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훈 칼럼] 57. 스토케이아

  • 입력 2022.12.29 10:48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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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훈 목사 (예수나라공동체)

스토케이아(Stoicheia)는 세상의 ‘초등 학문’이다. 조상의 전통이나 사회 통념 등 기초 원리에 근거하지만 근본 진리가 아니다. 피조 세계의 ‘하찮은 권세들’로서 그 법과 원칙을 앞세워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하나님의 섭리 하에 유지, 보존되고 있으며, 혼돈과 혼란의 세상을 질서와

조화로 바꾸는 순기능의 역할도 수행한다. 하지만 타락한 그들이 권세를 오남용함으로써 악마의 화신이 되었다. 이른바 양의 탈을 쓴 이리 들로서, 자기 가족이나 종족 등 이해관계 집단을 위해 이용하며, 선을 악으로 갚고 악을 선으로 바꾸기도 마다치 않는다. 종교적 극단주의, 무속 신앙에 찌든 자들이 더욱 악랄하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그들의 정체가 드러나고 무장은 해제되었으나 긴장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믿음의 지조를 지키고 미신에 빠지지 말라는 예방적 방편이요, 제방의 역할이다. 실로 하나님의 교육 방법은 우주의 원소보다 많고 더 다양하다. 비록 하찮은 권세들이나 그 훼방까지도 역이용하신다는 뜻이다. 2003년 5월, 3개월간의 인건비와 월세, 공과금은 물론, 부대비용까지 생돈으로 들어갔다. 다시 웃돈 1,000만 원과 수고비 200만 원을 주고 갈현동 빌라와 교환하였다. 응암동 카페를 처분하기 위한 수단이었으나 더욱 깊은 늪으로 빠져들었다.

건축주가 1억에 전세를 놓아주되, 1,000만 원은 되돌려 준다는 조건이었다. 고수의 고차원 전술이었다. 곧 나간다는 전세는 3개월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러자 융자금 7,000만 원을 안고 2,000만 원을 추가로 부담하여 소유권을 넘겨받으라고 하였다. 그럴 여유도 없었지만 시세도 낮았다. 카페는 넘겨주었으나 빌라는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1,000만 원을 포기하고 다시 웃돈 1,000만 원과 수고비 200만 원을 주고 제주도 주택과 교환하였다. 고수가 책임지고 팔아준다는 조건이었다. 반신반의하면서도 응할 수밖에 없었다. 일이 너무 꼬여 고수만이 풀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집 나간 탕자처럼, 알거지가 되어 아버지께 돌아올 때까지, 나는 그 지겨운 돼지치기를 계속하였다. 알고 보니 제주도 주택도 그 빌라 주인의 것이었다. 고수가 노숙자를 내세워 하수에게 전매한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집은 전 소유자의 융자금 3,000만 원과 가압류 등이 포괄 근저당 된바, 그 채무가 집값을 넘어 이전을 포기하였으며, 그도 빌라가 분양되지 않자 궁여지책으로 그 집과 교환한 후 낭패를 보았고, 불경기로 집값까지 떨어져 애물단지가 되었던 것이다.

그즈음 그 집의 건축주가 도로 지분의 자기 땅을 팔기 위해 가압류를 설정하였다. 하수의 수렁은 끝이 없었다. 하루는 고수가 불러 다정히 권하였다. “건축주가 350만 원을 요구하니 200만 원만 내세요. 내가 150만 원을 부담하여 가압류를 풀고 팔아주겠습니다. 손님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압류를 말소한 후 저당권을 승계하려고 은행에 갔다. 직원이 차분히 설명하였다. “채무자가 신용불량자입니다. 그의 카드대금 500만 원까지 갚아야 합니다. 집 시세가 800만 원입니다. 2,700만 원을 상환해야 합니다.”아, 무지의 장막! 해도 해도 정말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욥의 아내가 조용히 나섰다. “이래도 당신은 여전히 신실함을 지킬 겁니까?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욥기 2:9)오, 세상 풍조를 따라 욕심이 잉태한 자여! 공중 권세를 쫓아 죄가 장성한 자여! ‘속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시니, 사람이 무엇을 심던지 그대로 거둘 것이다.’(갈라디아서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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