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예환 칼럼] 울타리가 무너질 때(1)

  • 입력 2022.12.15 10:05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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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환 목사.jpg

조예환 목사(갈보리교회) 

[프로필]

▣ 총회부흥사회 대표회장 역임

▣ 한국기독교영풍회 대표회장 역임

 

 

어떤 청년이 전화를 걸어왔다. 아버지의 잔소리와 인신공격, 사사건건 핍박이 심해 집에서 도저히 살 수가 없다며 엉엉 울었다. 완벽을 추구하는 아버지는 자신이 하는 것마다 못마땅해하시니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나빠서 그 영향이 모든 생활에 미치고 마주치고 싶지도 않은데 함께 사는 게 고역이라 집을 나가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는 어떤 존재이어야 할까? 나는 청년의 전화를 받으며 우리 아버지를 다시 떠올려 보았다. 신학대학에 들어가서도 나는 읽고 싶은 책 한 권을 사볼 수 없었다.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이다. 차비가 없어 어디나 걸어 다녔고, 점심값이 없어 금식과 굶김을 밥 먹듯 했다. 지금처럼 도서관이 많은 시절도 아니고 그런 모든 것이 원활하지 않아서 답답하고 괴로웠다. 기도는 돈이 들지 않아서 마음껏 할 수 있었기에 밤마다 산에 올라가 기도하는 것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하나님께 책을 주십사고 기도를 드렸다. 성경을 더 이해하고 싶어서 주석도 필요했고 신학 서적들도 너무나 절실했다. 하나님을, 성경을 더 잘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전화가 왔다. 모 교회를 섬기던 원로 목사님이 돌아가시고 사모님께서 짐 정리를 하며 신학 서적들을 어떻게 하면 할까 고민했는데 갑자기 내 생각이 났다며 와서 필요한 책을 골라가라는 것이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응답이었다. 책을 잔뜩 얻어서 집으로 왔는데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이것도 넘겨보고 저것도 넘겨보며 책을 안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며칠 후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책이 싹 없어지고 강냉이 튀밥이 한 소쿠리 놓여 있었다. 아버지가 지나가는 고물상 아저씨를 다 줘버렸다는 것이다. 집이 이렇게 어려운데 돈을 벌어야지, 신학을 한다고 대학 다니는 나를 너무나 못마땅 해 하셨다. 나는 미친 듯이 동네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고물 장수 아저씨를 찾았지만 벌써 우리 동네를 벗어난 후였다. 허탈하고 기가 막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책 한 권 사주신 적도 등록금 한번 해주신 적도 없는 아버지, 어렵게 어렵게 얻어온 책마저 내다 팔아버린 우리 아버지, 나는 그래도 아버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정말 이렇게 그 어떤 것 하나도 나에게 거저 주시지 않았다. 경제적 책임을 못 지는 아버지와 심리적으로 힘들게 하는 아버지, 어떤 아버지를 가진 사람이 더 고통스러운 걸까? 돈을 벌어 오시지는 못했지만 아니 벌기는커녕 힘들게 모은 돈도 다 없애버려서 늘 우리 가족을 곤란하게 하셨던 아버지지만, 그 부분만 제외하면 아버지는 때로 마음이 따뜻한 분이셨다. 술을 마시고 가정폭력을 하는 아버지, 노름빚에 자식을 파는 아버지, 외도로 가정을 깨는 아버지, 얼마나 무서운 아버지들이 많은가! 그런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그래도 우리 아버지는 그렇지는 않았던 것이 감사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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