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 난민의 어머니 신시아 여사 일가상 수상

  • 입력 2015.09.09 18:47
  • 기자명 임경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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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자유 증폭, 평화 유지, 민주화 과정 공부할 것”

“스스로 발전시킬 수 있는 힘이 하나님이 주신 창조성”

 

최근 공개된 한 장의 사진이 전 세계인의 가슴에 깊이 각인됐다. 바로 세 살짜리 시리아 난민 아이가 해변에서 죽은 채 발견된 것.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오랫동안 이어져왔던 난민 문제가 전 세계적 이슈로 급부상했다.

이러한 가운데 태국 메솟 메타오클리닉 원장인 신시아 여사가 한국을 방문해 주목받고 있다. 가나안농군학교 창립자 김용기 장로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일가상’ 수상자로 선정돼 방한한 것.

신시아 여사는 지난 5일 서울 서대문 농협중앙회 대강당에서 개최된 ‘2015년 제25회 일가상 및 제7회 청년일가상’ 시상식에서 사회공익부문에 선정돼 일가상을 수상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연동교회 다사랑 카페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버마의 난민 실태를 소개하는 한편 한국교회와의 협력 상황을 알렸다. 버마는 일찍이 아웅산 수지로 인해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신시아 여사는 태국 메솟에서 메타오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지역적으로는 태국에 속해 있지만 모에이 강을 사이로 버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현재 약 100만 명의 버마 난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버마는 일반적으로 미얀마로 잘 알려진 국가의 옛 지명이다. 1988~1990년 발생한 내전으로 수천 명의 시민들이 군부에 의해 학살당했고, 이러한 역사를 지우기 위해 국가명까지 버마에서 미얀마로 바꿨다는 것이 신시아 여사의 설명이다. 따라서 자신의 국가를 ‘버마’라고 칭하는지, ‘미얀마’라고 칭하는지에 따라 정치적 입장이 갈린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가 운영하는 메타오클리닉은 1989년 작은 집에서 시작됐다. 당시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 생활을 하고 있던 신시아 여사는 스스로 난민이 되어 병원을 설립하고 질병에 시달리는 난민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병원은 현재 17개의 과가 있는 종합병원으로 발전했고, 판잣집과 같은 얼기설기한 모양새지만 높은 의료기술을 갖춘 의료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등지에서 안식년을 가지는 의사들이 찾아와 봉사활동을 하고, 자체적으로 400여 명의 의료 인력도 갖추고 있다. 또한 존스홉킨스와 같은 유럽의 큰 대학병원들이 기부로 돕고 있어 모든 난민들을 무료로 진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메타오클리닉에서는 하루 평균 500여명의 환자들이 진료를 받는다. 2014년 통계에 의하면 일반진료자가 1년간 12만 명에 달하고, 약 3000여명의 신생아가 태어났으며, 200여명에게 의수와 의족, 2000여명에게 개안수술 등 안과치료를 시행하고 있다. 300여 다양한 인종이 뒤섞인 난민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그 누구도 차별 없이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다.

메타오클리닉은 단순 질병 치료를 넘어서 어린아이들과 젊은이들의 훈련과 교육에도 주력하고 있다. 의료기초종사자들과 의료간호사들을 교육해 질병에 속수무책인 지역에 파송하여 그들이 스스로 돌볼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난민들의 자녀를 위한 학교를 운영하여, 어린이들뿐 아니라 교사, 학부모, 지역 주민들이 함께 모여 마을의 발전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지역공동체를 이루는 일을 돕고 있다.

안타깝게도 버마의 젊은 아이들은 인권, 교육, 정치, 의료는 국가가 하는 것이고, 자신들과는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

신시아 여사는 “어떻게 하면 주민들 스스로가 일어나서 스스로 삶의 질을 발전시키고 의식이 깨어나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할 것인지 훈련시키고 있다”면서 “젊은이들이 피해의식만 갖고 절망에 빠져 희생자로 남는 것이 아니라 좋은 지도자가 되어 스스로의 존엄성을 세우고, 삶을 보장하고,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훈련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밝힌 신시아 여사는 “어릴 때부터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기독교 신앙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소중함을 배웠다”며 “우리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는 힘이 하나님이 주신 창조성이라 믿고 신앙으로 고백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시아 여사는 난민들을 세 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먼저 내전에 가담해 정치적 이유로 국경을 넘어와 유엔난민기구(UNHCR)의 인정을 받고 난민캠프 안에서 사는 이들이다. 약 15만 명이 철조망 안에 갇혀서 거주 이전의 자유와 직업 선택의 자유 없이 살고 있다.

두 번째로는 국경을 넘어온 노동자들. 태국 전반에 걸쳐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총 300만 명에 이르며 100만 명은 그나마 노동허가증이 있지만 나머지 200만 명은 그마저도 없이 불안정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세 번째로는 인종문제에 의한 난민이다. 같은 인종이나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살기 원하지만, 정부군에 의해 농토를 빼앗겨 강제이주된 이들이 5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신시아 여사는 기자회견을 통해 난민과 버마의 실태를 전하며 “시간이 가도 더 가난해지고 더 불평등해지고, 사람들은 더 절망에 빠져 고통받는 것을 늘 목격하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1962년에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2010년까지 군사정부 하에서 살아왔고, 2010년에 헌법을 개정해 국회의원을 선출했으나 25%가 군부가 지정한 인사로 채워졌다. 올해 11월에 역사상 두 번째 총선이 진행되지만 개헌을 거치지 않았기에 여전히 25%의 군인들이 차지하게 될 거라고 설명한 신시아 여사는 “민주주의적 발전은 없고 여전히 군부의 일부가 경제적으로 독점하여 이익을 보고 있고, 여전히 인권은 억압당하고 있다”고 안타까운 상황을 전했다.

신시아 여사는 “버마는 과거 100년 이상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은 나라이기에 기독교인이 5~6%에 달한다. MIT라는 유명한 신학교에 2000여명의 신학생들이 있고, 버마 양곤에는 식민지배 당시 세워진 성공회와 감리교, 장로교에 속한 큰 교회들도 있다. 미얀마 NCC에는 19개 교단이 참여하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교회들의 군부의 억압에 눌려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1989년까지는 교회가 바른 목소리를 냈으나 군부의 무차별적인 학살 때문에 성명도 내지 못하고 고뇌에 빠져 있다는 것.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한국 선교사들과의 동역에 크나큰 감사와 감동을 전하기도 했다.

신시아 여사는 “한국 선교사들과 함께 일하면서 서로 다른 것과 공통의 경험이 무엇인지 많이 배웠다”며 “정치 제도에 대해 서로 많이 배우고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젊은이들에게 직업과 식량을 제공하고, 배움의 기회를 주는 일에 대해 한국교회와 선교사들과 더 많이 협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이어 “버마와 한국은 비슷한 점이 많다. 가난을 극복했고, 군사쿠데타가 일어났으며,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점을 배워갈 것”이라며 “어떻게 하면 자유가 증폭되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지, 민주화를 어떻게 이뤘는지 공부하고 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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