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예환 칼럼] 호떡의 추억

  • 입력 2022.12.30 08:33
  • 기자명 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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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환 목사(갈보리교회) 

[프로필]

▣ 총회부흥사회 대표회장 역임

▣ 한국기독교영풍회 대표회장 역임

 

 

나의 학창 시절엔 등하굣길이 버스가 아주 만원이었다. 버스 문도 못 닫을 정도로 사람을 많이 싣고서 안내양이 양쪽 손잡이를 잡고 무자비하게 밀어 넣어서 차를 출발시키면 버스 기사가 운전을 험하게 해서 버스를 흔들어서 골고루 자리가 잡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운행을 했었다. 탈 때도 그렇게 힘이 들지만 내릴 때는 더 힘이 든다. 가방이 사람들 틈에 끼여서 같이 못 나오는 경우가 많아 창문으로 가방은 던지고 내리는 일도 있었다. 남학생 가방은 양쪽으로 뚜껑이 있고 가운데 실내화 주머니를 넣게 되어 있었는데, 그날도 너무 사람이 많아 내려야 하는데 가방이 나오질 않아 확 잡아당겼더니 가운데가 쭉 찢어져 한쪽은 버스에 남은 채 버스는 가버리고 내린 내 손에는 반쪽만 달려 나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도시락 쪽이 나왔다는 것이다. 교과서가 든 쪽은 버스에 실려 떠나가 버렸다. 다시 가방도 책도 사달라고 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날부터 나는 반쪽짜리 가방을 들고 학교에 다니다가 드디어 선생님께 들키고 말았다. 매일 같이 혼나고 벌서고 맞으면서도 나는 가방과 책을 사달라고 집에 말하지 못했다. 말해봐야 사주지 못할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학교에 안 갈 수도 없었다. 그때는 학교는 꼭 가야 하는 줄 알았다. 더구나 사춘기였던 것 같다.

한참 자라는 중이어서였을까? 늘 배가 고팠다. 배고픔도 지치는 것인데, 학교에서는 매일 벌서고 집에 오면 부업을 해야 하고 고생스러운 상황들이 힘들어서 매우 우울한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그렇다고 가족들에게 화를 내거나 투정하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표현할 환경도 표현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외출을 하셨다. 별로 말이 없던 나는 어디를 가느냐고 묻지도 않고 기대 없이 그저 아버지 뒤를 따랐다. 동네를 벗어나서 아버지가 물었다. “뭐 먹고 싶은 거 있냐? 오늘 아버지가 다 사줄게, 말해봐 ”이것은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께 받은 유일한 혜택이다. 계속되는 아들의 우울한 사춘기를 아버지가 알고 계셨던 것일까. 나는 호떡이 먹고 싶다고 했다. 중국집을 갈 수도 있었을 텐데 탕수육이나 자장면을 다들 가족과 먹는다고 했는데, 왜 하필 호떡이었는지, 생각해보면 나는 아마 그때도 가정 형편을 먼저 생각해서 가장 싼 것을 고른 게 아닌가 싶다. 실컷 먹으려면 값싼 것이어야지 실컷 먹을 수 있으니까. 가난은 그렇게나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아버지와 나는 길거리 호떡 포장마차로 갔다. ‘실컷 먹으라고 하셨지.’ 지금은 종이컵에 호떡을 주지만 그 시절에는 은쟁반에 작은 집게로 호떡을 먹는 것이다. 나는 계속 먹고 또 먹었다.

호떡 장사 아저씨의 손이 분주하다. 가난으로도 배가 고팠지만, 사춘기를 지나는 마음이 그렇게나 공허했던 것 같다. 스무 개를 먹고서야 집게를 놓았다. 배도 부른지 몰랐고 마음이 채워진 것은 아니었지만 아마도 나는 다시 아버지의 주머니 사정에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돌아보면 호떡을 스무 개나 먹던 그때의 배고픔은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할,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허기짐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도 나는 호떡을 좋아한다. 꿀 설탕이 듬뿍 들어 잘못 먹으면 옷을 버리게 되는 불편함이 있지만, 그 뜨거운 꿀이 입 안에서 녹을 때의 달콤함이 너무 좋다. 이제는 많이 먹어도 겨우 3개를 먹을 것이다. 스무 개의 호떡으로도 채워지지 않던 그 공허함과 힘겨우면 들은 예수님을 만나는 거듭남의 체험으로 깨끗이 해결되었다. 예수님이 마음에 계시니 다시 그렇게 공허하지 않았다. 가슴 밑바닥 깊이부터 허기지던 허전함도 목마름도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 고통과 가난과 아픔과 상처는 내 속에 가난이 준 기억이란 한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그 공간이 있어서 나는 어려움을 인내할 수 있고, 가난한 사람을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고, 더욱 감사할 수 있다. 만약 환경에서 사랑과 여유가 나오는 것이라면 나는 사막과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극한 어려움 속에 자랐어도 나는 이기적이기보다는 이타적인 게 좋고 용서와 사랑이 날마다 샘솟는 것은 기적이 아닐까?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가난했기에 가난을 공감한다. 이것이 또한 가난이 준 아픈 선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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