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에 이 권사님이 계셨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이북에서 내려오신 분이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남편이 기관사였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 강점기 기관사들을 일본으로 강제 징용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일본으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남편과 가족들은 한밤에 몰래 야반도주를 했다. 깊이 숨어 있으려고 산속으로 들어가서 강원도 산골짜기 깊은 곳에 숨어서 지냈다. 불안과 두려움에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벌벌 떨며 지내다가 먹을 것이 떨어져서 어느 날 곡식을 구하러 산 아래로 내려왔다가 해방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그것도
장편소설 ‘대지’로 1938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펄 벅’(Pearl Buck, 1892~1973) 여사의 한국 사랑은 유명합니다.그녀는 중국에서 선교 활동을 했던 부모님을 따라 약 40년을 중국에서 보냈음에도 평생 한국을 가슴 깊이 사랑했습니다.그녀는 자신의 작품 ‘살아 있는 갈대’에서 다음과 같이 한국에 대해서 예찬했습니다. “한국은 고상(高尙)한 민족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다.” 또 그녀가 남긴 유서에는 ‘내가 가장 사랑한 나라는 미국이며, 다음으로 사랑한 나라는 한국’이라고 쓰여 있을 정도입니다.그녀가 이렇게 한국에 대한
“보라 지금은(신약시대는)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신약시대는) 구원의 날이로다” 성도는 은혜받을 만한때에 은혜를 받고 구원의 날에 구원을 받는 참 믿음안에 살아야 영육간에 승리 성공 형통의 축복을 받는다. 은혜주시고 구원을 주시는 때는 언제인가?“표적을 보여주실때”하나님은 믿지 않는자,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확신하는 믿음을 선물로 주어 믿게하여 복을 주시려고 여러 신비한 기적의 역사, 표적을 보여주신다. 고로 표적을 본 자는 주님이 내게 대한 은혜의 역사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신 것을 알고 믿음의 사람이 되고 믿음을 발전시켜
“새 한 마리가 지는 꽃잎을 물고 날아 간다 / 입에 문 꽃잎이 떨어질까 봐 / 소리를 지르지도 못하고 / 눈물을 흘리며 날아 간다 / 새 둥지로 날아가나 살펴보니 / 둥지를 지나 머나먼 세계로 간다 / 저 아득한 그리움의 세계로 / 구겨진 사랑의 편지 한 장 물고 날아간다.”이 시는 지난주 목요일 오후에 갑자기 생각나서 쓴 짧은 시 구절인데요.지난 주는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2박 3일이라도 어디라도 가서 좀 푹 쉬어보려고 하였습니다. 제주도는 왔다 갔다 하기에 너무 멀고 곤지암에 있는 기도원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원에서
많아서넘쳐서남들이 없는 것 가져서행복한 것이 아니요피해서 넘겨서남들이 겪는 것 안 겪어서행복한 것도 아니요앞날을 몰라도인생이 불확실해도주어진 시간을 예측할 수 없어도나는 행복합니다.아들을 위하여혼인 잔치에 우리를 택하신그 임금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런 옛날 이야기가 있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이 집에는 하인들을 쓰다가 일정 기간을 채우면 자립시켜 내보내 주는 제도가 있었다. 이제 내일도 몇 명의 하인들은 종 문서를 없애고 자유인이 되게 하는 날이다. 주인은 그들을 불러서 “이제 내일이면 너희들은 자유가 된다. 오늘 마지막으로 너희에게 일을 시키려고 하는데 최대한 가늘고 길게 새끼를 꼬아라, 이것이 마지막 일이다.”라고 하였다. 종들은 두 가지 반응을 나타냈다. 대부분은 투덜거리면서 “아니 내일이면 나가는데 마지막까지 이렇게 부려 먹고 싶나?” 불평하고 원망하며 짚을 뭉쳐서
과거에는 신유 사역으로 이름난 주의 종과 교회, 기도원이 꽤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신유 사역과 관련한 소식들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왜 그럴까? 두 가지 요소가 중복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첫째는 시대적 영향이고, 둘째는 신학적 영향이다.시대적 영향으로는 의료기술의 발달과 경제력 향상을 꼽을 수 있다. 과거보다 의료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했다. 불치병으로 여겨졌던 질환들이 지금은 어렵지 않게 치료된다. 경제력 향상은 대중들에게 충분한 영양공급과 의료혜택을 가져다줬다. 과거 많은 사람이 절대적 빈곤에 시달렸다. 부족한 영양
‘나무로 타락한 인간이 나무로 구원을 받았다!’에스더 드발(Esther de Waal)의 에 나온다. 선악과 열매를 따먹고 죄를 지은 사람이 십자가 그리스도로 속죄를 받았다는 말이다. 이 책은 고대 잉글랜드 켈트인들의 시와 찬미와 노래를 엮어 편집한 영성기도 해설집이다. 항상 옆에 두고 묵상하며 읊조릴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글이다.‘아, 아기사자(我旣死者)! 이미 죽은 자여! 이제 보니 여전히 살아서 고달픈 바벨탑을 쌓고 있었네. 이 기도가 영혼의 등불이 되기를! ’켈트족은 주전 4세기부터 밀라노와 아드리아 해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하신 말씀은 하나님과 땅과 하나님이 내리시는 은택과 들의 초목과 밭의 채소가 다 “경작할 사람”을 위해서 있음을 말씀한 것이다.“경작할 사람은 어떤 자인가?”“경작”이란 땅을 갈아 농사를 짓는 것을 말함인데 예택과 창조와 재창조의 은혜를 입고 중생한 성도들은 타락으로 황폐된 심신의 밭과 죄악된 세상밭을 갈아엎고 죄악과 불의와 불목의 잡초를 뽑아 내고 “영이요 생명이신 말씀”(요 6:63) “영생하는
