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 목양 칼럼] 첫눈은 언제 내릴까?

  • 입력 2019.12.01 07:51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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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에 김포공항에 근무하는 전영모 안수집사님이 계십니다. 제가 국내선을 거의 안 타지만 가끔 제주도를 갈 때는 탑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공항에 들렀더니 손녀 현주에게 갖다 주라고 하면서 조그마한 ‘눈 내리는 관제탑’ 장난감 선물을 주는 것입니다. 그 선물을 보자 ‘첫눈은 언제 내릴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시가 하나 찾아와서 ‘눈 내리는 관제탑’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하얀 눈은 수신호가 없네요 / 아직 크리스마스가 멀었는데도 / 교회 종탑과 성당의 예수상 / 서울역 노숙자의 헝클어진 머리 위에도 소리 없이 눈이 내리고 / 비행기의 이착륙을 관장하는 관제탑엔 / 천사가 눈세례를 주고 있어요 / 외로운 관제사는 하얀 눈송이들을 보며 / 첫사랑의 몽상에 빠져 있어 / 이륙을 착륙으로, 착륙을 이륙으로 착각하여 / 마음대로 수신호를 해 버려요 / 관제사 때문에 / 비행기들이 더 이상 이륙도 착륙도 못하고 / 기체가 서로 부딪치고 얽히고 박살이 날 상황이지만 / 그래도 사람들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 눈송이들을 손바닥으로 받으며 마냥 행복해 하네요.”

아직 크리스마스가 멀었는데 공항에 첫눈이 펑펑 내리니까 난리가 난 것입니다. 그 첫눈은 천사의 눈세례였죠. 그러니 첫눈의 눈세례를 맞고 관제사가 첫사랑의 몽상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그로 인해 공항이 난리가 났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눈송이들을 손바닥으로 받으며 마냥 행복해하죠. 갑자기 이런 따뜻한 시가 떠오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첫눈이 내리면 사람들은 첫사랑이나 옛 시절을 추억하면서 마냥 행복해 합니다. 요즘 세상이 많이 삭막해 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첫눈이 내리면 사람들은 들뜨고 행복해합니다. 연인들이 서로 팔짱을 끼고 다니면서 여전히 군고구마나 군밤을 사 먹고 가족들은 즐거운 외식을 하기도 합니다. 옛날 시골에서는 눈이 많이 오면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산에서 토끼몰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눈이 내리는 날은 하늘에서 마치 축복을 해주는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요. 그래서 저는 ‘눈’이라는 시를 쓰기도 하였습니다.

“하늘에서 눈이 내리네 / 하나님이 보내신 사랑의 편지가 / 새하얀 꽃잎이 되어 내려오네 / 사랑하는 이들에게 오늘은 모두들 사랑하라고 / 하나님의 사랑이 하얀 편지되어 / 꽃잎으로 떨어지는 날은 / 너와 나는 무조건 하나.”

저는 지금 날씨가 추워져도 서재에 있는 벽난로를 피우지 않고 있습니다. 첫눈이 오는 날 난로를 피우려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날은 벽난로에 고구마를 구워 먹고 싶습니다. 만약에 첫눈이 펑펑 내려서 눈이 쌓이면 군고구마를 몇 개 싸들고 무조건 산길을 걷고 싶습니다. 평소 토요산행을 하던 장로님들과 함께 남들이 밟지 않은 눈 덮인 산을 먼저 가고 싶습니다. 아니, 한없이 다리가 아프도록 산길을 걷고 싶습니다. 눈 덮인 산길을 걸으며 옛날에 토끼몰이를 하던 일과 썰매를 타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말입니다. 또 눈사람을 만들어보고 싶기도 하고요. 그리고 또 걸을 것입니다. 제가 제일 먼저 앞장서서 하얀 눈밭 위에 발자국을 찍으면서 말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남이 가보지 않은 길을 상상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걸어온 길이 남이 가지 않는 길이었지 않습니까? 남이 하지 않은 공교회와 공적 사역의 길을 열어 왔으니까요. 그래서 더욱 눈 덮인 산길에 저의 발자국을 찍으며 걷고 또 걷고 싶습니다.

과연 첫눈은 언제나 내릴까요? 토요일에 내리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주일날 첫눈이 내리면 산행은 절대 불가능하겠지요. 요즘은 나이가 먹어 가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왠지 더 동심을 꿈꾸게 되고 마음이 더 순수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첫눈이 오는 날 밤은 하얗게 떨어지는 눈송이가 제 가슴을 포근하게 덮어주는 하얀 솜이불이 되어 눈부신 설원의 꿈을 꾸며 잠들고 싶습니다. 이런 하얀 꿈의 축복이 우리 모든 새에덴의 성도들에게도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니,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에게도 첫눈이 오는 날 이러한 행복이 가득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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