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사역 30년 가나안교회, 새 땅을 밟고 새 비전을 보다

  • 입력 2017.05.02 16:28
  • 기자명 임경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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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마 5:15]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니라[눅 11:33]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청량리 588’. 그 골목 그 거리에서 30여년간 노숙인 사역을 펼쳐온 가나안교회(김도진 목사)와 가나안쉼터(김정재 목사)가 올해 초 새로운 터전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더욱 확대된 사역을 예고하고 나섰다.

지금껏 가나안쉼터는 윤락가 골목 한켠에 자리한 채 찾아오는 이들의 쉼터가 되어줬으나, 이젠 청량리 대로변에 6층짜리 건물을 번듯이 차지한 채 노숙인들 뿐 아니라 재기를 꿈꾸는 일반인들에게도 진정한 쉼이 되는 사역으로 발전하기 위한 포부를 가슴에 안았다.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왕산로 256-1 죽정빌딩’에 위치한 가나안교회·가나안쉼터는 1층 사무실, 2층 예배실, 3층 주방과 식당, 4~5층 숙소로 이뤄져 있다.

전체적으로 생활 면적은 다소 줄어들었지만 최신화된 시설과 비교할 수 없이 깨끗하고 편리해진 생활 환경에 가나안 가족들은 대만족이다.

이전 후 좋은 점 중 하나는 더위와 추위 걱정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예전 건물에서는 난방을 위해 나무를 땠었고, 여름에는 에어컨이 없어서 버텨낼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냉난방 시설이 완비돼 있어 추위와 더위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김정재 목사는 이게 제일 좋다고 환하게 웃었다.

또한 식사를 하려면 이전 건물에서는 계단에서 줄을 선채 30분씩 기다려야만 했다. 하지만 이젠 80여명이 동시에 식사할 수 있는 식당이 3층에 별도로 마련돼 있어 더 이상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4층 일부는 공동작업장으로 꾸며져 일터를 구하지 못한 이들도 쉬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모든 숙소 공간은 2층 침대를 맞춤 제작하여 120여명이 지낼 수 있다. 특히 재개발 추진위원회측에서 새로운 터전으로 이사하는 가나안교회를 위해 침대 제작을 자원하여 선물했다.

 

“네 사역으로 인해 숨으려 하지 말라”

가나안교회·가나안쉼터의 이전은 기적의 연속이었다. 김도진 목사는 이번 이전으로 또 하나의 커다란 간증을 선물받은 셈이다.

가나안교회가 지난 30여년간 말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사역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 물론 여기에는 기가 막힐 정도로 예수밖에 모르는 김도진 목사의 무식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이번 가나안교회·가나안쉼터의 이전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새로운 섭리를 엿볼 수 있는 기회로 보여지고 있다. 번번이 어리석은 행동을 깨뜨리시고 정 반대의 상황으로 인도하셨기 때문이다

가나안교회·가나안쉼터는 노숙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 재활에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사역을 해오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주변 사람들이 노숙인들을 기피할 것이란 짐작을 하게 됐고, 이전할 장소를 물색하던 김정재 목사는 당연스럽게 임대가 아닌 매입으로, 주택이 많지 않은 후미진 곳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였다. 거부당할까봐 일부러 노숙인 사역을 숨겼음에도 건물주들은 허락하지 않았고, 심지어 교회라는 이유만으로 거절당하기도 했다. 어떤 곳은 계약 직전까지 갔으나 결국 틀어지고 말았다.

청량리 588 부지에서 떠나야 할 기한은 점차 다가오고 있었지만 새로운 터전 마련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김도진 목사와 김정재 목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죽정빌딩에 들어섰다. 이곳은 건물 매입을 알아보면서 가장 처음 방문했던 곳이면서도, 노숙인 사역을 숨겼음에도 거부당했던 곳이었다.

김 목사는 솔직해지기로 했다. 자신들은 가나안교회와 가나안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노숙인 사역을 하고 있는데 새롭게 이전할 공간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꿈일까 생시일까. 건물 주인은 “김도진 목사도 같이 오시느냐”고 묻고는 단번에 임대를 허락했다. 심지어 가나안교회와 김도진 목사를 잘 알고 있을뿐만 아니라 존경해왔다고. 그는 과거 동대문구에서 의원을 지내며 가나안쉼터의 사역을 잘 알고 감복했던 사람이었다.

