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교회 사모에게 전해진 오랜 제자들의 사랑

  • 입력 2019.10.13 18:37
  • 기자명 임경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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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에는 초대형교회 목회자들의 호화로운 생활과 높은 급여수준, 부의 대물림으로써의 담임목사직 세습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기실 절대 다수의 목회자와 가정은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힘겹게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교회 80% 이상이 미자립교회라는 통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딱 그만큼의 목회자들이 최저생활비 수준의 급여만으로 목회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질병에 걸려 수술이 필요하게 되면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 바랄 수밖에 없는 계층이 바로 이러한 목회자 가정이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한국교회에 따뜻한 미담이 전해져 온기를 전하고 있다. 수십 년 전 교회학교 선생님 부부의 고통을 전해들은 제자들이 은혜를 갚고자 십시일반 정성을 모아 수술비를 마련한 것. 이것이 씨앗이 되어 수술을 받게 됐고, 완치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됐다.

충청남도 금산군에 위치한 임마누엘교회 강대준 목사 김길려 사모 부부는 오랜 서울 목회를 뒤로 하고, 은퇴 나이에 농촌 목회를 택하여 15년 동안 사역해 왔다. 아무 것도 모르고 지옥 갈 사람 천국 보내야 한다는 열정만으로 시골로 내려온 부부에게는 엄청난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네 주민 대다수가 토속신앙이어서 산신제를 지내고 나무와 돌에 굿을 벌였으며, 동네 중앙에는 절이 자리잡고 있어 교회 간판 다는 것조차 반대에 직면했다. 결국 ‘소망기도원’이라는 이름으로 교회를 시작했고, 김길려 사모는 시골 텃세와 따돌림 속에서도 농삿일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교회 건물이 노후되어 직접 리모델링을 하다가 상처를 입기 일쑤였고, 서울에서 내려온 사모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시골 아줌마로 변해버렸다. 개울가의 돌을 가져다 돌담을 쌓았다가 신고를 당해 조사를 받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러는 가운데 차차 이웃들을 사귀고 나서야 교회가 자리를 잡게 됐다.

이제 한 고비 넘겼는가 싶었지만 더 큰 아픔이 부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네에 먼저 자리잡고 있던 교회에서 ‘저 교회는 이단이니 절대 가지 말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이단 누명을 쓰게 된 것이다. 노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어렵게 전도하여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르신들을 업고 냇물을 건너며 예배에 참석시켰던 부부에게는,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기존 교회의 공격이 더욱 큰 아픔이었다.

진짜 이단의 공격도 있었다. 김 사모는 “정신병자를 앞세워 있지도 않은 일들을 교묘히 꾸며서 성도들을 시험들게 하고, 산옮기기 작전으로 목사님을 쫓아내고 그들의 목사를 세우려고 고발을 했으나 무죄로 판결난데다, 오히려 그들은 200만원의 벌금형까지 받았다”며 “시골이라고 이단들이 없는게 아니다. 지금도 시시때때로 이단들이 성도로 위장하여 들어온다. 오직 말씀과 기도에 힘쓰며 싸워왔다”고 말했다.

이러한 고통 속에서 김길려 사모는 “하나님, 하나님이 아무도 없는 이곳에 저희 내외를 보내주셨으니 책임져 주세요. 억울합니다. 도와주세요”라고 금식으로 간구하며 봉사로 섬겨왔다.

심령의 근심이 뼈를 마르게 한다(잠17:22)고 마음고생을 하면서도 오직 성도들만을 돌보는데 여념이 없었던 김길녀 사모에게 농촌목회 15년 만에 허리가 굽어지는 척추 질환이 찾아왔다.

밤이면 잠 못 이루는 통증을 호소하다가도 해가 뜨면 사모일과 봉사와 전도를 쉬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병은 악화됐지만, 김 사모는 ‘주님이 부르시면 가리라’고 생각하며 맡은 바 사명에만 충실한 세월을 살았다.

그러던 중에 가까운 목회자의 강권으로 병원 진찰을 받게 됐고, 수술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문제는 수술비였다. 서울 대형병원에 수술날짜를 잡았다가 연기하기를 반복하다가 결국은 수술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김 사모는 ‘나 혼자만 참으면 자식들도 성도들도 힘들게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아프지 않은 것처럼 견디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십년을 함께 살아온 강 목사에게는 사모의 불편한 모습을 숨길 수 없었다. 참는 표정과 서툰 걸음걸이에 강 목사의 속도 타들어갔다.

바로 그때, 하나님은 돕는 자를 보내주셨다. 바로 50년 전 서울 용산 금양교회에서 가르쳤던 어린이들이 환갑이 된 나이에 선생님의 사연을 듣고 섬기고 싶다며 수술비를 보내온 것이다. 수술비의 절반에 달하는 금액에 힘입어 김 사모는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칠 수 있었고, 나머지 수술비 잔액도 하나님의 은혜로 모두 감당할 수 있었다.

김 사모는 “우리 하나님이 제가 기도한 대로 다 이루어주셨다. 눈물겹도록 감사하면서 요양하고 있다. 앞으로 4개월만 잘 요양하면 구부러진 허리도 펴지고 하반신 마비증세도 완전히 사라진다고 한다”면서 “하루 종일 말씀과 기도로 지내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고 감격을 전했다.

이어 “김성태 최근영 박광희 이계삼 서용희 서정임 최희라 이정규 등 금양교회학교 제자분들의 사랑에 특별히 감사드린다. 저의 수술을 위해 하루 세 번씩 기도하신 동역자분들, 금식기도까지 해주신 목사님들과 이웃들의 기도 덕분이라고 믿는다”며 “생생하게 살아계신 주님의 손길과 은혜임을 고백한다. 남은 여생 제2의 삶으로 더욱 헌신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번 수술대에 오르면서도 김 사모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겼다. 척추종양과 디스크 협착, 척추전방전위증 등이 복합된 큰 수술이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잘못될 경우를 대비해 △수술이 잘못돼도 하나님이 정해주신 수명이니 아무도 원망하지 말 것 △시신은 서울S대 기증증서대로 기증하라 △사랑하는 분들 바쁜 중에 불편 끼치고 싶지 않으니 장례예식은 하지 말라 △유품 정리하면서 며느리와 딸에게 밥 차리라 하지 말고 맛있는 밥 사먹으라는 등의 유서까지 작성해 놓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김 사모를 통해 하실 일이 더 남으셨는지 그의 생명은 연장시켜주셨고, 사랑과 감사를 더해주셨다.

김 사모는 “사모님들은 아파도 힘들어도, 믿음 없는 성도들의 억지 소리에도 묵묵히 기도로 참으며 살아야 하는 자리다. 겉은 멀쩡할지라도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자리”라며 “이번 수술을 통해 지금까지 주님의 품안에서 헛되게 살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주안에서 누리는 이 기쁨과 감사를 함께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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