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예한 칼럼] 인신매매인신매매

  • 입력 2022.11.18 16:12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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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환 목사(갈보리교회) 

[프로필]

▣ 총회부흥사회 대표회장 역임

▣ 한국기독교영풍회 대표회장 역임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이 막 시작된 어느 날이었다. 친구 두 명과 동네에서 놀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다가왔다. “너희들 돈 벌고 싶지 않냐?” 아저씨는 먹여주고 재워주고 돈도 주는 데가 있는데 가보자고 우리를 꼬드겼다. 너무 가난했기에 배고팠기에 그 말이 솔깃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친절한 아저씨를 따라 한참을 차를 타고 갔고, 내려서 골목을 지나고 혼잡하게 길을 돌아서 어떤 지하실로 들어갔다. 그 길로 우리 세 명은 그곳에 감금이 되어서 잠깐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새벽부터 밤까지 가방공장 일을 해야 했다. 인신매매가 된 것이었다. 친절한 아저씨는 데려다만 주고는 사라지고 우리는 무서운 가방공장 주인의 지시를 받으며 가방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다. 집에 가고 싶다고 친구가 말했더니 그럼 돈을 내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우리 또래 보다 좀 더 큰 아이들이 많이 잡혀 와 있었다. 하루는 어떤 아이가 도망치다 잡혀서 본보기로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는 일도 있었다. 종일 일하고, 잠은 일하던 그곳에서 한쪽으로 가방을 밀어놓고 자는 것이었다. 말할 수 없이 비참했다. 식사는 주인이 식권을 한 달 치씩 90장을 주었다.그러면 하루 세끼 자장면이었다. 중국집에서도 우리에게 주는 것은 사람들이 먹다 남은 찌꺼기들 끌어모은 것을 가져다주는 것 같았다. 음식에서 담배꽁초, 종이 등이 나왔다. 나는 어린 마음으로 곰곰이 생각했다. 팔려 온 빚을 갚아야 집에 갈 수 있는 것이라면 집에 빨리 가려면 돈을 모아 빚을 갚아야겠구나 싶어서 식권을 하루에 두 끼만 먹고 매일 한 장은 모으기를 시작했다.

너무 배가 고팠다. 온종일 어린아이가 하기에는 중노동인 가방공장 일을 새벽부터 밤이 되도록 하고서 두 끼로 버틴다는 것은 정말 고통이었지만 그렇게 돈을 모아 빠져나가지 않으면 평생 그 지하에서 죽을 것 같아서 배고픔과 힘든 고통을 견디어 냈다. 드디어 한 달이 되었을 때 나는 식권 30장을 내밀며 집으로 보내 달라고 했다. 그런데 주인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이미 지난 건 가치가 없어, 식권은 그달이 지나면 쓰레기야” 하는 것이다. 그때 내가 느낀 절망과 배신은 정말 말할 수 없이 끔찍한 것이었다. 또 도망치던 아이가 잡혀 와서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아서 실신했다. 도망가는 마음을 못 가지도록 우리가 보는 데서 매질을 하는 것이다. 중국집 배달과 다들 한편이었다. 한 달이 훨씬 지난 어느 날 기회가 왔다. 무슨 잔치가 있었는지 가방공장 주인이 술이 잔뜩 취해서 들어왔다. 나는 친구들과 눈짓을 주고받으며 ‘오늘이 기회다.’ 긴장하고 있었다. 가방 재료를 들여오고, 밤이면 항상 쇠사슬로 걸어 잠그던 문도 그날은 미처 닫지 못한 채로 경비가 허술한 상태로 있었다. 나와 친구들은 이때다 싶어 벌떡 일어나 죽을힘을 다해 뒤도 보지 않고 그냥 앞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렸다. 저 뒤에서 술 취한 주인이 “이놈들” 소리 지르며 달려오고 지키던 삼촌도 달려오는 소리가 났지만, 죽을힘을 다해 앞으로 뛰기만 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곳은 청계천쯤 이었던 것 같다. 전신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고 우리는 탈출에 성공했다. 길바닥에 벌러덩 누워 턱까지 차오른 가쁜 숨을 헐떡이며 바라본 밤하늘엔 정말 별이 많았다.

그렇게 어렵게 집으로 돌아왔는데 어머니는 마치 아침에 나간 아이가 온 것처럼 아무런 일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밥은? 밥 먹었냐?” 허무했다. 아마도 친구 집에서 사는 거로 생각했던 것 같다. 생사의 고비를 넘어서 돌아왔는데 내가 없어진 줄도 모르는 가족들이라니 기가 막혔다. 그날그날 일곱 식구 먹고살기 바빠서 어머니는 다른 어떤 것도 욕심부리지 않았다. 평생 나는 공부하란 말도 들어본 적이 없다. 어머니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어머니는 오직 하나님께 기도만 할 뿐 어떤 기대도 요구도 하지 않았다. 10년 이상 세월이 지난 후 신학교에 다닐 때 나는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에 가다가 가게 앞에서 술을 먹고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바로 나를 인신매매한 그 사람이었다. 이제는 늙어서 흰머리가 반이고 몸도 말랐지만, 그때 그 사람이 분명했다. 어찌 잊을 수 있는 얼굴이란 말인가! 가슴 깊은 곳에서 전율이 흘러서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말할 수 없는 분노가 들끓어서 부들부들 떨렸다. 어찌할 것인가. 이제는 늙었고 지금 술을 먹고 있다. 그의 행색은 초라하다. 그렇게 인신매매까지 하고서도 가게 앞 툇마루에서 소주나 마실 처지밖에 못 된단 말인가.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하고 한참이 흘렀다. 어떻게 해야 하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지금은 충분히 그를 이기고 제압할 힘이 있지만 나는 이미 예수님을 만났고, 용서를 배웠지 않은가, 그러나 저 사람이 과연 용서받을 자격이 있는가. 별의별 생각들이 지나갔다. 수없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내 속의 이야기들을 듣고 들었다. 그는 여전히 계속 술을 들이켜고 있다. 나는 다시 마음을 다스리며 조용히 돌아섰다.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을 감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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