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들레헴에서 골고다까지 (35)

  • 입력 2019.07.18 10:13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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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희 목사.jpg

김연희 목사 (신생중앙교회) 
[프로필] 
◈ 크리스챤 연합신문 상임회장
 
 
 

1, 유월절

2) 니고데모와 대화하심(요 3:1~21)

 

요한은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찾아 온 한 사람을 소개한다. 그가 니고데모이다. 니고데모는 “백성들을 정복한 자”라는 뜻을 가진 헬라식 이름이다. 니고데모는 정통 교리를 준수하는 바리새인이었고, 율법 교사였으며, 또한 유대인의 관원이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엄격하게 율법을 준수했으며 또 다른 사람들과 분리된 거룩한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대한 열심과 전통적인 신앙으로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들은 모세 오경을 깊이 연구하고 그 가르침대로 살려고 노력했지만 외식주의로 치우치게 되었다. 바리새인은 대부분 율법의 전문가들이었고 니고데모는 율법 선생이었기 때문에 율법에 대해서도 깊은 지식을 갖고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님께서 가르치는 교훈이 특별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또한 그는 정치 지도자였다. “유대인의 관원”이란 말은 그가 산헤드린의 공회원이라는 의미이다. 산헤드린은 유대교의 최고 의결기관이다. 산헤드린은 당시의 입법과 행정과사법권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이단을 조사해서 징계 했고, 사형을 제외한 모든 법적 판결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유대와 로마 사이의 모든 공식적인 업무를 관장했다. 그러므로 니고데모가 산헤드린의 회원이라는 사실은 그가 영향력을 가진 정치 지도자였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니고데모는 종교, 교육, 그리고 정치적으로 당시에 모든 유대인을 대표할 수 있는 전형적인 사람이었다. 니고데모와의 대화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중생에 관한 귀중한 교훈을 주는 내용이다. 니고데모는 낮에 예수님을 방문하지 않고 밤을 이용해서 예수님을 방문했다. 목적은 신앙적인 대화를 나누기 위함이었다. 밤에 찾아오게 된이유에 대해선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조용한 밤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에 더 적절하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니고데모는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 구약의 말씀을 잘 알고 있는 니고데모가 정확하게 깨닫지 못하자 다시 알려 주셨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3:5)

 

3) 수가성 여인과 대화하심(요 4:3~42)

 

수가성 여인과의 대화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서 갈릴리로 가시는 도중 사마리아를 통과하실 때 이루어진 사건이다.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의 수도였다. 북이스라엘 오므리왕이 세멜에게서 은 두 달란트를 주고 산 땅이다. 세겜에서 서쪽으로 약 20km,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67km,지중해로부터 약 40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성읍이다. 원래 세겜, 사마리아, 이블르암, 므깃도 같은 도시들은 므낫세 지파의 영토였는데(수 17장), 이 므낫세 지파의 땅을‘사마리아 지방’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신약에서 사마리아의 지경은 동쪽으로는 요단 강, 남쪽으로는 아얄론 골짜기와 욥바, 서쪽으로는 지중해, 북쪽으로는 이스르엘 골짜기가 그 경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사마리아는 오랫동안 질곡의 역사를 거치면서 수난을 당해야 했는데 그 수난의 역사 가운데 가장 혹독했던 것은 앗수르의 침공이었다.

 

사마리아

• 북 이스라엘의 세 번째 수도

• 오므리 왕이 세운 성읍

- 오므리왕이 세멜에게서 은 두 달란트에 구입

- 예루살렘 북쪽 67km, 지중해 서쪽 40km

• 이스라엘 내륙의 중부지역 전체를 의미

- 사마리아 성의 이름이 지역으로 확대

- 세겜, 사마리아, 므깃도 등의 성읍이 있다

 

B.C. 722년 앗수르의 침공으로 이스라엘과 사마리아가 멸망하고(왕하 17:3~6), 사마리아의 지방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의 일부를 당시 앗수르의 지배하에 있던 여러 지역으로 옮겼다. 그리고 앗수르는 사마리아 지방에 여러 지역으로부터 온 식민지 사람들을 이주시켰다(왕하 17:24). 앗수르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가 이스라엘을 차례로 지배하게 될 때마다 사마리아는 늘 영향을 받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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