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고 있나요?’ 뇌사장기기증자 유가족의 간절한 질문

  • 입력 2017.12.13 16:02
  • 기자명 강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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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뇌사로 세상을 떠난 아들의 장기 4개를 기증한 엄마 장부순 씨. 아들 종훈이는 장기기증으로 많은 이들의 생명을 살렸지만, 장부순 씨에게 돌아온 것은 지인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었다. “너는 엄마가 돼서 아들의 장기를 남한테 줄 수 있니? 너는 엄마도 아니다”, “아들의 장기를 얼마 주고 판거니?”라는 모진 말까지 들어야 했다.

장 씨는 장기기증을 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는 않았지만, 아들을 잃은 아픔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오는 상처까지 더해져 감당할 수 없는 나날을 보내게 됐다. 그는 당시 가장 간절했던 것은 “잘했다”라는 누군가의 진심이 담긴 한 마디였다고 고백했다.

무엇보다 장기기증인 유족과 장기이식인 대다수들은 내 가족의 장기를 이식받은 이가 잘 지내고 있는지,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는 ‘안부’ 정도는 알고 싶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지난 2015년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이사장 박진탁)가 기증인 유족 약 100명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 기증인들이 가장 기대하는 예우사업 역시 ‘장기이식인과의 만남’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 제31조(비밀의 유지)’에 장기이식관리기관 및 의료기관이 장기기증인과 장기이식인에게 서로의 개인정보를 공개하지 못하도록 금하고 있다. 만에 하나 생길 불상사를 방지한 것으로 수사·재판·장기기증 홍보 등 예외적인 경우 외엔 비공개가 원칙이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지난 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뇌사 장기기증자 유가족 예우 촉구 기자회견 ‘잘 지내고 있나요?’를 개최했다. 이날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들의 모임인 도너패밀리 장부순 부회장, 박상렬 씨, 이선경 씨, 김순원 목사 등과 신장 췌장 이식인 송범식 씨가 자리해 국내 및 해외 사례를 소개했다.

기자회견 주요 골자는 뇌사 장기기증인 유족과 장기를 이식받은 사람 사이의 서신 교류를 허용해달라는 호소였다.

2002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고 7명에게 장기를 기증한 박상렬 씨는 “아들의 장기를 이식받은 분이 어디에선가 아들의 삶을 이어 행복하게 살고 있다면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기쁨일 것”이라며 “제가 바라는 건 그저 이식인이 우리 가족의 장기를 통해 다시 힘차게 살고 있다는 안부 한 마디였다. 그러나 그 짧은 인사를 무려 14년이나 기다려왔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장기를 기증받은 환우들 역시 자신에게 장기를 기증한 이들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었다. 송범식 씨는 2000년 7월 한 뇌사 장기기증자로부터 신장과 췌장을 이식 받았다. 그는 “제게 장기를 주고 하늘나라로 가신 분과 그분의 가족들을 생각하면 몸 관리를 허투루 할 수 없다. 현재 정상인보다 수치가 좋다”며 “누구에게 장기를 받았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하다. 이식인들도 장기를 주신 분과 가족들의 소식을 알고 싶고, 또 지금 어떻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고 있는지 알려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선진국의 경우는 어떨까. 지난 2016년 1월 미국 애리조나에서 뇌사 후 장기를 기증하고 떠난 김유나 양(당시 18세)의 어머니 이선경 씨는 “미국의 장기기증기관으로부터 이식인 정보가 담긴 편지를 받았다. 이식인들 나이와 상황,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등이 적혀있어 큰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식인 가족들에게도 감사 편지를 받았다. 특히 유나의 심장이 의사에게 기증된 것을 알았을 때, 이 일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을 변화시켰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며 “한국에도 조속히 기증자 유가족들이 이식인의 소식을 통해 위로와 위안을 받길 바란다”고 전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김동엽 목사는 “선진국에서는 뇌사자의 절반 가량이 장기기증을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난해 뇌사자 4000명 중에 500명 정도만이 장기를 기증했다”며 뇌사장기기증자 유가족예우가 조속히 개선되어 장기기증 활성화에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하지만 기증자와 이식인 간 교류 허용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여전하다. 경제적 답례 요구 등 본래 취지와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 이에 대해 김동엽 목사는 “희망자에 한해 기관을 통한 간접적인 서신 교류라도 할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는 의미를 전하고자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기자회견을 마친 후에는 ‘편지만이라도 보내고 싶습니다’, ‘뇌사장기기증자의 유가족을 기억해주세요’, ‘그저 잘 지내는지 궁금할 뿐입니다’, ‘생명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등의 피켓을 들고 장기기증 홍보 가두캠페인이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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