허락받지 못할까 노숙인 사역을 숨겼을 때는 실패만 거듭하던 것이, 다 내려놓고 고백하자 단번에 계약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등불을 등경 위에 두시다

이렇게 어렵사리 새로운 공간을 찾았으나 처음엔 3개 층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예배실과 사무실, 식당만 들어섰을 뿐 숙소는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을 물색해야만 했다.

이번엔 동대문구에서 난색을 표했다. 사무실과 숙소가 분리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가까스로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이해시키고 겨우 인정받았으나, 문제는 숙소 자리가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쉼터 가족들이 갈 곳이 없어졌다. 사무실과 식당 등 공간이 허락하는 한 2층 침대를 밀어넣고 잠을 재워야만 했다.

사실 사무실 및 식당과 숙소가 떨어져 있다는 것은 쉼터의 관리 측면에서도 문제의 여지가 다분했다. 하지만 주어진 여건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건물에서 200미터 떨어진 곳에 숙소를 별도로 마련하기로 하고 월요일에 계약하기로 날짜까지 잡았다. 그런데 이번에도 역사는 또 일어났다.

이 건물은 ‘전주 최씨 평도공 종중회관’으로 사용되던 곳이었다. 계약 직전, 종중 구성원들로 이뤄진 이사회는 가나안교회·가나안쉼터가 1~5층을 사용하도록 하고, 자신들은 건물을 비우고 다른 곳에 사무실을 얻기로 했다. 더욱이 자신들이 매입했던 가격만 받을테니 수년 내에 건물을 인수해 갔으면 좋겠다는 의사도 전해왔다.

이렇게 현재의 건물에 숙소까지 마련할 수 있게 됐고, 안정적이고 깨끗한 환경에서 새로운 삶과 사역은 다시 시작됐다.

김정재 목사는 “노숙인시설은 기피대상이라 숨으려 했는데 하나님이 대로변에 드러내버리셨다. 등불을 높은 곳에 두신 거라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숨으려고 했던 곳들은 다 막아버리셨다. 여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는다. 이젠 건물을 매입하는 수밖에 없다. 기도 제목”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가나안교회와 가나안쉼터에 새로운 계획을 갖고 계시고, 이젠 이들의 사역을 밝히 드러내어 도구로 사용하고자 하는 뜻을 확립하신 것으로 보여진다.

 

아이같은 김도진 목사 “예수만이 나의 오야붕”

가나안교회는 2016년 12월 첫 주에 새로운 터전에서 첫 예배를 드렸다. 옛 터전에서의 마지막날 30주년 예배를 드린 후 새로운 곳에서 31주년의 첫 걸음을 뗀 것이다.

가나안 공동체는 앞으로 새로운 30년에 큰 기대를 드러내고 있다. 더욱이 이번 이전을 계기로 믿음이 달라진 이들은 더 열심히 하나님을 믿기로 마음 먹었다.

김도진 목사는 “우리는 땅도 없고 돈도 없다. 만일 이번에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너희들 진짜 예수 믿어라”고 당부했는데, 눈 뜨고도 믿기 힘든 역사들을 체험한 것.

가나안교회·가나안쉼터는 이젠 노숙인에 제한됐던 사역을 일반인들에게로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골목에 숨겨져 있던 쉼터를 대로변으로 끌어내 세상에 보이신 하나님의 의도에 계획이 있다고 믿는 김 목사는 앞으로 넘어진 채 재기를 꿈꾸는 일반인들도 찾아와 쉬었다 가는 모두의 쉼터가 되겠다며 변화의 시동을 걸었다.

김 목사는 “교회는 천억짜리 집을 지어놓고 돈 많은 권력자들이 모여서 먹고 마시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실패한 사람들, 썩어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불러모아 먹이고 입히는 곳이 되어야 한다”면서 “오늘날 교회들의 틀려먹은 물질관과는 반대로 가나안교회는 지극히 작은자와 그 영혼만 바라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예수 만난지 38년 됐다. 우리 오야붕은 예수다. 예수님이 내 편에 서니 기적이 일어나더라”며 “물질 권세 다 버리고 얻어 터지면서도 주님만 바라보니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져 왔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면서 새힘이 솟아나고 비전을 바라보게 된다”고 아이처럼 신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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