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헌일 박사, 스코필드박사추모재단 한국이사장 추대

  • 입력 2016.06.14 11:22
  • 기자명 임경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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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공정책개발연구원 원장 장헌일 박사(생명나무숲교회 담임목사)가 지난 13일 스코필드 박사 추모재단의 한국이사장으로 추대됐다. 이는 토론토 동물원 내 프랭크 윌리암 스코필드(석호필) 박사 동상건립 및 한국공원 설립을 추진하는 캐나다추모재단인 스코필드 박사 추모재단의 이사회 의결에 의한 것이다.

장헌일 이사장은 “스코필드 박사의 정신을 이어 평소 그가 강조한 정직과 성실, 정의와 평화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각 영역의 지도자를 발굴하고 미래 통일시대를 주도할 다음세대 양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스코필드 박사는 3·1운동과 일제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린 푸른 눈의 의인으로, 우리나라에서 생을 마쳐 외국인 최초로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그의 한국이름 석호필은 “돌과 같은 굳은 마음으로 호랑이처럼 한국의 독립을 돕겠다” 뜻을 갖고 있다.

스코필드 박사는 세브란스 의학전문대학원에서 세균학 및 위생학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어로 수업할 정도로 한국인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높았다. 그는 3·1운동의 지도부와도 교감하며 거사 전 해외정세 파악에 도움을 주었고, 거사 이후에는 적극적인 현장 사진과 기록을 남기는 등 운동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또한,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 중인 유관순 열사를 만나 위로하고 조선총독부 등에 수감된 인원들에 대한 고문과 학대 금지를 요구하는 탄원을 수차례 제기하기도 했다. 일본 헌병에 의해 자행된 화성 제암리, 수촌리 민간인 학살사건의 피해 사진을 찍어 세계 언론에 폭로하는 등 일본 정부의 강압 통치에 대해 강력하게 항거했다.

특히 스코필드 박사는 3·1운동도 글과 사진을 통해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 34번째 민족대표로 불리기도 했다.

일제에 의해 추방된 스코필드 박사는 1958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뒤 후학 양성과 가난 구제에 앞장섰으며, 1960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1968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을 받았다.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평소 소망대로 1970년 숨진 뒤에는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다. 스코필드 박사가 한국 땅을 밟은 지 올해로 100년, 국가보훈처는 스코필드 박사를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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