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예환 칼럼] 마음을 나누는 법

  • 입력 2022.06.30 17:29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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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환 목사(갈보리교회) 

[프로필]

▣ 총회부흥사회 대표회장 역임

▣ 한국기독교영풍회 대표회장 역임

 

 

 

교회를 개척하고 아내와 둘이서 예배를 드리다가 방에서 아이가 울어 아내가 사택으로 뛰어 들어가면 혼자 남은 나는 설교를 계속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난감해졌다. 그러다 처음으로 한 노인이 새벽기도에 오셨다. 기도하시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강화도 감리교회 권사님이신데 손자가 우리 동네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어 손자를 밥해주러 같이 오셨고, 교회 옆 연 립에 사신다는 것이었다. 주일날은 차를 타고 다니시던 감리교회로 가시지만, 새벽기도는 가까운 우리 교회로 나오시겠다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이런 기도의 용사를 준비해 두셨다니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개척교회 목회자의 생활을 이해하시고 늘 안타까워 해주셨고, 손자가 학교에 간 시간은 또 근처 공장에 나가 일도 하시 참으로 부지런하고 근면하게 사시는 분이셨다. 좀 지난 후 손자도 우리 교회에 나와서 등록을 했다. 학생이 한 명 생겨 너무 좋았다.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었지만 예배를 열심히 하고 나와 아내를 좋아하고 따르니 위로 가 되고 힘이 되었다. 교회가 부흥되면서 사택도 교회 밖 연립주택으로 이 사를 했다.

어느 날부터 사택 대문 앞에 생수가 2병씩 놓여있는 것이었다. 병에 하얗게 서리가 진 약수는 떠 온 이의 정성이 그대로 담겨 너무나 시원하고 달았다. 그런 데 몰래 두고 가서 누가 언제 가져다 두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어느 날 외출하려던 나는 우연히 문 앞에 물병을 조심스레 올려두던 권사님과 딱 마주쳤다. 권사님은 어쩔 줄 몰라 하시며 그대로 도망치듯 사라지셨다. 그 연세의 어르신이 산 위의 약수터에 올라가서 자신의집 것과 우리 집 약수를 길어서 메고 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정말 사랑과 섬김의 믿음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목회자가 가난해 보이면 돕고, 자기보다 잘 산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해드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목회자를 섬기고 대접함이 아니요 구제하는 자세다. 가장 큰 교회를 목회하는 목사님 댁에 명절에 과일 한 상자 안 들어온다는 소문은 그런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다. 섬김은 감사에서 나오고 구제는 연민 때문에 행해진다. 꼭 좋은 것을 받아서 기쁜 것이 아니다. 추석에 토란 탕을 끓여서 자기 집에 있는 것 중 가장 좋은 그릇에 담아 쏟아질까 조심스레 가져다주시는 사랑이 있다.

나는 맛있게 그것을 먹으며 대접한 손길에 담긴 사랑에 힘이났고 저절로 축복기도가 나왔다. 목사로서 내가 가진 특별한 은사는 음식에 담긴 정성을 구별하여 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음식을 먹을 때 정성을 함께 먹는다. 불편한 마음으로 혹은 억지로 한 음식은 목에서 넘어가지를 않거나 먹고 나서도 내내 속이 불편하다. 보이지 않는 것 같으나 마음은 또 그렇게 드러나기도 한다. 개척교회를 하면서 어버이날이면 나는 새벽기도를 마치고 카네이션 두 송이를 들고 서울의 처가로 갔다. 처남과 처형들이 용돈도 드리고 음식 대접도 하러 올 것이니 그전에 다녀오려는 것이다.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꽃을 달아드리고, 장모님이 차려주신 아침을 함께 먹고 기도해 드리고 돌아왔다. 그때 가난한 전도사가 할 수 있는 것이 마음을 드리는 것 그것이 최선이었다. 믿음 안에서 장모님은 그 마음을 받아주시고 기뻐해 주셨다. 가진 것이 없어 나눌 수 없고 섬길 수 없다고 생각하며 부(富)를 주기를 기도하는 삶들이 있다. 내 것이 채워지면 나누고자 하기에 평생 아무것도 나누지 못하고 사는 가난한 마음들도 있다. 그러나 마음만 있으면 정성만 있으면, 얼마든지 하나님을 감동하게 하고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삶을 살 수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음을 다해’ 하라고 말씀하셨다. 지금은 소천하셨지만, 권사님은 나에게 마음을 나누며 사는 법을 가르쳐 주신 고마운 분으로 남아있다. 그 손자가 자라서 지금 목회를 한다. 아마도 할머니가 심으신 사랑과 정성의 열매를 먹으며 달고 청량한 생수처럼 가슴속까지 시원해지는 행복한 목회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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