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와 존엄사’ 인간이 과연 생명을 선택할 수 있는가

  • 입력 2022.11.25 08:27
  • 기자명 임경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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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법학회(이사장 소강석 목사, 학회장 서헌제 교수)가 11월24일 사랑의교회에서 ‘낙태와 존엄사를 중심으로 한 생명윤리와 기독교’를 주제로 제30회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낙태와 관련해 살인이냐,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냐를 두고 논쟁을 벌여왔고, 존엄사와 관련해서도 논란이 이어져 왔다. 생명의 시작과 끝을 인간이 결정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오늘날의 인권과 만나 쟁점이 됐다.

일찍이 낙태를 허용했던 미국 연방대법원이 낙태 처벌 합헌 판결을 내려 50년 가까이 유지되어왔던 낙태 자유에 제동을 걸었지만, 이와 반대로 우리나라는 자기 결정권 존중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낙태가 사실상 허용된 상태다. 더욱이 현재 국회에는 존업사 합법화 법안이 제출되어 있는 상황.

먼저 낙태에 있어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

헌법재판소는 2008년 “모든 인간은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되며, 형성 중의 생명인 태아에게도 생명에 대한 권리가 인정되어야 한다. 태아도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되며, 국가는 헌법 제10조에 따라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2008.7.31. 선고2004헌바81 결정)고 결정함으로 태아에 대한 생명의 권리를 인정했다.

하지만 2년 뒤인 2010년에 착상이 되지 않은, 단지 수정된 초기 배아는 생명권의 주체로 볼 수 없다는 제한적인 결정이 이어졌다.

헌법재판소는 “초기 배아는 수정이 된 배아라는 점에서 형성 중인 생명의 첫걸음을 떼었다고 볼 여지가 있기는 하나 아직 모체에 착상되거나 원시선이 나타나지 않은 이상 현재의 자연과학적 인식 수준에서 독립된 인간의 배아 간의 개체적 연속성을 확정하기 어렵다고 봄이 일반적…기본권 주체성을 인정하기 어렵다”(2010.5.27. 선고2005헌마346 결정)고 했다.

그런가 하면 태아에 대한 생명권은 명확히 인정해왔다.

2012년에 “태아가 비록 그 생명의 유지를 위하여 모(母)에게 의존해야 하지만, 그 자체로 모와 별개의 생명체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므로 태아에게도 생명권이 인정되어야 한다”(2012.8.23. 선고2010헌바402 전원재판부 결정)고 전원재판부의 결정을 내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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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회의 입장은 생명의 시작을 ‘수정’으로 본다”

이날 세미나에서 ‘기독교 신앙과 실정법에서 본 낙태와 안락사’라는 주제로 발제한 송삼용 목사(광신대 겸임교수)는 “인간 생명의 시작점은 어디인가. 인간의 출생은 수정란, 착상전 배아, 배아, 태아 단계를 거친다. 모든 장기가 형성되는 8주를 기준으로 그 이전을 배아로, 그 후를 태아로 나눈다”고 설명하면서 “기독교 교회의 입장은 생명의 시작점은 ‘수정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착상되기 이전에 수정되는 시점부터 생명으로서의 모든 권리가 부여된다고 보는 것이다.

송 교수는 “헌법적,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낙태는 범죄의 구성요소를 지닌 죄다. 생명을 해하는 낙태는 헌법불합치 결정과는 무관하게 죄라는 결론은 변함없는 사실”이라고 지목하고, “산모의 선택권과 자기결정권 역시 보호받아야 할 법적 권리지만, 태아도 생명이라는 점에서 산모의 선택권과 자기결정권을 허용하는 문제는 다른 차원”이라고 피력했다.

나아가 “낙태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 후에 예상되는 폐해 중에 가장 큰 것은 생명경시 풍조다. 낙태로 인한 폐해를 방지하거나 줄이기 위해 생명윤리 차원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낙태 규제는 입법을 통해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미국 연방대법원은 1973년 낙태 합법화 이후 49년 만에 판례를 폐기하는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동안 낙태를 금지해오다가 미국과는 반대로 낙태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미국 연방헌법과 같이 우리 헌법에도 낙태권을 보장하는 명시적인 조항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두 국가의 판단이 전혀 다르게 갈렸다.

