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웰빙과 웰다잉

  • 입력 2016.03.18 09:00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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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만큼 그가 인간의 삶에 끼친 철학적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의 이름이 사순절을 지나는 동안 자주 떠오르는 것은 그가 죽음 앞에 섰을 때 제자들에게 남긴 한마디 말 때문인것 같다. 설(說)에 의하면, 정치적인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고 형이 집행되던 날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제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제 군들, 나는 지금 이 세상보다 더 좋은 곳으로 간다. 그러니 울지 말고 축하를 해다 오.” 까마득한 옛날이야기인지라 사실인지 아닌지는 밝혀내기가 참 곤란하게 되었으나 평소 그의 철학으로 보아 능히 그럴 수 있었겠다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오늘날의 우리 믿는 자들로서는 각별히 신앙생활에 있어 마음에 담아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근자에 들어 세상 사람들의 관심사로 떠 오른 화두(話頭) 가운데 적지 아니 영향력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웰빙(well-being)과 웰다잉(well-dying)이다. ‘웰빙’이란 글자 그대로 산업사회의 병폐로부터 벗어나 몸 과 마음의 건강이 조화를 이룬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반영한 새로운 삶의 방편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이러한 용어가 생겨난 것도 새로운 세기가 시작된 2천년 이후라니 불과 15,6년 안팎인 셈이다. 그러나 최근에 더욱 관심 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웰다잉’인 것 같다. 최근에 존엄사(尊嚴死) 논쟁이 촉발되면서 부터 부쩍 관심이 높아져 가고 있다는 소식이다.

 

어쨌든 우리가 깊이 있게 생각하고 실천에 옮겨야 할 덕목은 어떻게 사는 것이 성경적인 웰빙이며 어떻게 죽는 것이 성경적 존엄사인가 하는 점이다. 성도들 가운데에도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웰빙으로 알고 먹기를 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보게 된다. 장례 또한 그렇다. 시쳇말로 높은 자 리 있는 양반들이 보낸 조화(弔花)가 즐비 하고 장례식 또한 거창하게 치루는 것을 웰다잉으로 아는 것 같은 경우를 많이 본다. 과연 성경적인 웰빙이요 웰다잉인지 좀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말 하나마나 성경적인 웰빙이란 예수님 때문에 기쁨으로 살고, 그렇게 기쁨으로 살았을 때 육체의 삶을 예수님 앞에서 아름답게 마치는 것이 웰다잉일 것이다. 사 순절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를 구하시려 십자가를 향해 내딛는 예수님의 한 걸음 한 걸음이 결코 가벼운 의미로 다가 오지 않도록 우리들의 사는 문제와 죽는 문제를 함께 묵상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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