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그 시작과 현재를 생각하다

  • 입력 2017.02.23 10:13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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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숙 총장
[프로필]
◈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원래 친구들끼리 종교와 정치 얘기는 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주제는 우리 인생에서 참으로 중요하고 현실적인 주제들이라 그걸 얘기하지 않고 다른 얘기만 하기란 쉽지 않다. 정치가 모든 것이 되어 버린 듯 한 오늘 한국의 현실은 교회에서조차 서로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판단을 강요하려고 한다. 교회는 혹 못 가도 토요집회에는 꼭 가야한다는 분들도 있다. 지난 미국대선에서 복음주의자들이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하는데 한국정치에서도 종교인들은 번번이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 한 국가의 정책이 성경적인 진리에 근거하여 좀 더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면서 국가공동체의운명과 주변국가와의 평화를 도모해 나가기를 바라기에 기독교인들은 정치참여에 적극적일 필요가 있지만, 교회나 목회자가 직접적으로 교인들을 이끌어가는 방식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크다.

 

개신교 종교개혁의 어제와 오늘을 논함에 있어 교회와 정치의 이야기로 서두를 꺼낸것은 종교와 정치 그 각각의 중요성 때문이고, 개신교 종교개혁 이후 정교분리가 정착된 사회에서도 양자는 어쩔 수 없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겠다. 오늘날 개신교 교인들의 정치참여는 직간접적으로 커져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중 기독교인의 비율이 40%를 넘어서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16세기 개신교 종교개혁은 교회와 정치가 하나이던 가톨릭교회에 도전하며 시작된 것이다. 물론 그 도전은 신학적인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교회가 교회로서 기능하려면 교회가 몸담고 있던 정치적 현실이 중요했기에 정치적 영향력이 컸다. 가톨릭교회의 개혁을 주창하다가 새로운 개신교 교회의 지도자가된 대부분의 개신교 종교개혁자들 역시 그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정치에서 자유로운 자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각자의 사역지에서 관할 정부나 시의회와 긴밀하게 대화하고 타협하면서 교회의 개혁을 이루어갔던 것이다.

 

누차 얘기했듯이 16세기 종교개혁은 분명히 단순한 종교적 영역의 개혁은 아니었다. 그래서 비록 Reformation을 ‘종교개혁’이라 쓸지라도 종교가 중심이 되어 사회 모든 영역으로 개혁이 넘쳐흘렀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개신교의 등장은 단순히 종교적 사건이 아니라 유럽의 정치적 경제적 지형도를 바꾼 대 사건이었다. 이 얘기를 제대로 하자면 길다. 또 다른 기회를 약속하면서 ‘개신교, 그 시작과 현재를 생각하다’ 시리즈를 마감하면서 16세기 개신교 종교개혁이 시작하여 이제 나름대로 정착한 여러 가지 변화들을 정리하면서 개신교500년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세를 새롭게 하기 원한다.

 

1) 개신교는 하나님과 개인의 관계를 새롭게 정리 : 창조자이시며, 구원자이시고 보혜사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은 성경의 말씀으로 자신을 나타내시며 우리 각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그 분과 깊은 관계에 들어갈 것을 원하신다.

2) 개신교는 교회와 예배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 : 교회는 말씀과 성례(세례와 성만찬)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신 약속에 의지하여 복음에 합당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다.

3) 전문목회자와 평신도지도자의 동역 : 목회자는 하나님의 사역을 돕는 자들이다. 교회가 감당해야 할 다양한 기능은 신학훈련을 받은 전문목회자와 평신도지도자가 각각의 직분으로 함께 감당하는 것이다.

4) 소명(Calling)을 재 정의하고 목회직 뿐만 아니라 일상의 삶과 일을 하나님의 일로

선포 : 특정 직업만이 거룩하고 특정 장소가 거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일하는 모든 곳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일이 된다.

5) 결혼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성례가 아닌 계약이 되었다.

6) 중세시대에 만연해진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수정 : 여성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부름 받았다.

7) 청빈에서 청부의 개념으로 옮겨가면서 경제적인 부를 추구 : 시민계급의 등장, 화폐경제, 상업의 발전 등과 맞물려 자본주의 경제관념의 형성되는데 기여하였다.

 

오늘 개신교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말씀에 대한 깊은 이해와 그것을 일상의 삶과 일에서 적용할 수 있는 성숙함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 뜻깊은 해에 우리 각자가 이 일에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 겸허하게 돌아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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