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 특별기고] 외로운 담비를 위하여

  • 입력 2019.09.28 20:17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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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에 있는 우리 교회 기도원은 해발 500미터 높이에 세워졌는데,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사시사철 청정계곡에 맑은 물이 흐른다. 그 계곡 위에 원두막을 지어놓았는데 거기에 앉아 있으면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나의 귀를 씻고, 피톤치드 가득한 산바람은 내 가슴과 영혼을 씻어주며 눈이 부시도록 푸르른 나뭇잎들은 나의 지치고 피로한 눈도 씻겨준다. 얼마 전 잠시 원두막에서 기도하다 상념에 잠겨 있을 때, 문득 오래전에 우리 온 마음에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고 떠난 새끼 고라니, 담비 생각이 났다.

몇 년 전에 신도 한 분이 운전을 하고 가다 길가에 쓰러져 걷지도 못하고 시름시름 죽어가는 고라니 한 마리를 발견하고 나에게 가져왔다. 그 새끼 고라니를 본 순간 뜨거운 모성애가 피어올랐다. 그래서 상처 부위에 약을 발라주고 우유부터 먹여주었다. 그리고 시청에도 신고를 하고 동물병원에도 연락을 해 보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버려진 고라니를 수용해 주는 곳은 아무 곳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데려와 어떻게 할 것인가 가족들과 함께 회의를 했다. 다행히 집사람과 아들, 딸이 함께 가족처럼 돌봐주기로 합의를 했다. 새끼 고라니의 이름을 ‘담비’라고 부르기로 했다. 나는 가족을 잃고 혼자 남겨진 담비가 너무 가엾어서 가정예배 드릴 때도 기도하고 교인들에게도 못한 안수기도까지 해주면서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축복하였다.

온 가족이 담비를 얼마나 정성스럽게 돌보았는지 담비는 금방 건강을 회복하고 껑충껑충 뛰며 우리 가족을 따라다녔다. 그러나 아파트에서 계속 키울 수는 없어서 산 속에 있는 기도원에 갖다 놓았다. 그리고 기도원 관리인인 장로님 부부에게 조금만 더 크면 산으로 돌려보낼 테니 당분간만 잘 보살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나중에 담비가 커서 새로운 짝을 만나서 새끼도 낳으면 기도원 골짜기가 고라니 천국이 되는 꿈도 꾸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도원을 관리하는 장로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목사님, 담비가 숨을 안 쉽니다. 이상합니다. 우유도 잘 주고 정성스럽게 보살펴 주었는데 아침에 보니 담비가 죽어 있었습니다.” 소식을 듣고 기도원에 갔을 때 담비는 차가운 주검이 되어 누워 있었다. 아들과 딸은 “도대체 장로님 부부가 담비를 어떻게 키웠길래 이렇게 되었느냐”고 엉엉 소리를 내며 우는 것이다. 슬픔에 빠져 엉엉 우는 아들과 딸을 지켜보는 내 마음도 너무 아렸다. 그렇게 사랑으로 보살펴 주었는데 너무나 허망하게 우리 가족 곁을 떠나가 버린 것이다. 담비를 너무 사랑했기에 짐승의 사체이지만 소나무 밑 양지 바른 곳에 묻어 주었다.

그런데 기도원 원두막 아래 흐르는 물소리 속에, 푸른 나뭇잎들을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결 속에 담비의 생각이 스쳐간 것이다. 그리고 가련하게 죽은 담비의 마지막을 생각하면서 그때의 애처로운 마음이 다시 내 가슴을 울렸다. 한 마리 야생짐승의 생명도 귀한데, 하물며 사람의 생명과 영혼은 얼마나 귀하겠는가. 수만 명의 성도들을 목회 하면서 내 손길이 미치지 못하여 떠났든지, 아니면 나의 언행 때문에 상처를 입고 떠난 사람은 없었는지 나는 다시 돌아보았다.

내 설교방송이나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다 순수한 댓글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끔 미움과 시기, 악의로 가득 찬 댓글들도 있다. 이것 또한 상처로 인한 끝없는 악순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인간의 영혼은 유리 같아서 쉽게 상처 받고 깨지기 쉽다. 그리고 깨진 유리는 또 다른 사람을 상처 주는 흉기가 된다. 그러므로 어떻게든지 상처 받은 이를 따뜻한 가슴으로 품고, 나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까지라도 끝까지 돌보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해 본다. 깊은 산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담비, 아니 삭막한 콘크리트 도시 어딘가에서 상처받고 울고 있을지도 모르는 외로운 영혼을 위하여. 오늘도 나는 또 다른 외로운 담비를 위해 존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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