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었나요?(사사기 6:17~21)

  • 입력 2018.03.15 11:08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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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덕 목사(세인교회) 

우리는 지난 호에서 여호와의 사자로 대변되셨던 하나님께서 미디안에게 7년 동안 압제를 당하고 있었던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시기 위하여 기드온을 찾아 가셔서 정말로 깜도 안 되는 기드온의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들어주셨음을 살펴보았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기드온의 요구에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겠다고 한 것입니다. 문제는 기드온이 가지고 온 하나님께 드릴 예물이었습니다. 본문1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기드온이 가서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고 가루 한에바로 무교병을 만들고 고기를 소쿠리에 담고 국을 양푼에 담아 상수리나무 아래 그에게로 가져다가 드리매”

스위스 침례신학대학교 트랜트 버틀러 교수는 기드온의 종교적 상태를 그의 가족과 함께 바알숭배주의자라고 정의했습니다. (WBC 주석, 사사기,p,537) 같은 맥락의 신학적 해석을 하고 있는 로마대학교 근동연구소 부교수인 알베르토 소긴 교수는 19절에 기록된 기드온이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가지고 온 예물들은 가나안초기 이스라엘 신앙공동체가 하나님께 드리던 순수한제물들이 아니라 북쪽에서 횡행하던 바알리즘에 빠진자들이 바알에게 바쳤던 제물과 동일하다(국제성서주석, 판관기, p,179)고 해석했는데 필자도 동의합니다.

그렇다면 기드온이 가지고 온 제물은 하나님께는 대단히 역겨운 제물이었음에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기드온이 행한 일련의 일들에 대하여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반응이 본문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난 호에서 본 것처럼 하나님은 기드온이 제물을 가지고 올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요구에 응하셨고, 오늘본문은 그가 가지고 온 우상에게 바칠 때 사용되던 역겨운 제물들은 물론 그것을 바치는 방법에 대하여 일언반구 노하시지 않고 그의 제물들을 수용하십니다. 그리고는 사사기 6:17절에서 기드온이 요구했던 표징 즉 당신이 하나님이신지에 대한 표징까지도 본문에서 행하십니다. 이어지는 본문 20~21절입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고기와 무교병을 가져다가 이 바위 위에 놓고 국을 부으라 하니 기드온이 그대로 하니라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병에 대니 불이 바위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

무슨 말입니까? 앞에서 언급한 17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곱씹겠습니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만일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되시는 표징을 내게보이소서”

기드온은 지금 자기에게 오셔서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께 나의 주가 되는 표징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드온의 요구에 그가 드린 제물에 대한 상태와는 별개로 그의 이런 철없어 보이는 일체의 요구에 불로 현현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하나님 되심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도대체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었을까? 하나님은 호렙 산에서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예흐에 아쉐르 예흐에)라고 천명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이 선언은 하나님은 인간에 의해 좌지우지 되지 않으며, 결코 그들의 유익을 위해 만들어지는 존재가 아니라 그 어떤 경우에도스스로 존재하심 그 자체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증명하신다는 대단히 중요한 신학적 의미라고 필자는 이해했고 또 지금도 그렇게 이해합니다. 그런데 기드온과의 만남을 보면서 조금은 심하신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자존자의 내려놓으심이 필자에게 보여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그 충격은 일시적이고 한시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도리어 저는 본문에서 정말로 전율할만한 하나님이 행하신 역발상의 은혜를 받습니다.

● 주님께서 집중하신 관심은 당신의 권위가 아닌 이스라엘의 구원이었다는 감동입니다.

세상 어떤 종교의 창시자가 인간을 위해 직접 찾아왔습니까?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이 되셔서 이 땅에 직접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빌립보서 2:6~8절은 너무나 감격적인 은혜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미국 댈러스의 빌리지 교회에서 목회하는 매트 첸들러 목사는 ‘완전한 복음’(the explicit gospel)에서 이렇게 갈파했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위한 책이지, 우리에 대한 책은 아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조명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나의 일상의 지침서로 읽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조명하시는가를 집중하며 읽는 것이다.”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사순절 기간입니다. 필자는 이것을 믿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주시는 조명은 당신의 백성들을 위한 구원이 그 분의 관심이었음을. 샬롬의 은총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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