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훈 칼럼] 52. 마음과 믿음

  • 입력 2022.09.29 10:55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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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훈 목사 (예수나라공동체)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하면 사귀지 못할 친구가 없습니다.”

포항 내연산 꼭대기 암자에서 활발히 수행하는 50대 스님과 그 아랫마을 성당에서 은밀히 사역하는 80대 신부님이 오랫동안 우정을 나누며 다 정한 친구처럼 지내는 영상을 보았다. 이들의 생활양식이나 사고방식, 그 인생 여정은 완전히 달랐지만, 종교적 이념과 나이, 성격, 환경 등을 모두 초월하여 서로 협력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이것이 바로 ‘서로 사랑하라’는 지상 대명제의 실현이 아닐까 싶다.

‘우리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다.’(시편 124:8)

몸에 입은 상처는 아물면 그나마 잊어지지만 마음에 입은 상처는 잘 아물지도 않고 쉽사리 치유되지 않는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 친척 등에 의해 생긴 상처는 더욱 큰 자국으로 남는다. 신앙생활에서 양심적으로 받은 상처는 일평생 남는 상흔이 되기도 한다. 2022년 7월 17일, 외딴곳 하천부지 비닐하우스에서 홀로 살아가는 80대 노인이 65년 만에 우리 교회를 찾았다. 1950년대 청소년 시절, 어머니를 따라 열심히 교회에 다녔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박태선(朴泰善, 1917~1990) 장로의 전도관이었다. 그 모친이 전 재산을 바치고 알거지가 되었을 때, 그의 가족은 신앙촌을 떠나 뿔뿔이 흩어졌다고 한다. 믿음의 밑바탕은 마음이다. 마음을 닫고 믿음을 말할 수 없다. 믿음은 마음으로 성장하고 마음은 믿음으로 성숙한다. 마음과 믿음의 관계는 손 등과 손바닥 같고 새의 양 날개와 같다. 서로 함께 잘 지내거나 죽으면 같 이 죽을 수밖에 없다.

이는 일시적 협업(Collaboration)이 아니라 영원한 결합(Hybrid)이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산다. 천연덕스러운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날마다 죽어야 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한다. 그때 지성에서 영성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오, 주여! 헤라클레스처럼 저도 12가지 과업을 수행하란 말인가요?” “필록테테스처럼 저도 독사의 이빨 자국을 지니고 살아가란 뜻인가요?” “앨버트로스처럼 큰 날개로 날지 못하는 비애를 저도 품으란 것인가요?” 2005년 5월 초, 이런저런 상념에 사로잡혀 다시 슬럼프에 빠졌다. 나이는 지천명, 주님의 부르심을 받긴 하였으나 조바심이 났다. 갑갑한 마음에 기도원 땅굴에서 양손을 맞잡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내 인생의 뒤안길이 서글프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였다. 그때 무너진 자취가 뇌리를 스치며 빈자의 한숨으로 밀려왔다. 순간 애잔한 멜로디가 클로즈업되었다.

“오, 주여! 그런데 돌아보니, 참으로 죄송스럽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골 백번 죽어 마땅한 이 죄인을 기가 막힐 웅덩이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내 어찌 그 큰 은혜를 망각하고 이따위 시름에 붙잡혀 있겠습니까? 그 모든 일을 선으로 합력시켜 주신 주님의 사랑을 외면하고 언제까지 이 부질없 는 잡념에 얽매여 있겠습니까? 오, 주여! 제가 주님의 마음을 잘 모르고 살 았습니다. 몰라도 너무 몰랐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아,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내가 힘들어 부르짖을 때마다 주님이 찾아 와 위로해 주셨다. “아기사자 예수내주(我旣死者 예수內住)! 나는 이미 죽은 자, 예수님이 내 안에 사신다.”“무심무언 섭리순응(無心無言 攝理順應)! 아무 생각 없이 말없이 주님 의 뜻에 따르리라.” “아생감사 주생사랑(我生感謝 主生사랑)! 내 살아서 감사하고 주께서 사시니 사랑하리라.”‘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고, 들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에 서 비롯됩니다.’(로마서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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