 독립선언서에 민족대표로 이름을 올린 33인 중에는 남강 이승훈 장로를 비롯하여 기독교 인사가 16명(천도교 15명, 불교 2명)으로 가장 많다는 점이 첫째 이를 뒷받침한다. 뿐만 아니라 일제의 검찰에 송치된 인물들 중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51.2%인 3065명이 기독교인이었다고 한다. 더욱이 여성 피검자들 가운데에는65.4%가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은 가히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이는 기독교가 3·1운동의 핵심적 역할을 하였음을 증 거 하 는 것 이 다 ( 이 상 국민일보2019.1.1.자 참조). 이는 당시의 시대상황에 비추어 볼 때 기독교는 분명 우리민족의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했음이 분명해 보일 뿐 아니라 백성들로 부터가장 신뢰받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음을 밝히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독립선언서 가운데 나타난 바 “2천만민중의 성충(誠忠)을 합하여…”라는 구절을 통해 당시 우리나라 인구가 약 2천만 명쯤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그 가운데 기독교 인구는 과연 얼마나 되었을지 정확한 통계는 알 수가 없으되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기독교 인구 천만 명’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초라한 숫자였을 것임은 확실해 보인다. 중요한 것은 당시의 우리나라 성도(聖徒)들이 지금의 우리들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을 것이라는 점이다.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은 지금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받고 있는 조롱과 멸시의 대상으로서의 기독교인들이 결코 아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3·1운동 100년, 그리고 우리! 지금 기독교는 과연 세상의 중심에 서 있기나한 것인가? 세상의 중심에 서 있다면 얼마나 세상으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으며, 세상을 하나님 앞으로 이끄는 위치에 서 있는가? 우리는 이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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