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학대 아동 보호는 국가의 의무”

  • 입력 2014.05.29 14:08
  • 기자명 임경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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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아동학대와 이로 인한 사망사건과 관련,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회장 이일하)를 비롯한 51개 단체가 22일 공동 성명을 발표해 정부가 아동학대예방 및 보호 업무를 국가사무로 환수하고 부족한 인프라를 시급히 확충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성명서에서 “울산 아동학대사망사건이 발생한 뒤 부랴부랴 통과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시행을 불과 넉 달 앞둔 지금, 과연 정부에 아동학대를 막겠다는 의지가 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정부의 아동학대예방종합대책에서 추가 예산이 필요한 항목이 모두 누락되는 등 특례법 시행을 위한 예산이 전무한 현 상태대로라면 특례법은 빈 껍데기, ‘기름이 없어 운행 불가능한 신형 차’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최근 학대신고가 지난해보다 30% 이상 급증했으나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상담원 수는 그대로”라며 “전국 50개, 상담원 수 375명에 불과한 아동보호전문기관이 특례법이 정한 대로 신고 접수 후 5분 이내에 경찰과 함께 출동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하고 반문했다.

 

단체들은 지역에 따라 아동 1인당 학대예방사업 예산이 5배 이상 차이가 나는 등의 현실로 볼 때 선거권이 없는 아동의 생존권 보호를 위한 업무를 지방자치단체에 내맡겨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면서 아이가 전국 어디에 살든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하려면 지방자치단체로 이양된 아동학대예방 및 보호 업무를 국가사무로 환수하고 국고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체들은 “폭력과 학대에서 아이들을 보호하는 일은 국가가 직접 책임져야 하는 최소한의 의무”라면서 △아동보호와 학대예방 업무 국가사무 환수 및 국고 지원 △아동보호전문기관 당 최소 15명으로 상담원 증원하고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전국 100개소 수준으로 확대 △학대피해아동 긴급보호 여건 마련 및 치료인력 배치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법률 조력인과 전담 경찰관 배치 등을 올해 안에 시행해야 할 긴급 과제로 제시했다.

 

아동관련 복지, 교육사업 분야에서 활동하는 단체 51곳이 아동과 관련한 이슈로 공동성명을 낸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아동학대신고는 2012년 1만943건에서 2013년 1만3076건으로 늘었다. 올 들어서는 특례법이 시행되기 전인데도 월 평균 신고건수가 급증하는 추세여서 아동보호전문기관마다 극심한 인력난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또 학대피해아동 전용보호시설은 전국 36곳뿐이며 이중 심리치료 전문 인력이 배치돼 있는 곳은 5곳에 불과하다.

 

[굿네이버스 등 51개 아동 단체 공동 성명 전문]

 

정부는 폭력으로부터 아동을 지키는 아동학대예방과 보호업무를 국가사무로 환수하고 국고로 지원해야 한다.

 

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천지에 가득하다. 수학여행길에서, 학교에서, 집 안에서, 장소와 상황을 가릴 새 없이 아이들의 죽음이 잇따르고, 어른들의 폭력과 국가의 책임 방기로 목숨을 잃은 아이들의 눈물이 마를 새가 없다.

 

울산, 칠곡의 아동학대사망사건에서 보듯 우리는 도움을 요청한 아이조차 구하지 못했다. 스스로를 방어할 힘이 없는 가장 연약한 인간을 보호하는 일에 우리 사회는 총체적으로 실패했다. 우리는 과연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아이들이 미래의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참담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울산, 칠곡의 아동학대사망사건이 사회에 던진 충격은 벌써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다.

 

울산 아동학대사망사건이 발생한 뒤 부랴부랴 통과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시행을 불과 넉 달 앞둔 지금, 우리는 과연 정부에 아동학대를 막겠다는 의지가 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단적으로 법은 제정됐으나 시행을 위한 예산은 전무하다. 현재 상태대로라면 특례법은 빈 껍데기, ‘기름이 없어 운행 불가능한 신형 차’에 불과하다. 중앙정부는 ‘아동보호업무는 지방사무’라는 이유를 앞세워 국가 예산 편성과 지원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묵살했다. 정부가 2월말 발표한 아동학대예방종합대책에서도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상담원 확충 등 추가 예산이 필요한 항목은 모두 누락됐다.

 

우리는 중앙정부에 묻는다. 전국 50개, 상담원 수 375명에 불과한 아동보호전문기관이 특례법이 정한대로 신고 접수 후 5분 이내에 경찰과 함께 출동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예산이 10원도 없는 상태에서 특례법이 새로 정한 가해자 상담 교육, 늘어날 신고의무자 교육은 누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폭력과 학대에서 아동을 보호하는 일은 국가가 직접 책임져야 하는 최소한의 의무다. 우리는 중앙정부가 아동의 보호는 국가의 책임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올해 안에 다음과 같은 사항을 시급히 실행할 것을 촉구한다.

 

1. 아동학대예방과 보호 업무를 국가사무로 환수하여 국고로 지원해야 한다.

현재 244개 지방자치단체 중 아동보호전문기관은 50곳에 불과하다. 아동 1인당 학대예방사업예산도 지역에 따라 5배 이상 차이가 난다. 2000년 신설된 아동보호전문기관은 2004년까지 38개로 늘어났으나 2005년 지방사업 이양 이후로는 10년간 고작 12개가 늘었다. 선거권이 없는 아동의 생존권 보호를 위한 업무가 지방자치단체에 맡겨져서는 안 된다는 게 지난 10년간 확인된 사실이다.

