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애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2)

  • 입력 2020.03.26 15:14
  • 기자명 컵뉴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성민 목사.jpg

하성민 목사 (소망전원교회)

성도는 모든 사람이 몽둥이를 휘두르고 채찍을 휘두를 때도 때리지 않고 끌어안는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이 욕하는 사람을 위로하는 사람입니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사람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사랑 받을 만한 조건을 갖지 못한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창조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모든 상황은 하나님의 뜻을 펼치기 위한 섭리의 과정입니다. 몽둥이는 사람의 생각을 펼치기 위한 방법이고 기도는 하나님의 생각을 펼치기 위한 방법입니다. 기도 후에 몽둥이를 사용한 것보다 못한 결과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눈 쌓인 언덕을 한 번에 오르지 않고 돌아간다고 해도 이루어집니다. 다만 무엇인가가 성도의 발걸음을 막으면 그때는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상황과 환경, 사건과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시는 것은 기도하라는 신호를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는 세상 사람들처럼 몽둥이를 꺼내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서서 잘 가고 있는지? 바른 길인지, 가야 할 길인지 돌아서야 하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대상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대상이 사람이든 짐승이든 사물이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의 모든 것들에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될수 있습니다. 농촌 성도들은 소가 아파도 목사님을 부르고 돼지가 아파도 목사님을 부릅니다. 그러면 목사님은 찾아가서 기도하고수의사를 부르라고 합니다. 수의사가 와서 치료되기도 하지만 목사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짐승을 낫게 하실 때도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과연 옳은 행위인지는 학자들의 판단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가축을 기르는 성도들의 간절한 마음을 생각할 때 목회자는 간절한 기도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과 연결된 모든 것이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고 성도들의 신앙생활과도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힘으로 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사람의 힘으로 되는 일은 부자연스럽고 불편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순리가 펼쳐집니다. 몽둥이를 쓰거나 억지를 쓰면 부딪쳐서 역류합니다. 순리를 따르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고, 억지를 쓰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옆집 애가 잘 커야 우리 애도 잘 클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애만 잘 키우면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다 커서 잘못 자란 옆집 애로 인해 우리 애가 사고를 당할 수 있습니다.해병대 사고, 전방 GOP 사고, 왕따, 길거리 칼부림 사건, 묻지마 범죄 등은 아무 잘못 없는 청춘들이 잘못 자란 청춘들에 의해 피해자가 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부모의 평생 고생이 옆집 애로 인해 물거품이 되고 헛수고와 아픔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 애가 잘 크는 만큼 옆집 애도 잘 커야 합니다. 우리 애를 위해 기도할 때 옆집 애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내 물건을 소중히 하는 만큼 남의 물건도 소중히 해야 하고,내 인생을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남의 인생도 안타까워해야합니다. 그것이 성도입니다. 세상은 자기 아픔에 빠져 있지만 성도는 남의 아픔까지도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의 문제는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성도의 문제입니다. 성도는 자신이 사는 사회와 분리되지 않습니다. 세상의 아픔이 곧 성도의 아픔입니다. 성도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자기 아이를 위해서도 기도하지 않지만 성도는 옆집 아이를 위해서도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