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인에게 듣는 ‘미얀마 민주항쟁 증언의 시간’

  • 입력 2021.03.16 23:30
  • 기자명 김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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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민주항쟁 증언의 시간에 참석한 킨 메이타 대표와 헤이 만 헤인 학생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지금 미얀마 청년들은 혈액형과 연락처, 사망 시 장기기증을 맹세하는 글을 쓰고 있다. 교도소에 몇 번이나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길거리에 나와 시위에 참여하며 감옥보다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는 것이 더 괴롭고 무섭다고 했다”(헤이 만 헤인 학생의 증언)

미얀마 군부 쿠데타 사태와 미얀마 민주항쟁에 대한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총회장 신정호 목사, 이하 예장통합) 사회봉사부 화해와평화위원회(위원장 최광순 목사)는 16일 ‘미얀마 민주항쟁 증언의 시간’을 가졌다.

오상렬 목사(예장통합 도농사회처 총무)의 사회로 시작된 이날 증언의 시간에는 먼저 ‘미얀마 군부 쿠데타 한 달의 기록’을 볼 수 있는 짧은 영상을 시청했다.

이후 재한미얀마청년연대 헤이 만 헤인 학생이 ‘군부 쿠데타와 민주항쟁, 미얀마 현지의 이야기’를 전하는 증언의 시간을 가졌다.

헤이 만 헤인은 “군부 쿠데타 발생 당시 연락 두절은 물론 인터넷이 통제되고 통신이 끊겨 외신을 통해 쿠데타 소식을 알게 됐다”며 “쿠데타 사실을 확인하고, 72시간 이내에 불법 시위를 하면 군부에 진압 명분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돌아서 미얀마 내 분위기는 조용했고 모두가 조심스러웠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침묵의 72시간이 지난 이후 미얀마 국민들은 야밤에 ‘냄비나 팬을 두드리는 행위’를 함으로써 쿠데타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냄비를 두드리는 행위는 미얀마에서 악귀를 쫓아낸다는 뜻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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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 만 헤인 학생이 침묵의 72시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헤이 만 헤인은 “결국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그리고 다양한 세대, X세대(62~88년생), Y세대(88~94년생), Z세대(95년생 이후)들이 단합하고 연대해 유령 시위, 무인 시위, 오토바이 시위, 미디어자유보장 시위 등 여러 방법으로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특히 이번 시위에서 나타난 청년들의 열정을 소개하며 “미얀마 청년들은 혈액형과 연락처, 사망 시 장기기증을 맹세하는 글을 쓰고 있다. 시위로 인해 교도소에 몇 번이나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길거리에 나와 시위에 참여한다”며 “이들은 ‘감옥보다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는 것이 더 괴롭고 무서워 한다’고” 전했다.

헤이 만 헤인은 “언론 보도에는 모자이크 처리된 사진들이 나오지만, 지인들을 통해 모자이크 처리되지 않은 사진을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에 죄책감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재한미얀마청년연대를 설립하게 됐다. 2월7일부터 국회의사당, 영사관, 미얀마대사관, 광화문, 유엔, 조계종 등 미얀마 군부 쿠데타 저항운동과 기자회견, 기도회, 모금 활동 등을 펼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아직 군부 쿠데타가 종식되지 않았지만 미얀마와 시민들이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많은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 미얀마가 제자리 또는 그보다 낮은 상태로 돌아갈지 모르겠다. 전국에 있는 여러 계층의 미얀마인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헤이 만 헤인은 “제가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영역도 없고 학생이다 보니 제약이 많다”면서 “또 한국에 있는 미얀마인들 대부분이 이주노동자와 학생이어서 형편이 어렵다. 그래서 저희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은 모금 활동뿐”이라며 재정적인 지원이 절실함을 알렸다.

마지막으로 “미얀마는 맨몸으로 싸우고 있고 심신이 많이 지쳐있다. 여러분들의 한마디 말이 큰 위로와 힘이 된다. 민주주의 국가로써 대한민국이 미얀마의 평화를 함께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진 순서에서는 수원이주민센터 킨 메이타 대표가 ‘미얀마 민주항쟁, 국내의 움직임’에 대해 증언했다.

킨 메이타는 “센터에 이주노동자, 유학생 등 공부도 하고 상담도 받는 미얀마 회원들이 60명 정도 있다”며 “이들은 지금의 상황에 대해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들은 나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다. 그러면 나는 ‘지금 공부를 하고 있으면 공부를 열심히 하면 되고, 일을 하고 있으면 돈 많이 벌면 된다’고 말한다. 나중을 위해서 지금은 이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도록 격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킨 메이타는 “그럼에도 이곳에 있는 친구들은 빨리 미얀마로 돌아가서 싸우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과 함께, 그리고 노동자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매주 일요일 경찰에 사전 신고를 하고 방역지침을 준수하며 9명 이내로 모여서 시위를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킨 메이타는 시위를 하는 이유에 대해 “시위를 통해서 미얀마 국민들에게 우리가 여기서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도 보이고 싶다. 그렇게 되면 국제사회에도 많이 알려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이날 미얀마 민주항쟁 연대지지 시간에는 김혜숙 목사가 발언했다.

김 목사는 “일단은 마음이 너무 아프고 슬프다”며 “저도 80년대 대학을 다닌 학번으로 광주사태로 인해 거리시위가 많았는데 시위에 종종 참여하다 보면 전경들의 군화발 소리만 들어도 굉장히 두렵고 힘든 가운데 있었다. ‘우리 미얀마 국민들은 얼마나 더 힘들고 처참할까’ 생각을 하니 굉장히 마음이 아팠다”고 전했다.

이어 “타국에서 도와줄 수 있는 것이 크지 않다. SNS에서 마음을 표시하거나 성금을 보내는 정도이지만 그럼에도 미얀마의 민주주의와 평화, 정의를 위해서 우리가 지지하고 연대한다는 그 마음을 전달하고 싶다. 이 땅의 정의가 살아날 수 있도록, 전 세계에 불의가 없도록, 하나님께서 우리 편에 서시리라 믿는다”고 소망했다.

김 목사의 발언 이후 킨 메이타 대표가 준비한 38명의 희생자들 사진 앞에서 참석자들 모두가 추모하는 시간을 가지며 이날 증언의 시간은 마무리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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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통합 사회봉사부 화해와평화위원회(위원장 최광순 목사)는 16일 ‘미얀마 민주항쟁 증언의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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