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칼럼] “간절함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을까요”

  • 입력 2022.01.09 07:42
  • 기자명 컵뉴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00.jpg

중국 사마천이 쓴 ‘사기’라는 책에 보면 ‘이장군 열전’ 편이 있습니다. 이 장군은 이광 장군을 말하는데, 화살을 쏘면 백발백중 시키는 신궁으로서 흉노족을 물리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장군입니다. 어느 날 그가 사냥을 하는데 바로 앞에 호랑이가 나타난 것입니다. 얼마나 절박했던지 온 힘을 다하여 호랑이에게 활을 쐈습니다. 호랑이는 화살 한 방에 쓰러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까 호랑이가 아니라 불그스름한 바위였습니다. 활을 얼마나 세게 당겼던지 화살촉이 바위에 꽂혀 있었습니다. 자기도 놀라 다시 한 번 바위를 향해 화살을 쏘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꽂히기는커녕 화살이 바위를 맞고 그냥 튕겨져버리는 것입니다. 그때 이광은 화살도 간절함을 가지고 쏘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사석위호(射石爲虎)’ “간절하면 못할 게 없다”는 의미의 사자성어가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매일경제 장박원 논설위원이 글로 쓴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활’이라는 영화에서도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라는 명대사가 나오지 않습니까? 현재 세계 육상 100미터 달리기 최고 기록은 우사인 볼트가 세운 9.58초입니다. 육상선수들이 0.1초를 단축하기 위해서는 피 말리는 훈련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프리카 초원에서 한 소년이 놀다가 갑자기 사자가 나타나자 살려고 전력질주를 하며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그 달리는 속도를 재보니까 9.58초보다 더 빨랐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만큼 우리의 삶 가운데 간절함과 절박함이 소중하다는 교훈이지요.

이번에도 저는 송구영신예배와 신년축복성회를 앞두고 잠을 못 이뤘습니다. 얼마나 긴장을 해버렸는지 수면제도 안 통할 정도로 불면과 싸웠습니다. 오후 3시, 8시, 11시, 그 다음에 0시, 네 번으로 나누어서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는데 성도들이 어디서 그렇게 모여드는지 예배마다 꽉꽉 차는 것입니다. 영신예배 같은 경우는 늦게 온 성도들을 비전홀로 가도록 하였습니다. 이번에 네번 예배를 다 합치면 지금까지 모인 그 어떤 예배보다 더 많은 성도들이 모였습니다. 코로나 전에 본당에 접이의자까지 놓고 아무리 꽉꽉 채웠어도, 이번에 네 번으로 나누어 드린 예배 숫자를 능가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성도들이 정말 어떻게 그토록 모일 수 있었을까” 다시 생각해 보아도 대단했습니다. 저는 예배 전에는 전 대로 긴장을 하며 간절한 마음을 가졌고, 예배 후에는 후 대로 너무 설레고 감동되었던 전율이 잔상으로 남아 마치 경조증 환자처럼 잠을 못 이룬 것입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재정적 헌신의 수치를 보고받아 보니까 적은 차이이기는 하지만 작년보다 못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이는 숫자와 헌금으로 성도들의 헌신도를 측정할 수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측정 가능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죠.

0.jpg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건 작년에는 본당에 19명밖에 못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송구영신예배를 8번으로 나누어서 화상줌을 통해서 인도했습니다. 오전에는 성도들을 그냥 단면으로만 화상줌으로 비추어 주었지만, 오후부터는 대기조가 있어서 1조가 화상에 뜬 다음에 다시 2조가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예배 때마다 적게는 300~400명 많게는 1천 명이 계속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때 저는 화상줌으로 들어온 성도들을 일괄적으로 기도해 주지 않고 모든 가정마다 부모와 자녀의 이름까지 부르며 간절하게 축복기도를 했습니다. 물론 즉시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분은 옆에서 담당 교구 교역자가 이름을 귀띔해 주었기에 일일이 이름을 다 불러가며 기도를 해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성도들이 얼마나 감동을 받아 버렸는지, 그 감동은 얼마나 간절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연결이 되어 감동 받은 대로 즉시즉시 온라인으로 헌금을 보냈습니다. 아니, 많은 분들이 예배 사이사이에 교구 교역자들에게 비표를 받고 본당으로 들어와 저에게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때 목돈을 가지고 와서 헌신기도를 받는 분들의 절박한 모습들이 지금도 제 눈에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보통 절박하고 홀릭이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도 성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함이 가득하였고 성도들 역시도 교회 현장으로 오고 싶은 절박함이 통했던 것이었지요. 평상시에는 느낄 수 없는 사석위호와 같고 사자에게 쫓기는 소년과 같은 간절함과 절박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번 송구영신예배와 신년축복성회의 간절함도 위대했지만, 그래도 맘먹으면 누구나 다 올 수 있고,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020년도에는 누구도 올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그 뜨거운 간절함과 절박함이 폭발적인 헌신의 역사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마치 화살이 빗발치는 사선을 넘어 기도를 받으러 온 광인적 열정으로 말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간절함보다 더 소중한 것이 어디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코로나를 통하여 교회를 향한 간절함, 예배를 향한 간절함,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시그널을 주셨던 것이 아닐까요.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