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 초점은 ‘회복적 과정’

  • 입력 2017.10.11 15:49
  • 기자명 강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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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H학생은 학교 안에서 친구들과의 관계가 어려워지면서 점심시간마다 혼자 밥을 먹어야 했다. 학교 안에서 외롭게 지내던 H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아르바이트에서 함께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H를 좋아해주고 챙겨주고 지지해주면서 H는 마음의 위로와 힘을 받았다.

같은 또래 Y학생은 친구들의 은근한 따돌림으로 오랫동안 고통을 겪어왔다. 너무 힘들어서 용기를 내 교사에게 고민을 이야기했는데, 오히려 너무 예민하다며 이해받지 못했다. 부모님께는 왠지 모를 죄송함과 부끄러움에 힘들어도 고통을 털어놓지 못해 결국 어디에도 호소하지 못했다.

지난 9월23일 기독교 교사모임인 좋은교사운동이 개최한 공동체 대화에서 나눠진 학교폭력 피해학생 사례들이다. 이밖에도 청소년 시절 학교폭력의 경험을 한 청년, 가해자 입장에 서게 된 학부모, 학교폭력을 담당하고 있는 책임교사, 학교전담 경찰관, 학교폭력 재심위원인 변호사 등이 이야기 손님으로 초대돼 당사자들이 겪는 어려움과 고통에 대해서 유의미한 논의가 있었다.

중2, 고3때 두 차례 학교폭력을 경험한 S양은 지금은 어린이집 교사로 근무하고 있지만, 학교폭력의 상처를 극복하고 사회에 나온 지 몇 개월 되지 않았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중2때는 학교의 일진에게 화장실과 공장 부근에 끌려가서 면도칼과 각목으로 위협당하며 온 얼굴이 붓도록 맞았단다. 당시 30여 차례 자살시도를 하고, 정신병동을 오가며 결국 학교를 중퇴하게 됐다고 S양은 털어놓았다.

이후 고등학교 과정은 학교폭력예방재단 산하의 대안학교에 다녔지만 고3때 학교폭력을 또다시 경험하게 되면서 S양은 자신만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게 됐다. S양은 “옐로카드제, 등하교 지킴이, 배움터 지킴이, 스쿨폴리스제, 학교폭력 신고포상금제 등 온갖 대책이 마련돼 있지만 피해학생이 맘 놓고 피해사실을 알릴만한 곳이 있기나 하냐”고 호소했다.

자신의 아들이 학교폭력 가해자 입장에 놓인 학부모는 학교폭력위원회 과정에서 진술이 왜곡되었지만 아이가 소명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억울함과 분노가 그대로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학교폭력 조치 이유로 학교축제 참여가 거부되기도 했다는 사연을 전했다.

이 학부모는 “서울시교육청, 지역교육청, 학교 현장에 문의를 했을 때 모두 답변이 달랐고, 억울함을 상의할 곳을 찾지 못해 결국 변호사를 찾게 됐다. 그러나 변호사 역시 행정소송과 심판관리에 대한 설명만 해줄 뿐 ‘결국 돈으로 해결하라는 것이 아닌가’라는 허탈함만 남았다”고 개탄했다.

5년여 학교폭력을 담당한 W책임교사는 자녀들의 말만 믿고 결국 피해학생 부모와 가해학생 부모의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실태를 전했다. 그는 “부모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교사에게 모두 쏟아놓고, 주말까지도 항의 문자와 전화를 한다. 자연히 담당 교사들은 다른 업무에 비해 스트레스가 많아 학폭업무는 기피업무가 되었으며, 학폭처리 문제로 병가를 내거나 휴직을 하는 교사가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 입장에서도 학교폭력 문제는 골칫거리다. 학교폭력전담 경찰은 강한 처벌이 학교폭력을 없앨 수 없으며, 자칫 선처 여지가 있는 학생들이 엄벌주의로 인해 범법자로 낙인찍히는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자리에 참석한 경찰은 “학교의 주인인 교사와 학생들은 정작 가만히 있고 학교의 모든 문제를 경찰이 해결해 주기를 바란다. 교육전문가도 아니고 상담전문가도 아닌 경찰이 교사들의 역할을 침해하는 월권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변호사는 현 학폭법이 학교폭력 담당교사에게 경찰관 역할을 요구하는 식의 제도로 좋은 제도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 “학교는 학생들을 교육적인 방식으로 지도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고, 능력이 부칠 때 비로소 사법기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며, 이를 위해 전문상담교사와 중재 및 화해 친화적으로 학폭법 제도를 개정해야 한다”는 것.

이날 학교폭력을 바라보는 저마다의 시선을 허심탄회하게 나누고 함께 도달한 결론은 ‘문제해결을 위해 무장해제 후, 만나서 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각기 다른 입장에서 해결책을 논하는 것이 아닌, 피해의 고통에서부터 해법을 탐색하고 학교폭력 해결을 위해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특히 갈등과 폭력의 문제를 평화적으로 전환하고, 학교폭력의 문제를 피해회복에 초점을 두고 평화적으로 해결해가는 ‘회복적 과정’이 학교폭력처리 과정에 포함될 수 있도록 학교폭력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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