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원 영성의 희망신학’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의 삶

  • 입력 2021.09.16 23:14
  • 기자명 임경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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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후 절망에 빠진 한국교회에 희망의 복음을 전하며 여의도순복음교회를 개척해 세계 최대 교회로 성장시킨 조용기 목사가 14일 아침 7시13분 서울대병원에서 별세했다. 하나님 앞에 종으로 부르심을 받아 큰 일꾼으로 쓰임받아온 조 목사는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에 복음을 전하며 성령운동의 불길을 일으켜 왔다. 이 나라에서 그가 시작한 성령운동은 순복음 교단을 넘어 장로교와 성결교, 감리교 등 모든 교파에 영향을 미쳤고, 소위 ‘한국형 신앙’이 정립되는데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모두가 가난하고 어렵던 시절, 조 목사는 1958년 5월18일 고 최자실 목사와 함께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서 천막교회를 시작하여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4차원의 영성을 바탕으로 ‘희망의 신학’을 외쳤다. 많은 이들이 말씀을 들음으로 희망을 품었고, 성령을 체험함으로 변화되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해 1993년에는 교인수 70만 명을 넘어서며 단일 교회로는 세계 최대 교회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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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1970년대부터 외국의 주요 언론들은 ‘여의도순복음교회 성장 비결’을 앞다퉈 소개했다. 사회적·신앙적·행정적·기술적 요인 등 다양한 성장 요인들의 중심에는 언제나 카리스마 넘치는 조용기 목사의 리더십이 있었다. 이 때문에 ‘조용기’라는 이름은 20세기 동안 전 세계에 가장 많이 알려진 한국인이기도 했다. 한때는 한국은 몰라도 ‘조용기 목사’는 안다고 할 정도였다.

조 목사는 지난해 7월 뇌출혈로 쓰려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으나 결국 향년 86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한국교회장으로 치러진 고 조용기 목사의 장례에는 생전 조 목사의 커다란 영향력을 방증하듯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각계각층의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에서부터 박병석 국회의장, 김부겸 국무총리,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당대표, 국민의힘 이준석 당대표 등 정계는 물론 삼성 이재용 부회장,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 대한상공회의소 최태원 회장 등 재계에 이르기까지 조 목사의 소천을 애도하는 물결이 가득했다.

이영훈 목사 “성령운동의 불길 있는 곳에 영원히 살아계실 것”

몰트만 박사 “성령 안에서 교통하며 함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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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목사는 “조용기 목사님은 6.25 전쟁의 폐허 속에서 희망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의 신앙을 전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파했다. 사람들이 안 된다, 어렵다, 힘들다고 부정적으로 말할 때 조용기 목사님께선 언제나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설파하셨다”면서 “목사님의 그 카랑카랑한 음성이 귀에 쟁쟁하다. 이 희망과 긍정과 용기의 복음이 전쟁 후 가난과 절망에 빠진 이 나라의 수 많은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고 격려하여 비로소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고 선언했다.

이어 “저에게는 더욱이 영적인 아버지이자 스승이셨던 조용기 목사님께서 이제 우리 곁을 떠나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지극히 사랑하셨던 목사님을 잃은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끝내 믿음을 지키신 목사님께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의의 면류관이 주어지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조용기 목사의 성령운동이 ‘모성적 성령운동’이라 일컬으며 우리 사회가 혼란기를 견뎌내고 극복하는데 큰 힘이 됐으며,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웃고 울면서 그들의 삶을 변화시켜왔다고 발자취를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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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 박사도 조용기 목사의 소천 소식을 접하고 “나보다 10년 일찍 떠나서 아쉽다”며 “조용기 목사님과 성령 안에서 교통하며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몰트만 박사는 “조 목사님은 서구 신학과 전혀 무관한 아시아적 창조성을 지닌 신학자이자 목회자로 나는 그를 만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조 목사님은 영혼 구원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하여 이제는 세계의 구원과 창조 질서의 구원에 이르기까지 모두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셔야 할 온 우주적 구원이라는 데 공감했고, 이 일에 여생을 바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씀에 너무 고맙게 생각했다”고 만남을 회상하기도 했다.

몰트만 박사는 1995년 조용기 목사와 처음 만난 이후 교류해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적 목회자와 서구 신학을 대표하는 학자의 만남으로 주목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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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도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먹고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온 이들에게 ‘우리도 잘살 수 있다’는 목사님의 말씀은 큰 위안이었다”면서 “목사님이 심어주신 희망과 자신감은 한국 경제를 키운 밑거름이 됐다. 이러한 믿음 속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도 가능했다”고 메시지를 전했다.

또한 “목사님은 어려운 이웃들을 보듬는 데도 앞장서 심장병 어린이 수술 지원과 소년소녀 가장 돕기, 국제 구호사업 등 다양한 사회복지사업을 펼치셨다”며 “목사님의 소천으로 상실감이 크실 한국교회에 진심어린 추모의 마음을 전한다. 목사님의 평안한 안식을 기도한다”고 했다.

성령의 불길 일으킨 세계적인 목회자 조용기

조용기 목사는 1936년 2월 14일 경남 울산 울주군에서 부친 조두천 장로와 모친 김복선 권사의 5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폐결핵으로 사망선고를 받고 병상에서 누나의 친구로부터 처음 복음을 접했다. 이후 부산에서 미국의 오순절교단인 ‘하나님의성회(Assemblies of God)’ 소속 켄 타이스(Kenneth Tice) 선교사를 만나 집회 통역을 하면서 회심을 하고 폐결핵이 치유되는 신유의 경험을 하면서 신학교 입학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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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9월, 20세 때 하나님의성회 순복음신학교에 입학하여 후에 장모이자 목회 동역자가 되는 최자실 목사와 만났다. 두 사람은 1958년 신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5월18일 천막 교회를 개척했다. 그것이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시작이었다.

