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기부 1호 약정, 박진탁 목사 ‘영원한 생명나눔 약속’

  • 입력 2021.04.08 17:30
  • 기자명 김선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산기부 1호 박진탁 목사 ‘마지막 순간도 생명나눔 약속’100.jpg

유산 기부 약정 기념보드를 들고 있는 박진탁, 홍상희 부부

‘살아서는 신장기증으로, 죽어서는 유산기부로 생명을 살리겠다’고 나선 (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이하 본부) 이사장 박진탁 목사의 이야기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전하고 있다.

8일 오전 서울 서대문 본부 회의실에서는 박진탁 목사의 ‘유산기부 선포식 및 약정식’이 진행됐다.

지난해 10월, 본부는 하나은행과 ‘유산기부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식’을 갖고 본격적인 유산기부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후 5개월만에 첫 번째 유산기부 약정 참여자가 나타났고 1호의 주인공은 바로 본부 이사장 박진탁 목사(86세, 남)였다.

박진탁 목사는 이날 1억원을 기부하기로 약정하며 국내 1호 유산기부 약정자가 됐다.

이날 유산기부 약정식에는 먼저 본부 김동엽 사무처장이 ‘생명나눔 유산기부’를 뜻하는 ‘리본레거시 클럽(Re-Born Legacy Club)’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 사무처장은 “최근 유명 DJ가 세상을 떠나면서 유산을 기부했다는 내용이 보도되는 등 유산기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굉장히 높다”며 “리본(Re-Born)은 ‘다시 태어남과 죽지 않음’을 의미하며 레거시(Legacy)는 ‘유산’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축복된 삶의 마무리를 아름답게, 유산기부로 숭고한 나눔의 정신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마지막 순간에 생명을 나눔으로써 누군가의 삶이 다시 시작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소개했다.

인사말을 전한 박진탁 목사는  “지난 30년 간 장기기증 운동을 이끌어왔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며 “우리 부부는 본부에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했고,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는 시신기증 신청을 해놓았다. 마지막 순간 장기나 시신 등 나눌 수 있는 모든 것을 나누고, 재산의 일부도 나누고자 한다”고 알렸다.

이어서 박진탁 목사의 오랜 친구 김해철 목사가 축사를 전했다.

김 목사는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생명나눔 하나만을 바라보고 산 친구”라고 박 목사를 소개하며 “유산기부까지 약속하며 장기기증의 활성화를 염원하는 것은 박 목사에게는 사명과 같은 일일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날 유산기부 약정식에는 아내 홍상희 사모도 함께 자리했다.

홍 사모는 “신혼 초 지속적으로 헌혈을 하고, 이후에는 신장 하나를 기증하며 남편과 저에게 나눔은 일상이 된 것 같다”며 “유산기부를 약속하는 지금 이 순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 기쁘다”고 감회를 나눴다.

유산기부 1호 박진탁 목사 ‘마지막 순간도 생명나눔 약속’300.jpg

유산 기부 약정서를 작성하는 박진탁 이사장과 아내 홍상희 사모

박진탁 목사는 1991년 국내에서 최초로 장기기증 운동을 시작한 인물이다. 그는 1991년 1월24일, 한양대병원에서 신장 하나를 떼어내는 수술을 받았다. 

박 목사의 신장은 오랜 기간 신장병으로 투병하던 한 환자의 몸에 이식되어 그에게 새로운 삶을 되찾아줬다. 

이는 국내에서 최초로 진행된 타인 간 순수 신장기증 수술이었다. 1997년에는 아내 홍상희 사모(80세, 여)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에게 신장을 기증하며 부부 모두가 신장 기증인이 됐고, 지금까지 968명이 박 목사를 뒤따라 타인을 위해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의 신장을 기증했다.

이후 신장병 환자들을 지원하는 제도도 큰 성장을 이뤘다. 박 목사는 1999년 본인부담금이 없는 사랑의 인공신장실을 개원해 경제적 어려움으로 치료를 받지 못해 생을 포기해야 했던 많은 신장병 환자들에게 희소식을 안겨주었다. 이후 꾸준한 노력으로 의료보험 적용이 확대되는 등 혈액투석 치료에 대한 사회적 지원 발판이 마련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2007년에는 제주 서귀포시에 라파의 집을 개원하며 혈액투석 치료로 장거리 여행을 갈 수 없었던 신장병 환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2013년에는 뇌사 장기기증자 유가족을 위한 자조모임 ‘도너패밀리’를 결성하며 다양한 예우 사업을 펼쳐가기도 했다.

박 목사는 “장기기증 운동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92년, 군 복무 중 쓰러져 장기기증을 한 양희찬 상병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 큰 감동을 안겼다”며 “이후 2008년 권투 챔피언이었던 최요삼 선수의 장기기증이 또 한 번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선사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이어 “故 양희찬 상병과 故 최요삼 선수의 어머니를 만나며 기증자 유가족에 대한 예우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이후 박 목사는 2013년 지역별 소모임을 통해 기증자 유가족들이 서로를 만나 위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고 심리 치유 프로그램, 기증자 초상화 전시회, 장기기증 내용을 담은 연극 공연 등을 추진하며 뇌사 장기기증자의 사랑을 기리고, 그 가족들을 격려해왔다.

유산기부 1호 박진탁 목사 ‘마지막 순간도 생명나눔 약속’200.jpg

유산 기부 약정 소감을 전하고 있는 박진탁 이사장

박 목사는 유산기부를 약정하는 소감으로 “많은 분들이 장기를 기증하는 것처럼 일생동안 모은 소중한 재산을 생명으로 나누는 유산기부 문화도 조금 더 확산되었으면 한다"며 “나눌 것이 있다는 사실이 기쁨이고, 마지막 순간에는 장기기증 및 시신기증, 유산기부로 모든 것을 나누고 떠나고 싶다”고 전했다.

한편 하버드 의과대학 종신교수로 재임하고 있는 박 목사의 아들인 박정수 씨는 지난 2020년 D.F장학회(뇌사 장기기증인 유자녀를 위한 장학회)가 시작될 수 있는 시드머니 1000만원을 기부한 바 있다.

이처럼 가족들이 같은 마음으로 장기기증 운동을 지원하고 있는 가운데 박 목사는 “장기기증을 통해 우리 사회에 고귀한 유산을 남긴 기증인들의 사랑을 기리며 그분들이 존경받고, 칭찬받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일에 유산이 사용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박진탁 목사의 유산기부 약정을 통해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본부의 유산기부 프로그램은 ‘리본레거시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며, 유산기부 약정을 원할 경우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로 문의하면 된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