제가 옛날에 쓴 ‘내 마음 강물 되어’라는 시가 있습니다.“내 마음 강물 되어 흐르고 있습니다 / 멈추라 하여도 흘러야만 합니다 / 보냄을 아쉬워 않고 돌아옴을 반기지 않고 / 다시 옴을 그리워하지도 않습니다 / 멈추지 않고 흐르는 것만이 행복이고 기쁨인 것을 흐르고 또 흐릅니다 / 미움도 원망도 슬픔도 고통도 고일 겨를 없어서 / 흐르고 흘러가고 있습니다 멈추고 붙잡는 것이 속절없는 것을 / 흘러야 행복인 줄 알기에 끊임없이 흘러갑니다”까마득한 신학생 시절, 하늘처럼 우러러 존경했던 분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회상하며 쓴 시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
경건 연습은 중생한 새사람을 성장, 견고, 깨끗, 온전케 하는 것이다. 중생으로 시작되고 중생한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므로 경건 연습의 동기는 중생이요, 경건 연습의 목적은 주님의 소원 성취인 새 사람이 자라 온전케되는 것이요. 경건의 방편은 하나님의 뜻인 성경이요, 경건의 능력은 주님의 능력이요, 경건의 결과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변화되는 성화구원이다. 고로 경건의 요소는 무엇인고 하니“주님의 것으로 사는 연습”성도는 주님의 피에 팔린 주님의 것이다.(고전6:19~20, 7:23) 고로 주님의 것임을 항상 인식하는 것, 주님의 것
신앙생활은 이겨야 한다, 승리해야 한다고 성경은 말한다. 이긴다는 것은 싸운다는 것이고 싸운다는 것은 상대방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누구와 싸워서 이겨야 할까? 나는 신앙생활이 세 가지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자신과 싸워서 이겨야 한다. 이것은 내적인 싸움이다. 사도바울도 자기 속에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과 악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 두 지체의 싸움이 있고 그래서 날마다 죽는다고 했다. 하나님께 굴복하고자 하는 마음과 내 뜻대로 살고자 하는 두 마음 사이에서 우리도 날마다 갈등한다. 이 싸움에서 하나님께 굴복하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한 아리마대 요셉의 이야기는 항상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줍니다. 차가운 시신으로 변해 있는 주님의 몸은 인간적 눈으로 보기에 아무 기적도 영광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가진 돈과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 등 모든 것을 바쳐서 주님의 몸을 씻고 돌보고 축복하기를 원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잘못하면 로마 총독 빌라도의 의심을 살 수도 있었고, 다른 종교지도자들로부터 공격과 왕따를 당할 수 있었습니다.그러나, 요셉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내가 주님의 제자 맞습니다. 제가 주님의 몸을 돌
2. 비기독교인과 관련된 성령의 사역(2) 불의를 책망하십니다(요 16:10)악한 것들에 대하여 성령님은 간과하지 않고 그 불의함을 책망하십니다. 여기서 불의라는 것은 세상이 참 의이신 예수님을 의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박해한 것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16장 10절입니다.“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3) 다가올 심판의 확실성을 알려주십니다(요 16:11)성령님은 마지막에 심판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하여 강력하게 선포하시고, 당신의 종들을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또 세상
저는 故 이어령 교수님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어령 교수님이 누구이십니까? 천의무봉의 필력으로 끝없는 지식을 거대한 산맥처럼 이어가셨고 '디지로그' '젊음의 탄생' '생명이 자본이다' 등과 같은 고정관념의 틀을 깨뜨리는 창조적 신지식의 세계를 보여주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런 분이 저의 문학세계를 인정해 주시고 시집 ‘꽃씨’ 추천사에서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한국시사의 첫장으로 알려진 육당 최남선의 ‘바다에서 소년에게’에서는 파도가 네까짓께 뭐야라고 바위와 뭍을 몰아세우며 우르르 쾅 덤벼들지만 소강석 목사
옛날에는 연좌제란 것이 있었다. 집안의 가장이나 가족 중 누군가가 잘못을 저지르면 일족이 다 벌을 받아서 멸문하게 되는 것이다. 원한의 씨앗을 남기지 않으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영화에서도 보면 갓난아기까지 삼대를 다 죽여버리는 장면들은 참 잔인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부모의 잘못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후손들이 엄청난 피해를 보는 것이다.한 청년이 상담을 청했다. 아버지는 안 계시고 어머니뿐인데, 어머니가 계속 빚을 만든다는 것이다. 어디다 쓰는지도 알 수 없이 많은 빚을 지고, 결국은 사채업자들이 들이닥치고 갚아야 해서 자신이 직장
“선수는 홈(home)을 밟을 때까지 감독의 사인을 잘 보고 달려야(run) 합니다.”야구와 의 순례자를 접목하여 엮은 11편의 설교, 에서 이성희 목사님의 말이다. 사실 우리는 천상의 홈을 향해 달려가는 지상의 크리스천 선수이다. 어떤 이는 홈런을 치고 천국으로 직행하는가하면, 어떤 이는 병살타를 쳐서 지옥을 경험하기도 한다.하나님은 우리의 유일한 감독이시다. 감독에 의해 선수는 선발로 뛰기도 하고 후발로 남기도 한다. 1군으로 올라가기도 하고 2군으로 밀려나기도 한다. 기회(chance)는 감독에 의해 주어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