‘낙태 합법화 판례를 폐기한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의 비교법적 함의’를 주제로 발제한 전윤성 변호사(자유와평등을위한 법정책연구소 대표)는 “낙태권의 보장은 필연적으로 태아의 생명권의 침해를 야기하는 것”이라며 “낙태권은 태아 생명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헌법 제37조 제2항의 후문 위반의 소지가 크다. 낙태권은 자기결정권에 포함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낙태권은 자기결정권에 포함될 수 없으며, 낙태 규제는 민주적 정치과정을 통해서 국민과 국민이 선출한 대표자가 결정해야 하는 입법정책의 문제”라며 “낙태 규제를 둘러싼 논쟁은 오로지 입법을 통해서만이 근본적인 해결이 이뤄질 수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전 변호사는 “돕슨 판결은 2022년도에 연방대법원이 내린 판결 중 가장 중요한 판결로 꼽을 수 있다. 돕슨 판결이 시사하는 바는 사법부 스스로 판결의 정치와를 경계하는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라면서 “엄격한 선례 구속의 원칙이 존재하는 미국에서 ‘로 판례’가 폐기됐다. 한국은 선례의 기속력이 헌법재판소에게 미치지 않으며, 얼마든지 선례를 변경할 수 있다. 헌법재판관들 스스로가 선례의 오류를 인정하기만 하면 가능하다. 언젠가 제2의 돕슨 판결이 한국에서도 내려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낙태죄는 처벌 기능 외에 태아의 생명권 보호 기능”

낙태가 입법정책의 문제라는 지적에 의한다면 현재 국회에 발의된 낙태죄 관련 법안에 대한 처리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국회 발의중인 낙태죄 법안에 대한 비판적 연구’를 주제로 발제한 연취현 변호사(법률사무소 와이 대표)는 “우리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토대는, 미국 연방대법원이 돕슨판결로 뒤집어버린 ‘로 대 웨이드 판결’”이라고 지적하며 “미국은 돕슨 판결 이후 다시 낙태의 권리와 태아의 생명권 논의가 주마다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로 대 웨이드’ 판결에 근거한 낙태의 권리를 잊고, 새롭게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이미 태어난 자의 기본권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의 기본권의 충돌 중 어느 것이 포기되어야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태아의 생명보호를 위한 실질적 도움’ 차원의 문제에서 해결점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지목했다.

연 변호사는 “낙태죄가 낙태를 한 여성에 대한 처벌 기능 이외에 태아의 생명권 보호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 국가가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할 것”이라며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존중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중립적 역할에 최선을 기울여야 함을 인식한 상태에서 비로소 낙태죄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고 피력했다.

“가톨릭에서 안락사는 하느님 법의 중대한 위반”

마지막 발제자로 나선 정종휴 교수(전남대 로스쿨 명예)는 ‘가톨릭 신앙에서 보는 안락사 문제’ 발제에 있어 “안락사는 하느님 법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어서 용인될 수 없다. 의료기술의 발달과 안락사 정당화를 위한 합리화가 보다 교묘해짐에 따라 생명 보호의 최후의 보루인 가톨릭교회의 대응도 정교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울러 존엄사와 관련한 최근 가톨릭교회의 성명서 내용을 제시하며 “목숨을 끊어버리는 것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며 “존엄하고 품위있는 임종에 필요한 것은 주위 사람들의 경청과 돌봄이지, 죽이는 행위가 아니다. ‘의사 조력 자살’은 언뜻 환자의 말을 경청하고 깊이 공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무심한 살인 행위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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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와 존엄사’ 관련 국회 법안들에 관심 가져야

이날 세미나에서 인사말을 전한 서헌제 교수는 “이태원 참사를 통해 볼 수 있듯이 우리 사회가 생명의 문제에 있어 너무 소홀하지 않은가라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오늘 세미나를 마련했다”며 “낙태와 존엄사와 관련해 국회에 여러 법안이 제출된 상태다. 이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가 생명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관심을 촉구했다.

복음법률가회 대표 조배숙 변호사는 “예수님이 지금 오셔서 이런 문제에 대해 질문을 받으시면 어떻게 답하실까 생각해본다. 현행법상 낙태가 합법은 아니지만 처벌도 하지 않는다. 동물도 유기하면 안 된다고 보호해야 한다고 난리를 치면서 하나님의 형상인 존엄한 태아에 대해서는 낙태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는 것인가”라며 “오늘 세미나를 통해 깊은고민 가운데 해답을 내려주시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사장 소강석 목사는 “종교인과세를 대처하는 과정에서 교회법학회의 중요함을 절감했다. 한국교회를 향한 무한 책임감으로 한국교회를 향한, 우리 사회를 위한 섬김을 지속해 나가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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