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갈라설 조짐이 보인다

  • 입력 2014.07.03 11:15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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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에게는 좀 미안한 얘기지만 이번 문 창극 장로의 국무총리 후보 지명과 관련한 일종의 해프닝이 한국교회에 적지 않은 회오리를 몰고 올 것 같은 조짐에 약간의 질책을 해야만 할 것 같다. 국민의 눈높이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청와대의 인사검증 시스템을 탓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 같으나 사실은 문 창극 씨 자신이 보다 적극적으로 언론의 여론몰이 앞에 대처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일말의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다. 장본인인 문 창극 장로는 그가 본래 언론인 출신인 만큼 누구보다 그에 대한 대처는 잘 하리라 믿었던 것도 솔직한심정이다.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역시 그가 처음 총리 후보자로 낙점이 되었을 때부터 언론은 집요하게 그의 과거 발언들을 문제 삼아 여론몰이를 시작했다. 중과부적(衆寡不敵)이기는 하겠으나 처음부터 보다 적극적으로 발언의 진의를 소상하게 해명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 관점이 다를 수는 있겠으나 적어도 처음부터 해명을 하기 보다는 강하게 밀어붙이겠다는 식의부인(否認)으로 일관해 온 것이 결국 겉잡을 수 없을 만큼 확대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그것이다.
 
결국 문 장로는 여론의 몰매만 자처한 채 총리 후보직을 사퇴함으로써 소란은 일단 사그라진 듯하다. 그런데 문제는 화근이 된 문제의 강연 내용들이 공개된 이후 한국 사회가 심각한 분열 양상을 보였다는 데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의 발언을 놓고 ‘신앙적 민족사관’이라며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인사들이 나온 반면 적지 아니 많은 기독교인들이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그의 흠결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마치 중세의 ‘마녀사냥’을 보는 듯한 공포감마저 감돌았다고 하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것 같다.
 
보기에 따라서는 당장에라도 한국 교회가 마치 보수와 진보 세력 간의 다툼으로 금방 찢어지기라도 할 듯이 연일 성명전(聲明戰)이 이어졌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수는 그 나름대로 시대적 상황에 처한 현실에 대해 할 말은 해야 한다는 식으로 일부 언론과 사회단체 인사들을 비난하는 성명을 쏟아냈다.
 
이 또한 결코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신앙적 사관을 무시한 채 극단적 표현까지 써가며 인신공격을 하는 이면에는 한국 교회를 향한 이유 없는 돌팔매질이 은근히 숨어 있지 않느냐 하는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즈음에서 한국 교회가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이런 문제로 다시 한 번 갈라지는 아픔을 겪어서야 되겠느냐 하는 것이다. 매우 원칙론 적이고 답답한 얘기일는지 모르겠으나 어느 쪽이건 옳고 그름은 그 판단을 주님께 맡기는 수밖에 없다고 본다. 백성들의 눈높이를 고려하지 않는 보수의 고집이 옳은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오로지 국민들의 눈높이나 정서에 편승하여 하나님의 뜻을 반드시 국민의 생각에 묶어두려는 진보의 시도 또한 잘 하는 일인 것 같지 않다. 오직 우리가 바라는 것은 논쟁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나 갈라서는 불행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교회 안에는 세상이 말하는 극우나 극좌가 존재하는 것이 결코 바람직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한국 사회가 그렇게 양 극단으로 치달을 때 교회는 중도에 서서 양쪽을 아우르고 화해의 중재를 시도하는 것이 진정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즉 서로 다른 양쪽의 말을 들어줄 수 있는 귀는 역시 교회여야 옳지 않겠느냐 하는 말이다. 물론 우리 사회가 그런 연습이 전혀 되어 있지 않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마저 그런 역할에 주저한다고 하는 것 또한 잘 하는 일은 결코 아닐 것이다.
 
세상이 극단으로 치닫고 남의 얘기에 귀를 기울일 줄 모른다 할 때 교회는 그것을 앞장 서 해야 할 것 같다. 지루하겠지만 끝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참아주며 들어주는 미덕을 발휘하면 절로 한국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바로 잡혀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역시 그가 처음 총리 후보자로 낙점이 되었을 때부터 언론은 집요하게 그의 과거 발언들을 문제 삼아 여론몰이를 시작했다. 중과부적(衆寡不敵)이기는 하겠으나 처음부터 보다 적극적으로 발언의 진의를 소상하게 해명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 관점이 다를 수는 있겠으나 적어도 처음부터 해명을 하기 보다는 강하게 밀어붙이겠다는 식의부인(否認)으로 일관해 온 것이 결국 겉잡을 수 없을 만큼 확대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그것이다.
 
결국 문 장로는 여론의 몰매만 자처한 채 총리 후보직을 사퇴함으로써 소란은 일단 사그라진 듯하다. 그런데 문제는 화근이 된 문제의 강연 내용들이 공개된 이후 한국 사회가 심각한 분열 양상을 보였다는 데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의 발언을 놓고 ‘신앙적 민족사관’이라며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인사들이 나온 반면 적지 아니 많은 기독교인들이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그의 흠결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마치 중세의 ‘마녀사냥’을 보는 듯한 공포감마저 감돌았다고 하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것 같다.
 
보기에 따라서는 당장에라도 한국 교회가 마치 보수와 진보 세력 간의 다툼으로 금방 찢어지기라도 할 듯이 연일 성명전(聲明戰)이 이어졌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수는 그 나름대로 시대적 상황에 처한 현실에 대해 할 말은 해야 한다는 식으로 일부 언론과 사회단체 인사들을 비난하는 성명을 쏟아냈다.
 
이 또한 결코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신앙적 사관을 무시한 채 극단적 표현까지 써가며 인신공격을 하는 이면에는 한국 교회를 향한 이유 없는 돌팔매질이 은근히 숨어 있지 않느냐 하는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즈음에서 한국 교회가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이런 문제로 다시 한 번 갈라지는 아픔을 겪어서야 되겠느냐 하는 것이다. 매우 원칙론 적이고 답답한 얘기일는지 모르겠으나 어느 쪽이건 옳고 그름은 그 판단을 주님께 맡기는 수밖에 없다고 본다. 백성들의 눈높이를 고려하지 않는 보수의 고집이 옳은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오로지 국민들의 눈높이나 정서에 편승하여 하나님의 뜻을 반드시 국민의 생각에 묶어두려는 진보의 시도 또한 잘 하는 일인 것 같지 않다. 오직 우리가 바라는 것은 논쟁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나 갈라서는 불행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교회 안에는 세상이 말하는 극우나 극좌가 존재하는 것이 결코 바람직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한국 사회가 그렇게 양 극단으로 치달을 때 교회는 중도에 서서 양쪽을 아우르고 화해의 중재를 시도하는 것이 진정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즉 서로 다른 양쪽의 말을 들어줄 수 있는 귀는 역시 교회여야 옳지 않겠느냐 하는 말이다. 물론 우리 사회가 그런 연습이 전혀 되어 있지 않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마저 그런 역할에 주저한다고 하는 것 또한 잘 하는 일은 결코 아닐 것이다.
 
세상이 극단으로 치닫고 남의 얘기에 귀를 기울일 줄 모른다 할 때 교회는 그것을 앞장 서 해야 할 것 같다. 지루하겠지만 끝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참아주며 들어주는 미덕을 발휘하면 절로 한국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바로 잡혀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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