그 후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면서 조용기 목사와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위상은 국내를 넘어 세계에 알려졌고, 1973년 9월 제10차 세계 오순절 대회를 한국에서 주최하기에 이르렀다. 여의도로 교회를 옮긴 뒤 성장세는 더욱 가팔라져서 1979년에 10만 명, 1981년에 20만 명을 넘어섰다. 특히 1976년에는 세계교회성장기구 곧 CGI(Church Growth International)를 설립해 세계 교회 성장의 발판을 만들었는데, 당시 세계에서 성장하는 교회들의 대부분은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조 목사는 1975년부터 2019년까지 71개국에서 최소 370차례 부흥회를 인도했고, 비행 여정을 보면 지구를 120바퀴 이동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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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목사는 국내에서 민족복음화운동에도 헌신하며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을 다니며 성회를 인도했다. 특히 사회 구원을 위해 1988년에는 일간지 국민일보를 설립해 기독교의 목소리를 우리 사회에 전하기 시작했다. 1999년에는 비정부기구(NGO)인 사단법인 선한사람들(현재 굿피플)을 세워 국내 및 해외에서 인권 환경 보건 및 아동복지 등의 증진에 앞장섰으며, 그 공로로 1982년 ‘대통령 표창’(홀트학교 건립기금 및 장애아동 복지사업)을 수상했다.

또 1994년에는 대한적십자사부터 ‘적십자헌혈유공자 금장’, 1996년에는 심장병어린이 무료시술 지원 및 소년소녀가장 돕기 헌신으로 ‘국민훈장 무궁화장(보건복지부)’을 받았다. 2005년에 미국 뉴욕기독교교회협의회로부터 ‘더 패밀리 오브 맨 메달리온’을 수상하고, 2007년 미연방의회에서 ‘자랑스런 한국인 인증서’도 받았으며, 2009년에는 캄보디아 정부가 주는 훈장을 받았다.

조용기 목사는 저술가로서도 <나는 이렇게 기도한다> <4차원의 영적세계>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한국교회 한마음으로 조용기 목사 소천 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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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한국교회는 물론 세계교회의 부흥에 커다란 일꾼으로 쓰임받은 조용기 목사의 소천에 한국교회가 한마음으로 애도를 표했다. 각종 언론과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마다 한동안 조용기 목사의 소천이 화두로 오르며 그의 삶이 재조명됐다.

특히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한국교회연합(한교연) 등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연합기관들이 일제히 메시지와 성명서를 발표하며 고 조용기 목사의 업적을 기렸다.

한국교회총연합(이하 한교총)은 “목사님께서는 혼돈과 격변의 20세기 후반기에 복음으로 시대를 이끈 위대한 설교자이자 뛰어난 영성가로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의 부흥을 이끌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확산에 지대한 공헌을 남기셨다”며 “특히 산업화 시대, 실향민들이 서울로 집중되는 변화의 시기에 십자가 복음을 통한 삶의 변화와 긍정적 삶의 가치를 가르침으로써 모든 국민에게 희망으로 세상을 이길 용기를 갖게 했다”고 기렸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는 ‘조용기 목사 소천에 대한 애도 메시지’를 발표하고 “희망과 긍정의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며 영혼 구원에 힘쓴 그의 삶과 정신을 깊이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일생을 바쳐 헌신하며 복음을 전하고, 사랑의 삶을 살았던 조용기 목사를 생각하며 그의 정신과 마음을 이어받아 한국교회에 희망과 긍정의 생각과 삶이 넘치기를 소망한다”고 했다.

한국교회연합(이하 한교연)도 애도성명을 통해 엘림복지타운과 굿피플, 조용기 심장병원 등 사회사업에 있어 기여를 높이 평가하고, 한기총 창립을 큰 업적으로 꼽았다.

한교연은 “지금도 까랑까랑한 음성으로 영혼에 깊은 감화를 주시던 목사님을 이제 다시 뵐 수는 없지만, 목사님이 남기신 선하고 위대한 발자취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뒤따를 것을 다짐하는 바”라고 밝혔다.

그가 남긴 발자국에 수많은 제자들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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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를 대표하던 세계적인 부흥사이자 목회자 조용기 목사가 86년의 삶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그가 남긴 발자취는 대한민국 현대사와 기독교사에 너무나 깊이 새겨져 있어, 길이 된 그 곳으로 많은 제자들이 따르고 있다.

이영훈 목사는 “제자는 마땅히 스승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 사역 속에 자신의 사역을 접목한다. 저의 관심사도 언제나 조용기 목사님의 사역을 어떻게 잘 계승하고 체계화하느냐였다”며 “조용기 목사님을 육신으로는 떠나보내지만 저에게, 그리고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아니 성령운동의 불길이 타오르는 모든 곳에서 조용기 목사님은 영원히 살아계실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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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지금 우리 사회는 물질적으로 풍요하여 선진국의 대열에 들었으나 세대간, 지역간, 남녀간, 이념간에 그 어느 때보다 심한 갈등을 겪으며 아이를 낳고 싶어 하지 않는 세상이 됐다”면서 “이 갈등의 황폐한 심령에 우리는 다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시는 능력을 간절히 구할 것이다. 다시 희망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처럼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고 말할 것이다. 이 절대긍정과 절대감사의 힘으로써 조용기 목사님의 신앙을 이어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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