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영국이라고 부르는 나라의 정식 이름은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and Northern Ireland이고 줄여서 United Kingdom, UK라고 부른다. 굳이 번역하자면 ‘대(大) 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이겠다. 여기서 대 브리튼은 잉글랜드(England), 스코틀랜드(Scotland) 그리고 웨일즈(Wales)이다. 흔히 영국이라고 생각하는 ‘잉글랜드’는 지금의 영국이 되기 위한 출발점이고 4개의 소왕국 중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한다. 이 왕국들은 17세기 초 처음으로 연합왕국의 모양새를 갖추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연합체가 그러하듯이 연합왕국으로서 영국은 근사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 속사정은 사뭇 복잡하다.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에 맞서 싸운 배넉번 전투 700주년을 기념하는 2014년 8월에 16세 이상의 모든 스코틀랜드 주민을 대상으로 분리 독립을 위한 투표를 실시한 바 있다. 비록찬성 45%, 반대 55%로 그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영국 안에서 구 왕국들은 각각 독립의 꿈을 쉽게 버리지 않고 있는 듯하다.
종교개혁과 관련하여 영국이 아직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로 나눠져 있을 때 개신교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헨리 8세의 조카이면서 스코틀랜드의 왕이었던 제임스 5세는 루터를 비롯한 대륙의 종교개혁자들의 영향이 커져가는 것을 두려워하여 개신교핍박으로 정책의 기조를 삼았다. 프랑스 기즈(Guise)가의 메리 사이에서 얻은 딸 메리는 생후 6일 만에 선왕께서 돌아가시는 바람에 여왕에 오르지만 실제로는 섭정이 이루어졌고, 5살 되던 해에 정치적인 이유에서 프랑스로 보내져 자라다가 약 16세의 나이에 프랑소와 2세와 결혼하였다. 그러나 결혼 이듬해에 프랑소와 2세가 갑자기 죽게되자 그 이듬해인 1561년에 스코틀랜드로 돌아와 여왕이 된다. 이 시기 유럽대륙은 이미 종교개혁의 2세대들이 활동하던 때였고, 영국에서도 엘리자베스여왕의 집권으로 종교개혁이 나름의 형태를 만들어가고 안정 기조로 들어가는 때였지만 스코틀랜드는 프랑스처럼 가톨릭의 세를 굳혀갈 듯이 보였다. 이러한 스코틀랜드를 개혁한 이는 존 녹스(1513~1572)이다.
신학자요 목사로 개신교 종교개혁에 뛰어든 존 녹스는 갤리선 감옥을 거쳐 1549년에 영국으로 추방당하게 된다. 에드워드6세 때 궁정목사로 임명되어 영국 국교회가 개신교적 신학과 형태를 갖는데 한 몫을 하지만, 메리여왕이 권좌에 오르면서 영국이 가톨릭교회로 선회하자 공직에서 사임하고 제네바와 프랑크푸르트로 가게 된다. 제네바에서 녹스는 칼뱅의 신학과 목회를 경험적으로 이해했다. 그 자신도 영국난민들에게 목회할 수 있는 기간(1556년~1558년)을 가졌다. 그가 예배를 인도한 건물은 칼뱅이 목회했던 생피에르교회와 2~3분 거리에 있는 작고 아담한 건물이다. 같은 건물에서 칼뱅은 목사들은 위한 정기적인 성경공부를 인도하기도 했고 제네바 아카데미를 시작하기도 했다. 존 녹스가 제네바에 머물렀던 기간은 존 녹스에게 뿐만 아니라 제네바 시민들에게도 의미가 있었던 기간이었다. 이후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존 녹스가 제네바를 가르쳐 “그리스도의 완벽한 학교”라고 격찬하고 제네바교회의 모델을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를 세우는데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제네바인들의 어깨를 으쓱하게 해주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