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를 모방한 대승불교

  • 입력 2019.09.05 09:24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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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영 목사 (온누리선교회 대표)

2. 불교의 역사

1) 인도 불교

㈓ 열반 涅槃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기본적으로 윤회로부터의 탈출 곧 해탈解脫이다. 이 해탈을 얻은 상태를 열반 이라 하는데, 불교에서만 사용된 용어가 아니고 바라문婆羅門계의 교설과 자이나교 등 당시의 종교계 일반에서 불과 같이 타오르는 번뇌가 소멸된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널리 사용되었다. 불교에서도 이 점은 마찬가지로 번뇌, 망집妄執의 작용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망집이 억제되면 이를 바탕으로 하여 일어나는 괴로움도 발생하지 않으므로, 깨달음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여기에서의 괴로움의 소멸은 육체적인 괴로움의 소멸이 아니고 보다 근원적인 고뇌의 극복을 지적하는 것이다. 망집의 억제는 자기의 제어이며, 이것이 가능하다면 괴로움은 괴로움이 아니게 된다. 말하자면 인간의 괴로움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괴로움에 직면함으로써 괴로움이 없는 삶을 살아간다는 안락安樂의 경지가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깨달음은 늙음[老]·죽음[死]을 초월하는 것으로 불사不死로도 표현된다. 이것이 곧 윤회의 탈각脫却이다. 괴로움이 끊임없이 연속되는 삶이 윤회이므로, 괴로움이 극복되고 불사가 획득될 때 윤회가 멈춘다. 바라문교의 해탈은 moksa로서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남을 뜻하고 이 말을 애용하지만, 불교의 해탈은 nirvana로서 고통의 소멸을 뜻하는데 바라문교의 해탈(moksa)과는 비슷하지만 내용이 다르다. 일반적으로는 번뇌의 불을 불어 끈상태를 열반이라고 하는데, 열반은 해탈과 같은 뜻으로 풀이되기도 하나 어떤 경우에는 해탈로부터 열반이 얻어진다고 한다.

㈔ 아라한阿羅漢과 보살菩薩

열반 涅槃에 이른 성자聖者를 아라한(阿羅漢; arhan)이라고 한다. 원래는 공양供養을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의 뜻이나, 이것이 발전하여 ‘성자聖者’의 의미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붓다1)[佛陀]는 곧 아라한이었다. 붓다는 불교에서만 사용된 말은 아니고 자이나교에서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석존釋尊만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으며, 교학의 발전과 함께 다양한 ‘불타관’이 전개되었다. 한편 석존의 위대함은 후대에 이를수록 과장되었다. 여러가지 특성과 능력이 붓다에 가탁假託되어 신격화神格化되어 갔다. 그 결과 붓다는 단순히 깨달음을 얻은 사람 이상의존재가 되었으며, 인간은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이 되어도 붓다와는 다른 것으로 생각되었다. 한편 석존의 붓다로서의 그러한 위대함은 단순히 이 세상에서의 수행만으로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 전생前生에서의 수행修行의 결과 이 세상에서 최종적으로 깨달음을 얻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윤회설輪迴說과 업業 사상에서 유래한다. 석존은 전생前生에 수행자이었는데 이를 보디사트바(Bodhisattva)라고 한다. 한역漢譯경전은 이를 보리살타菩提薩埵로 음사音寫하고, 줄여서 보살菩薩이라고도 한다. 본래‘깨달음을 구하여 노력하는 사람’의 뜻으로 장차 붓다가 될 사람을 지칭한다. 그러므로 석존도 깨달음을 얻기 이전에는보살이며, 이를 과거생으로 연장하면 전생의 석존도 보살이었던 것이다. 자타카Jataka(석가모니 전생이야기) 문학의 주인공인 보살菩薩이 바로 이러한 존재이다.

㈕ 원시불교의 실천

ⅰ) 선정禪定 - ‘선禪’이란 범어梵語의 dhyana, 팔리어의jhana의 음역音譯으로, 명상冥想이라는 뜻이며 정定[samadhi삼매三昧, 등지等持]·정려靜慮·사유수思惟修·선정禪定이라고도 한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정定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선禪’은 마음을 통일하는 것, 정신통일, 마음을 하나의목표에 집중시켜, 마음이 흐트러지거나 혼란해지거나 하는 것을 막고, 지혜를 몸에 베개해서 진실의 이치에 맞는 수행법을 말한다. 선禪에는 초선初禪·2선二禪·3선三禪·4선四禪의 4단계가 있는데 이를 4선정四禪定이라 한다. 윗 단계로 올라갈수록 심집중心集中이 강해진다.

ⅱ) 계戒와 율律 - 계戒의 원어 쉴라sila에는 ‘흐름에 따르는 것과 같이 자연스런 행위’ ‘자연의 올바른 행위’의 뜻이 있는데, 자신의 사상과 행위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주체적 또는 구체적 행위를 말한다. 이에 대해 교단敎團이나 어떠한 사회집단에서 생활할 때에는 자신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발휘하면서도 최대한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기 위하여 공통의 규칙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율律’이다. 따라서 계戒와 율律은 본래 다른 것으로, 계戒가 주체적·자율적인 것임에 반해 율律은 위로부터 주어진 것이지만 그 기본은 계戒에 있다. 예를 들면 3학三學이나 8정도八正道가 바로 그것이다.

ⅲ) 37도품道品 - 윤회적 삶의 고苦를 멸滅하는 길, 곧 업의 굴레를 벗어나는 길, 그것을 해탈解脫이라고 하는데, 이 해탈에는 수행이라는 실천이 요구된다. 원시불교의 수행도로서, 4념처四念處(=염주念住)·4정근四正勤(=정단正斷)·4신족四神足(=여의족如意足)·5근五根·5력五力·7각지七覺知(=각분覺分) 및 8정도八正道 등 37도품道品이 있다. 이상理想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길은 8정도에 의해서 얻어지는데, 곧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념正念, 정정正定,정견正見, 정사正思, 정정진正精進을 말한다. 이것은 또 한계학戒學과 정학定學과 혜학慧學의 3학三學으로도 나타내고 있다. 아라한阿羅漢은 수행을 완성한 사람, 성자聖者로호칭되며, 나한羅漢이라고도 약칭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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