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정해서야 되겠습니까?(사사기 11:29~33)

  • 입력 2019.11.14 10:47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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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덕 목사(세인교회)

오늘 본문은 입다가 시도한 암몬과의 담판 대화가 결렬되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암몬과의 일대전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음을 알려주는 기사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눈에 띄는 첫 번째 구절, 본문 29절입니다.“이에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의 미스베에이르고 길르앗의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에게로 나아갈 때에”아마도 입다는 이제 전쟁을 통해 승패를 갈라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자 나름 부담감이 심했던 것 같습니다. 해서 그는 발 빠른 행보를 보였습니다. 자기의 고향 길르앗은 물론 므낫세와 미스베(미스바)까지 두루 다니며 군사들을 모집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입다는 발품 노력으로 인해 그가 원하는 군사들을 어느 정도 모집하게 됩니다. 이런 치열한 과정을 치르고 있는 입다의 상황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 사사기 기자는 아주 중요한 팩트를 한 구절에서 기록합니다.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이성적으로 접근하면 말이 안 되는 사사기 기자의 보고입니다. 주지했듯이 입다는 건달이나 다름없는 깡패로 살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우여곡절 끝에 길르앗의 지도자가 된 뒤에도 말과 삶이 일치하지 않는 삶을 연속으로 살았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자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을 보내주셨다는 것입니까? 모순입니다. 적지 않은 고민을 했지만 한 가지의 해석으로 귀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인격적인 양보하심. 그렇습니다. 당신의 백성을 암몬의 압제에서 해방시키시려는 하나님의 일하심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로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은혜를 받은 입다는 하나님을 향해서 마땅히 인격적으로 반응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행태는 경악할 만한 형편없는 반응이었기에 너무나 실망스러웠습니다.

본문 30~31절에서 우리가 이미 너무 잘 아는 입다가 하나님께 걸었던 흥정이 나옵니다.“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주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풀어 설명하겠습니다. 입다는 만에 하나, 이 전쟁에서 하나님이 나를 승리하게 만들어 주신다면 내가 승전하고 길르앗으로 돌아올 때 제일 먼저 나를 영접하는 자를 번제물로 드리겠다고 서원을 한 것입니다. 대단히 위험스러운 행태였습니다. 세밀하게 해석해 보겠습니다. 본문 30절에 기록된‘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원문을 보면 ‘대문에서 나오는 것’으로 번역하는 것이 정확한 번역입니다. ‘나오는 것’이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의 ‘것’이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번제물로 드리겠다고 부연되었기에 이것은 분명히 동물일 것이라고 생각을 하기 쉬운데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왜? 사사 시대를 포함한 고대 근동의 역사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그 환영의 대열에 짐승이 동원되지 않았다는 것이 정설이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반드시 사람이 환영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습니다. 그렇다면 입다는 분명 하나님께 서원을 한 번제물의 대상을 동물이 아닌 사람을 생각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즉 사람을 번제물로 드리려 했다는 말입니다. 그가 이렇게 하려던 이유는 입다는 어려서 길르앗에 만연해 있었던 모압의 그 모스 신에 대한 종교적 제의 중에 하나인 어린 아이를 번제로 바치는 행위를 보고 자랐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신은 달랐지만 역시 길르앗에 만연해 있었던 암몬의 신 몰렉에게 바치던 종교적 행위인 인간 번제를 보고 자랐기에 입다는 이방의 종교적인 습관에 물들어 인신제사를 별스럽게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얼마나입다의 반응이 하나님을 향한 비 신앙적인 행위인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입다는 하나님이 금하신 인간 번제를 그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말도 안 되는 흥정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하나님, 만에 하나 내가 암몬과의 전투에서 하나님이 나를 이기게 하시면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이 그토록 싫어하시는 사람을 한 명 번제로 드리겠습니다.”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 교수인 데이빗 라센은 일찍이 이렇게 갈파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직면한 가장 큰 위기는 교회가 세상 속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세상이 있다는 것이다.”(탐욕의 복음을 버려라, 새물결플러스, p,160)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오늘날 성도라고 부르는 자들의 가장 큰 위기는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세상의 논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논리에 지배당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믿는 하나님과 흥정하려는 자들은 세상의 논리를 가지고 하나님을 다루려는 무서운 범죄입니다. 이들이 교회 안에서 판을 치고 있다는 것이 현대 교회의 치명적인 위기입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번영신학이요, 마이클 호튼이 말한 대로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Christless Christanity)의 현대적 교회 자화상입니다. 하나님과 절대로 흥정하지 마십시다. 신앙은 흥정이 아니라 그 분을 향한 고백이자 결단입니다. 이러한 신실한 헌신과 고백을 전제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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