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14주 이하 낙태 허용’ 입법예고한 정부

  • 입력 2020.10.07 13:44
  • 기자명 강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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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11일, 형법상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다. 법 제정 66년 만인 올해 12월31일, 낙태죄는 효력을 잃게 된다. 임신한 여성이 낙태를 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는 ‘자기낙태죄’와 의료진이 임신한 여성의 동의를 받아 낙태시술을 할 때 2년 이하 징역으로 처벌하는 ‘업무상 동의낙태죄’, 의학·윤리학·위생학적 사유가 있는 경우 낙태시술을 진행할 수 있도록 규정한 ‘모자보건법 14조’의 개정이 불가피한 상태다.

이에 법무부와 보건복지부는 7일 현재, 낙태죄를 유지하는 대신 임신 14주 이하인 경우 낙태를 조건 없이 허용하고,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으면 임신 24주 때까지 낙태가 가능해지도록 입법을 예고했다. ‘먹는 낙태약’으로 알려진 미프진 합법화도 추진한다고 전해졌다.

개정안에는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해 낙태할 경우 의사나 전문가 상담과 24시간의 숙려기간을 거치면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는 내용이 담겼으며, 부모 등 법정 대리인의 동의를 받지 못한 미성년자의 경우 상담 사실확인서만 있으면 시술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겨 논란이 예상된다.

그간 낙태죄 존폐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해온 여성계와 의료계, 종교계는 정부의 이번 입법예고로 더욱 깊은 갈등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존폐 여부 뿐만 아니라 개정안의 내용 역시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고려하지 않으면 더 큰 사회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개신교와 천주교를 비롯한 종교계는 지금까지 일관되게 낙태죄 폐지 반대의 입장을 취해오고 있다. 한국천주교주교단는 지난 8월 양성평등정책위원회의 낙태죄 폐지 권고 보도가 나온 뒤 즉시 유감 표명을 한 바 있다.

주교단 측은 “여성의 행복과 자기 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보다 앞설 수 없다. 태아와 산모는 엄연히 서로 다른 존재이며 태아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의 범위 안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낙태죄 완전 폐지’ 방향의 입법 추진을 강력히 반대한다”고 천명했다.

주교단은 또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법률 개정을 앞둔 현 시점에서 우리 사회가 임신과 출산에 대해 공동 책임을 지는 공정한 제도를 마련하고, 더 나은 대한민국으로서 생명존중의 토대와 생명문화 건설에 매진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한국교회언론회(대표 유만석 목사)는 “현재도 한국은 OECD 주요 국가들 가운데 1000명당 낙태 건수가 20명으로 최고율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전면적인 낙태를 허용한다면 태아 살해의 증가는 불문가지(不問可知)”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낙태죄에 대한 개정을 해야 한다면, 태아의 생명을 존중해야 하고, 여성의 건강을 위한 것에 제한해야 하고, 낙태를 상업적 목적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낙태 수술을 거부하는 양심적이고 종교적인 의료인을 처벌하지 않는 등의 보호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언론회는 생명의 시작을 ‘수정(受精)’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회는 “생명의 시작은 인위적으로 기간을 정해서도 안 될 것이며, 수정됐을 때 이미 생명으로 인정하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우리 자신들도 수정으로부터 시작하여 한 생명으로 이 땅에 태어났고, 예수님도 태아로부터 시작하여 이 땅에 오셨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반해 여성계 원로 100인으로 구성된 ‘호주제 폐지 운동을 함께한 여성 100인’ 측은 낙태죄 전면 폐지를 촉구했다.

이들은 “호주제 폐지에 대해 격렬한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오히려 호주제를 폐지한 결과 많은 여성들이 호주제로 인한 차별과 억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며 “그 어떤 여성도 임신 중지를 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도록 형법 제27장 ‘낙태의 죄’는 반드시 삭제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여성을 성과 재생산 권리의 주체로 인정 △성평등교육과 피임교육을 모든 시민에게 실시 △원치 않는 임신 예방, 임신 중지 접근성 확대, 안전한 의료지원 체계 마련 등 정부의 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요청했다.

교육계, 의료계, 시민단체, 대학원생 등 각계각층의 109명 여성들이 뜻을 함께한 ‘여성과 태아 모두를 위한 여성생명연대’는 낙태죄 전면 폐지를 주장하는 여성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며 낙태죄 폐지 국가를 거부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연대는 “우리나라 낙태의 98%는 사회경제적 사유의 낙태이고, 대부분 12주 미만에서 낙태가 이루어지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임신 14주와 사회경제적 사유의 낙태 허용은 사실상 낙태 합법화”라는 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연대는 태아가 생명임을 알지만 고통스러운 현실 때문에 차라리 낙태죄를 완전 폐지해달라고 외치는 현 세태에 대해 안타까워하면서도 낙태죄 전면 폐지만이 여성의 고통 해결이나 문제 해결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여성들이 준비되지 않은 임신, 원치 않은 임신으로 고통 받으며 도움이 필요할 때, 낙태만 법적으로 허용한다면 여성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낙태를 합법적으로 강요당하는, 오히려 더 큰 영성 차별과 폭력이 될 것”이라며 결국 낙태의 무거운 짐을 여성 혼자 짊어지게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이 순간도 낙태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에게 그들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국가는 그것을 제공하기 위한 입법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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