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자는 누구일까?

  • 입력 2020.04.23 11:41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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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목사 (아름다운교회)
[프로필]
▣ 순복음 신학교 교수
▣ 前 일기연, 42대 고양시기독교연합회장
▣ 사랑이 있는 마을 담임
▣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
 

예수님은 공생애 중에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복음서의 이야기들은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중에는 스스로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도 있었고, 예수님이 찾아가서 만난 사람도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지도자였던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밤에 몰래 찾아와서 예수님이 메시아인지를 확인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과 신앙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그저 대화로만 끝났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만났지만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사마리아 수가성의 한 여인, 예수님이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은 예수님이 찾아갔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실 때 일부러 사마리아를 지나가셨습니다. 성경은 그때의 상황을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요 4:6)고 전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대낮의 뜨거운 태양 볕을 피해 이른 아침과 저녁에 활동을 합니다.

 

예수님은 새벽에 길을 떠나 여섯 시, 지금시간으로 정오가 될 때까지 비지땀을 흘리며 뜨거운 광야 길을 걸어오신 것입니다. 얼마나 지치고 피곤했으면 우물곁에 그대로 주저앉으셨겠습니까? 예수님은 왜 한낮에 여행을 하셨을까요?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한 사마리아 여인이아무도 물 길어 오지 않는 그 시간에 물 길으러 나오는 줄을 알고 그 시간에 맞추기 위해 부지런히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찾아가셔서 만난 이 여인은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즉시 예수님이 메시아가 되신다는 사실을 전하는 전도 부인이 되었습니다. 이 대조적인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예수님을 찾아간 사람은 가진 자였고, 강자였고, 존경받는 자였고, 뭔가를 할 수 있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찾아간 사람은 갖지 못한 자였고, 약자였고, 손가락질을 받는 자였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찾아간 자는 예수님을 발견했고, 변화되었고, 증언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찾아간 사람은 주로 가난하고 병들고, 상처받고, 버림받고, 소외된 지극히 작은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변화되고 쓰임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눈길은 그런 자들을향하고 있습니다. 작은 자들은 교회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작은 자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작은 교회는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고무시를 당합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에서 칭찬받은 교회는 가난했던 서머나 교회였고(계 2:9), 작은 능력을 가진 빌라델비아 교회였습니다(계 3:8). ‘작은 교회 살리기’라는 말은 작은 교회가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음을 전제로 하는 말입니다. 의도는 좋지만 보는 시각이 잘못되었습니다. 작다고 해서 생명력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큰 꽃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산야의 작은 꽃들도 아름답습니다. 큰 교회는 뭔가 잘하고, 대단하고, 은혜가 넘친다고 생각하고 작은 교회는 뭔가 잘못하고 있고, 문제가 있고, 성령의 역사가나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피상적인 관점은 잘못되었습니다. 교회 사이즈의 크고 작음이 판단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사람들은 외모를 보고 판단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는 외모로 판단하는 실수를 범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사 6:1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그루터기, 즉 남은 자는 누구일까요? 엘리야 시대에 사람들은 물신(物神) 바알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지만 남은 자 7천이 있었습니다. 물질만능주의 우상 시대인 오늘날 남은 자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아마도 타협하지 않고 드러나지 않은 작은 자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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