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왕 주님 앞에 부끄럼 없기를

  • 입력 2015.12.10 10:54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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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가라 일컫는 러시아의 문호(文豪) 톨스토이가 쓴 단편소설 가운데 ‘대자(代子)’라는 제목의 소설에는 곰 세 마리 가족을 등장시켜 인간 사회에서 나타나는 폭력의 결과가 어떠한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어미 곰과 새끼곰 세 마리가 곰을 사냥하기 위해 인간들이 만들어 매달아 놓은 통나무를 분(忿)에못 이겨 공격했을 때 허공으로 밀려났다 돌아오는 통나무에 맞아 결국은 다 죽고 만다는 내용이다. 지금 분노가 충천(衝天)할대로 충천한 우리 사회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지금으로부터 130년 전에 쓴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믿기지 않을 만큼 오늘 우리의 현실과 많이 닮아 있어 적지 아니 놀라게 한다.

 

지난달 11월 14일은 분노하는 대한민국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 수치스런 날이었음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누가 누구를 그토록 미워해서 폭발한 분노인지, 분노의 진짜 원인은 무엇인지 차분히 이성(理性)의 자리로 돌아와 되새겨봤으면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분노를 터뜨려 무엇을 얻으려 했는지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이 나라의정부를 전복시키겠다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그 계획을 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발표를 해야 옳을 것으로 안다. 만약 그것이아니라면 과연 그 어떤 것을 목적으로 삼았는지 그것 또한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꼭 이 나라의 어버이들이 자신들의 분노를 무기로 삼아 이 나라의 아들들을 향해 쇠파이프를 휘둘러서 자신들이 얻을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했는지 그 또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극단의 폭력은 결국 자신들에게 폭력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영상매체를 통해서나 사진 자료들을 보나 평화적 시위를 제지하는 공권력이 폭력을 먼저 행사했다는 정황은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딱하게도 이것이 가장 서글프고 한심스러워 보이는 대목이다. 민주주의와 정의를 구두선(口頭禪)처럼 내세우면서 거짓과 폭력을 무기로 삼는다는 것은 결국 자신들이 정의롭지 못함을 스스로 증명해보인 결과를 낳고 만 것이다. 남을 존중할 줄 모르면서 민주주의를 논할 자격이 과연 있다고 보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이렇게 한심한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인지 참으로 국제사회 앞에 부끄럽기 짝이 없을 뿐 아니라 이제 곧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한국 교회의 무기력한 모습에 더욱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한 번의 실력행사(?)로는 분이 덜 풀렸는지 두 번째 시위를 예고하며 어느 이름난 사찰에 몸을 숨긴 주동자 한 아무개 씨가 보인 행태는 참으로 비굴하기 짝이 없는 겁쟁이의 모습 그대로이다. 종교의 벽에 기대어 앉아 용쓰는 그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렇게 당당하지 못하고 비겁한 모습으로 종교시설을 방패로 입만 나불거리는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 초라해보이지는 않는지 묻고 싶다. 비록 두 번째 시위가 1차 때와는 달리 평화롭고 질서 있게 진행되었다고는 하나 그것으로 모든 것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가장 큰 책임의 위치에 선 한(韓) 씨가 당당히 나와서 앞뒤 좌우를 수습하고 따질 것은 따져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그나마 자신의 비겁함을 조금이라도 만회하는 길이 될 것이다.

 

알려진 바로는 두 번째 시위가 평화적일 수 있었던 데에는 종교계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잘한 일이다. 절대 과소평가할 수 없는 큰일을 해낸 것은 사실이다. 불교계가 제안한 것을 기독교가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인 것도 잘한 일이거니와 절박한 민생(民生)을 위해 함께 기도한 것 또한 매우 칭찬할 만하다. 그러나 이참에 우리 기독교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러한 국가적 혼란 앞에 또 진보와 보수라고 하는 색깔의 차이가 느껴질 만큼 하나가 되지 못하지 않았느냐하는 점이다. 평화를 깨뜨리는 폭력집회를 막겠다는 숭고한 뜻이라면 보다 더 많은 교계 내의 동의를 얻어내고 참여를 독려해야 옳았을 일이라고 본다. 일부만 그뜻을 함께 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비판의 날만 세우는 한국 교회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소리이다. 이제 곧 평화의 왕이신 우리 주님이 오실 날이 다가온다. 폭력의 앙금이 남은 상태에서 주님을 맞이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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