우리는 아동학대예방과 보호업무의 국가사무 환수에 반대하는 중앙정부에 묻는다. 폭력과 학대에서 아동을 안전하게 지키는 과제가 국가의 할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아이가 전국 어디에 살든 최소한의 안전이 지켜지도록 정부는 당장 아동학대예방과 보호업무를 국가사무로 환수하여 국고로 지원해야 한다. 국가사무 환수 이후 필요한 국고 지원금의 규모도 국가 총 예산 대비 결코 큰 액수가 아니다.

 

2.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의 수를 시급히 늘리고 아동보호전문기관을 확대 설치해야 한다.

아동보호전문기관도 태부족이거니와 현재 기관마다 인력난이 심각한 상태다. 미국은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 1명 당 아동 2,268명을 맡고 있지만 한국은 1인당 무려 10배인 2만2,882명을 맡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학대신고가 지난해보다30% 이상 증가했으나 상담원 수는 그대로다. 신규 접수 사건 현장 조사 이외에 예방과 사후관리는 엄두도 못 내는 실정이다. 정부는 현재 1개 기관 당 6~8명에 불과한 상담원을 최소 15명은 되도록 증원하고, 아동보호전문기관도 전국 100개 수준으로 확대해야 한다. 아동학대사건 현장조사를 상담원에게 맡긴 이유는 사건의 특성상 수사기관보다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열악한 여건으로 평균 근무기간이 3년 미만인 상담원들이 무슨 전문성을 갖출 수 있겠는가. 정부에게 상담원 인력확충과 처우개선의 의지가 없다면 아동학대사건 현장조사를 더 이상 민간에 맡기지 말고 정부가 직접 시행해야 한다.

 

3. 학대피해아동 긴급보호여건을 시급히 마련하고 치료인력을 배치해야 한다.

학대행위자로부터 분리해도 피해아동이 보호를 받으며 머물 곳이 없다. 현재 피해아동전담보호시설은 전국36개뿐이며 심리치료 전문 인력이 배치된 곳은 5곳에 불과하다. 정부는 기존 양육시설에 학대아동 치료보호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을 포함하여 학대피해아동 긴급보호여건을 시급히 마련하고 이러한 시설을 점검할 수 있는 정부의 모니터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4.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법률 조력인과 전담 경찰관을 배치해야 한다.

학대행위자가 조사를 거부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 피해아동과 상담원을 보호할 수 있도록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전담 경찰관을 배치해야 한다. 또한 특례법 시행 이후 현재보다 활성화될 친권 제한이나 정지제도가 제대로 활용될 수 있도록 국선 변호사 등 법률 조력인을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배치해야 한다.

 

위의 모든 사항을 실현하기 위한 예산이 당장 없다고 나 몰라라 할 일이 아니다. 정부는 시급히 예비비를 편성하여 위의 과제들을 현실화하고 9월 시행될 특례법이 실효를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우리는 위의 요구사항들이 관철된다고 해서 아동학대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자녀를 소유물로 바라보고 체벌을 묵인하는 사회적 태도, 부적절한 양육방식이 온존하는 한 아동학대는 지속될 것이다. 종종 미숙한 대처가 지적됐던 상담원의 전문성 향상도 긴요한 과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과제도 최소한의 인프라가 확보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다. 위의 요구사항들은 최소한의 인프라 확보를 위한 필요조건, 긴급 사항에 불과하다.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는 나라에서 이미 태어난 아이조차 제대로 보호하지 못해 학대와 폭력에 시들게 방치하는 것은 국가적 수치다. 아이가 학대로 숨진 뒤 사후 약방문 격 대책을 고민하며 법과 제도를 만들었으나 ‘빈 껍데기’로 끝나고 마는 관행은 이제 그만둘 때도 되었다. 시간이 많지 않다. 또 다른 아이를 폭력으로 잃기 전에, 우리 사회가 아이들 앞에서 최소한의 도리를 지킬 수 있도록, 중앙 정부는 아동보호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전환하여 스스로의 책무로 삼아주기를 촉구한다.

 

2014. 5. 22

 

(51개 단체. 이하 가나다 순) 경상남도아동위원협의회, 국제아동돕기연합, 국제아동인권센터, 국제한국입양인봉사회, 굿네이버스, 재단법인 그리스도의교육수녀원, 기아대책, 대한민국약속재단,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 대한사회복지회, 부스러기사랑나눔회, 사회복지법인 명지원, 사회복지법인 원주가톨릭사회복지회, 사회복지법인 우봉복지재단, 사회복지법인 인애복지재단, 사회복지법인 제남,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서울 YMCA, 세이브더칠드런, 세이프키즈코리아, 아이들과 미래, 아이코리아, 어린이문화진흥회, 월드비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유엔아동권리협약 한국NPO 연대, 육영재단, 위스타트운동본부, 은평천사원, 종이문화재단,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프랜드아시아, 한국사회정보연구원, 한국스카우트연맹, 한국아동권리학회, 한국아동단체협의회, 한국아동문학학회, 한국아동복지학회, 한국아동복지협회, 한국아동청소년그룹홈협의회,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한국YMCA 전국연맹, 한국장난감도서관협회,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한국종이접기협회, 한국지역아동센터연합회, 한국청소년연맹, 홀트아동복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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