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를 이동하십시다(사사기 10:10~16)

  • 입력 2019.09.05 15:49
  • 기자명 컵뉴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강덕 목사.jpg

이강덕 목사(세인교회)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가나안 입성 초기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에게 선언하셨던 경고성 멘트와는 사뭇 다른 표현이 등장합니다. 본문 13절을 주목합시다.“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배경을 잠시 설명하겠습니다. 한세대학교에서 구약을 가르치는 차준희 교수는 사사 시대의 역사를 나선형 하강(downward spiral)의 역사라고 지적했습니다. 즉 10명의 사사들의 자질과 그들의 지도력이 점점 더 시간이 갈수록 하락하는 순환궤도를 걷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이후에 등장하는 입다 사사가 9번째 사사이다보니 본문의 정황 안에서 하나님은 점점 더 타락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목도하고 계셨던 것은 물론이고, 그 역사의 복판에 있었던 사사들의 면면도 마찬가지로 하강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할 때 본문 이해는 명쾌해 집니다. 사사 야일이 죽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이스라엘 공동체는 무섭게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동시에 가나안 지역의 집단적 우상 신앙을 받아들여 급속히 야웨 종교를 배격하는 어처구니없는 비극의 씨앗을 뿌립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의 행태에 너무 아프셨습니다. 그 아픔의 강도가 심하셨던 하나님은 이렇게 싸늘하게 이스라엘을 향한 절교 선언을 하신 것입니다.“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13절 하반절) 심지어 하나님의 분노가 극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메시지가 본문 11절에 있습니다. 사사기의 패턴대로 이스라엘이 집단적 우상 숭배에 빠지자 하나님은 역설적으로 그들이 섬기던 말곰과 바알의 나라인 암몬과 블레셋에게 압제를 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습관적로 회개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14절입니다.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 너희의 환난 때에 그들이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하신지라” 무슨 말입니까? 너희들이 그토록 섬기기를 원하는 너희들이 택한 그 신들에게 빌어 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을 보면서 이런 나름의 결론을 내려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반응은 무죄라고. 그렇지 않습니까? 상습범을 누가 동정하겠습니까? 하나님도 참으실 만큼 참으신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반응은 정당합니다. 바로 여기까지의 텍스트를 전제한다면 필자는 하나님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전혀 이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행동하심에 두 손 들어 항복할 의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단호하셔서 요동할 것 같지 않으셨던 하나님께서 먼저 무너지셨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 참 줏대 없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 줏대 없으신 하나님께 이론으로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필자는 받습니다. 본문 16절을 소개합니다.

“자기 가운데에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하나님은 다시는 지실 것 같지 않게 호언장담하셨지만 이스라엘이 우상을 제거하고 회개하자다시 흔들리셨습니다. 어느 정도였습니까? 이스라엘이 당하는 곤고로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셨다고 사사기 역사가는 기록합니다. 영어성경은 주님의 상태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슬퍼하셨다.’(KJV: his soul was grieved for the misery of Israel.), ‘견디지 못하셨다.’(RSV: he could bear Israel’s misery no longer.)

하나님의 사랑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내가 당하는 아픔을 견디지 못하시는 사랑, 슬퍼하시는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저와 독자들이 반응해야 하는 신앙의 자세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자리로 내 삶의 자리를 이동하는 것입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유대인 신학자인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은 이렇게 갈파한 적이 있습니다.“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 분의 꿈을 우리들의 꿈으로 간직하는 것이다.”저는 헤셀의 말을 이렇게 적용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 삶의 자리를 하나님이원하시는 자리로 이동하는 것이라고. 이 신앙적 사고의 변환만이 온전한 신앙을 유지해 나아가는 무기임을 명심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 땅을 살면서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로 공간 이동하는 저와 독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청파 교회 김기석 목사께서 쓰신 ‘오래된 새 길’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갈 꿈을 꾸는 이들에게 나는 말한다. 하나님 나라에 가는 길을 이 땅에서 잘 익혀두지 않으면 죽어서는 그 길을 영 찾지 못할 겁니다. 그러면 그 길을 어떻게 익혀야 하지요? 그러면 나는 서슴없이 대답한다. 당신의 삶의 자리에서 천국에 가면 이것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을 제거하고 사세요. 또 천국에 이것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삶에서 구현하세요.”사랑하는 독자들이여! 자리를 이동하십시다.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로. 그 이동의 몫은 주님의 몫이 아니라 여러분의 몫입니다. 샬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