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 목양 칼럼] 그 섬에 가고 싶다

  • 입력 2019.07.14 07:58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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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람을 좋아하는 목사입니다. 목사가 되기 전에도 사람을 만나고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교제하기를 좋아하는 아주 사교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제가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하면 신기하게도 아이들이 다 모여 들었습니다. 어떤 때는 저희 집 마루에만 앉아 있어도 친구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만큼 저는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을 끄는 스타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저는 외딴 섬에 가서 지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특히 무인도 같은 곳에 가서 사색을 하고 명상도 해 보고 싶었습니다. 무인도는 그만두고라도 깊은 산속에 가서 천막을 치고 일주일이라도 지내며 깊은 묵상을 하면서 좋은 글과 시도 써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사람을 좋아하고 끌었던 목사이지만 군중으로 심신이 지쳤다고 할까요? 그래서 사람을 떠나 외딴섬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전반기 교역자수련회 중 둘째 날 안주봉 장로님이 개발계획을 하고 있는 무인도에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무인도라고 해서 잔뜩 기대를 하고 갔습니다. 가보니 정말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였습니다. 물론 현재는 사람이 살지 않지만 예전에 펜션을 지어놓고 사람이 산 흔적이 남아 있어서 조금은 실망을 하였습니다. 저는 펜션도 없고 어느 누구의 발길이 닿지 않은 그런 무인도를 상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가니까 산길에 개망초꽃도 피고 과꽃과 나리꽃도 피어 있는 것입니다. 개망초꽃은 원산지가 캐나다이고 주로 철도 가에서 피었던 꽃인데, 어떻게 이런 무인도에까지 피어났을까 너무 신기한 것입니다. ‘누가 심었을까, 그 씨앗이 펜션을 지을때 목재와 함께 왔을까...’ 더 신기한 것은 그곳에 산딸기가 있는 것입니다. 산딸기는 거의 재배를 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이 외딴섬에 어떻게 산딸기가 심겨져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더 신비롭기만 하였습니다.

제가 산딸기를 따 먹으니까 이분 저분들이 더 따다 주었습니다. 무인도에서 야생의 열매요 자연의 상징인 산딸기를 따 먹는다는 것이 너무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문득 산딸기라는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깊고 깊은 숲 속 잎새 뒤에 숨어 있는 산딸기 딸까 말까 망설이다 그냥 갑니다.” 그런데 저는 그냥 두지 않고 따 먹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따 먹었습니다. 그리고 깊은 사색에 잠겨 보았습니다. ‘아, 이곳에서 숙식만 할 수 있다면 단 며칠만이라도 와서 살고 싶다. 아니, 정말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 외딴 무인도에서 단 일주일이라도 자연인으로 살아보고 싶다. 적막한 해변에 텐트를 치고 파도소리를 들으며 노을이 지고 밤이 깊어가고 별들이 반짝이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한때 미국 사회에서 40~50대 남자들이 경영 일선에서 은퇴한 후 모든 것을 다 뒤로하고 사막이나 산속에 은둔하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만큼 그들도 사람들과의 관계에 지쳤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저는 오래 머물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곳에서 잠시 은둔을 경험하고 싶을 뿐이지, 다시 돌아와서 감당해야 할 시대적 사명과 사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저는 교역자 수련회를 인도해야 할 시간에 서울로 장례식 조문을 다녀왔고 이어서 교역자들에게 계속 강의를 하며 사역 논의를 하였습니다. 교역자 수련회 기간에도 그만큼 바쁘게 살았다는 방증이지요. 앞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제가 교단의 총회장이 되면 더 바빠질 텐데, 이렇게라도 잠시나마 무인도에 가서 산딸기를 따 먹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모릅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정현종 시인의 시처럼, 저는 바쁠수록,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을수록, 언제나 제 마음 속의 무인도를 꿈꾸고 그 섬에 가고 싶은 마음을 품고 살 것입니다. 오직 주님과만 동행하고 주님만 바라보며 걷는 그 무인도의 해변을 그리워할 것입니다. 숨 쉴 틈도 없이 바쁜 일정 가운데서라도, 잠시 무인도를 가고 산딸기를 따 먹을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황홀한 삶의 축복인지 모릅니다. 다시 꿈속에서라도, 가보고 싶은 하나님이 주신 환상의 축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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