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25)

  • 입력 2020.01.17 09:13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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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수 목사
▣ 영월주님의교회 

▣ 전 터키 선교사

 

 

수라구사 (헬라어 Συράκουσαι, 이태리어 Syracusa)

수라구사는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인 시실리 섬의 동쪽 해안에 위치한 곳으로 현재는 시라쿠사(Syracusa)로 부른다. 본래 이 섬은 기원전 8세기에 고린도에서 온 그리스인들이 건설한 오르티지아(Ortygia) 섬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는데,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와 문화가 풍부하게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편, 수라구사는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B.C287~212)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다. 청년 시절 그는 알렉산드리아에서 공부하고 그리스의 사모스 섬 등에서 활동하다가 말년에 이곳에 돌아와 제 2차 포에니 전쟁 중에 사망하였다고 전한다. 당시 로마군은 2년 동안의 공방전 끝에 시라쿠사를 점령하였는데,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의하면 도시가 함락될 당시 아르키메데스는 기하학의 문제를 놓고 고심하고 있었다고 한다. 시라쿠사가 함락되던 날, 로마 군인이 그에게 찾아와 당시 이곳을 점령한 마르켈루스 장군을 접견하라고 명령하였으나, 문제를 푸는 도중이라고 거절하고 그가 소유한 해시계와 천문학을 연구하던 도구를 귀중한 보물로 오인하여 이를 약탈하려는 그 병사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평소 아르키메데스를 아끼던 마르켈루스 장군은 도시를 함락시키면서 부하들에게 그의 안전을 당부하였으나 그가 무지한 병사에 의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하였다고 한다. 아르키메데스가 사망한 지 137년이 지난 B.C 75년, 당시 로마의 정치가였던 키케로가 재무관으로 이곳에 오게 되었다. 평소 수학에 관심이 많던 그는 아르키메데스의 무덤에 대한 이야기를 확인하기 위해 사방으로 찾아다닌 끝에, 마침내 시라쿠사 인근의 관목 사이에 버려진 그의 묘비를 발견하였다. 그는 아르키메데스의 묘비에는 원기둥과 구가 그려져 있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신이 찾은 묘가 아르키메데스의 것이라 확신하였던 것이다. 그의 묘비에는 그가 증명한 같은 높이의 원기둥과 구의 부피 관계를 나타내는 그림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수라구사는 고대 스파르타와 고린도와 동맹을 맺은 강력한 도시로, 당시 그리스 쪽에서 오는 모든 배들이 정박하는 활발한 항구도시이자 고대로부터 헬라의 문화와 문물이 들어 온 곳이기도 하다. 키케로는 화려한 수라구사를 일컬어 “세상에서가장 위대하고 가장 아름다운 그리스 도시”라고 극찬하였다. 현재 이곳에 있는 유적지로는 기원전 5세기에 세워졌으나 이후에는 교회로 개조된 아테나 신전과 헬라시대의 극장, 그리고 로마시대의 원형극장과 요새 등이 남아있어, 3000년에 걸친 지중해의 역사와 문화를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편, 시실리의 남동쪽에는 기원전 13세기에서 기원전 7세기에 만들어진 판타리카(Pantalica)의 네크로폴리스(Necropolis)라는 진귀한 유적이 있는데, 이곳은 바위를 파서 만든 무덤으로 무려 5000여 개의 무덤이 산등성이에 자리하고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 유산의 문화재로 등재되어 있다. 현재 도시의 중심에는 인구가 12만 명 정도 거주하고 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사도 바울이 복음을 들고 로마로 압송하여 가던 중에 이곳 수라구사에서 잠시 머물게 되었다고 전한다.

11 석 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 그 배의머리 장식은 디오스구로라 12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13 거기서 둘러 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낸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14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무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행28:11~14)바울은 수라구사에 사흘간 머물면서도 이곳에 사는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므로 이곳에 거주하는 자들이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듣는 복을 얻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 일행은 수라구사의 카타콤에 바울이 이곳에 사흘 간 머무는 동안 이곳에서 제단을 쌓고 복음을 전파했다고 전하는 장소와 돌 제단, 그리고 3세기경으로 추정되는 벽에 장식된 프레스코화를 돌아보았다. 참으로 감회가 새롭기만 하다. 사도바울은 수라구사에 도착하여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위에 있는 레기온과 보디올을 거쳐 육지로 올라 아피아 가도를 따라 로마로 향하게 된다(행 27:27,28:1∼14). 하지만 그가 거쳐 간 곳은 오래 머물지 않고 비록 잠시 머물렀을지라도,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남긴 그리스도의 향기를 생각하니 복음에 대한 바울의 열정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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